"속상했구나"라는 마법주문

3차시 - 해적룰렛의 작은 기적

by 헤레이스

공휴일이 껴서 2주만에 만나러 가는 길.




가기 전에 다른 아이를 상담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선생님~ 제가 먼저 학교에 도착했는데 하늘이가 교실에서 울고 있어서 아직 상담실로 오지 않았어요. 저도 교실로 가봤는데 울기만 하고 꿈쩍도 안하네요~오셔서 가보셔야 할거 같아요."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빠르고 무겁다.


하늘이와는 2주만에 만나고 이제 겨우 세번째 만남이다. 무슨 일일까? 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상담실로 와서 짐을 내려놓고 다시 또 내려가서 밖으로 나와 옆 건물 교실이 있는 4층으로 숨이 차도 빠르게 올라간다.


교실에 들어선 나는 놀라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한 마음.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한다. 아이는 맨 끝 분단 뒤에서 세번째 정도의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다. 하늘이의 반에는 3-4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하늘이에게는 관심도 없었고 그들만의 이야기로 웃음꽃이 활짝이다. 교실 앞 선생님 자리에 담임선생님이 앉아 계신다. 역시나 하늘이에게 관심도 말한마디도 없으신 채 바쁜 일과를 하고 계신다. 물론 내가 오기 전 이미 하늘이에게 충분히 담임선생님의 역할을 다 하셨으리라.


나는 담임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하늘이에게 다가간다.

'아! 10번도 아니고 5번도 아니고 이제 겨우 세번째 만남에 이 아이가 과연 나에게 마음을 열까?'

두려움이 더 큰 발걸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간다.


"하늘아~ 선생님이랑 상담실로 가자~" 고개도 들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나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딱 한마디를 건넸다.


"하늘이 속상했구나" 그런데 이 한마디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또 이어서 말을 건넨다. " 그래. 아무도 하늘이 이야기를 안 들어줬구나."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안고 운다. "상담실 가서 울까? 선생님이랑 갈 수 있겠어? " 라는 말에 아이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일어선다.


속상했구나. 아무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구나.


이거면 되는거였다. 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그렇게 일어선 아이의 가방을 내가 메고 상담실을 가는 방향으로 내려가려고 하니 손을 이끌며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며 말을 하고 안내를 한다. 가는 길에도 "이런 길이 있구나" 만 몇번을 말하며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걸었는지 모른다.


상담실에 도착했다. 이 곳에 나와 함께 왔다는 것만으로 나는 너무 고마웠다. 오늘은 그림책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그냥 온전히 1시간 울면 우는대로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놔둘 생각이었다. 와서 먼저 물 한모금 먹게 한 뒤 얼굴을 닦게 한다. 그리고 준비해 온 좋아하는 망고쥬스를 건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말 안해도 돼~ 선생님이랑 와줘서 고마워" 라는 말만 전했다. 그림책 대신 가져간 역사유물 색칠하기를 건네고는 가만히 있었다. 아이는 검정색 색연필을 꺼내들고는 마구잡이로 칠을 한다. 선을 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고 까만색이 겹쳐서 색연필찌꺼기가 나올때까지 칠을 한다.


지금 아이의 마음이다. 까맣다. 까맣다 못해 답답한 심정인거다.


"잘하네. 더 칠해. 원하는만큼 칠해"라고 응원을 해준다. 하고 나서 이 아이의 감정을 풀어줄 또 다른 건 없을까 하다가 상담실에 있는 보드게임을 하나 가지고 왔다.




해적룰렛.


꽂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나 안해도 된다고 했다. 화가 나는 일 있으면 그것에 대해 감정을 큰 소리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5학년 맞아?!" "넌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내가 잘못한거 아니거든?!" 아이가 내뱉는 말은 누군가를 향한 말이다.

더하라면 슬쩍 한마디 건네니 아이가 먼저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꽤나 공부 잘하는 남자 아이가 공부도 못한다며 놀리고, 자기가 하지도 않는 걸 했다고 해서 속상해서 울었단다. 선생님께 가서 이야기도 했는데 아무도 자기 이야기는 듣지 않았고 우는 것에만 혼이 난 것이다.


물론 5학년 여자아이가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맞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자기도 알고 있다. 자기가 조금은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그런데 그걸 반친구라는 아이에게 직접 들었을 심정은 어땠을까? 느린학습자인 걸 아는 담임선생님은 좀 다르게 대처해주셨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고 우는 것보다는 하늘이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방법을 우리 찾아보자. 어때? 해적룰렛으로 좀 기분이 풀렸어? 선생님이랑 나눠서 해볼까?"


아이는 충분히 풀렸다며 웃어보이기까지 한다. 휴~ 오늘 나는 내 스스로에게 큰 일을 했다며 그 순간, 오늘 나는 나 자신에게도 칭찬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비밀무기가 생겼다. 화가 난 일이 있을 때는 그 자리에서 풀지 말고 선생님을 만나는 날 해적룰렛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생일에는 해적룰렛을 선물해 주고 집에서도 화가 날때는 게임을 하며 풀어보자고 하니 너무 좋아하던 하늘의 얼굴이 생생하다.


사람들은 꽤나 큰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냥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

딱 그 한마디면 되는 것이다. "속상했구나."

그리고 그냥 들어주면 된다. "아무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구나. 나에게 말해도 돼."




하늘이는 이후로도 화가 나거나 속상하면 나에게 먼저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그러면 나는 묻지 않고 그 날의 하늘의 기분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단지 그 마음을 받아줄 준비만 되어 있으면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서로의 마음에도 따뜻한 꽃이 피어났다. 함께 해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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