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야.

4차시 - 젠가처럼, 마음도 다시 쌓을 수 있다는 걸 알아줘

by 헤레이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하늘이와 인사를 나눈다.
지난 시간과는 다르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내 눈을 보고 반가워 한다.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자리에 앉기 전, 하늘이는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상담실 창문 너머로 학교 텃밭이 보인다.

"저긴 뭐야?" 누가 봐도 상추지만 질문을 던진다.


하늘이는 짧게 말한다.

“저게 제 상추예요.”

그리고 조금 더 조용히 덧붙인다.

“제일 커요.”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두 번이나 가리킨다.

아주 뿌듯해 하며 자랑하는 얼굴이다.
2주전 상추 이야기에 관심도 갖지 않던 아이, 일주일 전에는 교실 자기 자리에서 울던 아이가 자기가 키운 상추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 모습에 뭉클해지고 고맙기까지 한다.



오늘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먼저 건네기보다는 5학년 역사교과를 조금 더 재밌게 이야기해보자며 유물색깔북을 꺼내들었다.


말이 많은 아이가 아니기에, 미술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손이 먼저 움직이도록 기다린다.

하늘이는 페이지를 넘기며 조심스럽게 색을 고른다.


아! 그런데 고민고민하며 고른 색은 검정색이다.

선밖으로 나간다.

색도 마구마구 겹쳐서 누가봐도 엉망진창으로 칠한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칠해간다.


살짝 눈치가 보이는지 나를 힐끔 쳐다본다.

" 괜찮아~ 마음대로 칠해도 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거야~"


그렇게 마구마구 칠하면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낸다.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 친구가 했던 말, 조금 속상했던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짧게 반응하고, 다시 기다린다.




화면 캡처 2026-02-05 174618.jpg 최영미 글 / 유수정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이제 오늘 준비한 책을 꺼낸다.

5학년이 읽기에는 아주 쉬운 그림책이지만 내용보다는 제목을 전달하고 싶었다.


'틀리다'라는 말쯤은 안다는 듯이 책을 쭉쭉 읽어간다. 웃어주며 끝까지 읽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 말을 전한다.
친구랑 생각이 다를 때, 그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책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혹은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게임을 해보기로 한다.


오늘의 게임은 젠가다.

나무 블록을 하나씩 빼며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이야기로 물어본다. 오늘 마음을 묻는다.

하늘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늘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 해준다.

“답답했어요.”

“근데 지금은 좀 괜찮아요.”

짧은 문장으로만 말한다.


젠가가 흔들리고 결국 무너진다.

무너지지만 즐거운 게임이 또 있을까?

다시 또 둘이 나눠서 쌓는다.

무너져도 다시 쌓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마음 단어를 함께 골랐다.

속상함, 답답함. 하지만 일일노트에는 '젠가게임이 즐거웠음' 이라고 남겨준다.


하늘이는 자기 감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표정과 손짓, 짧은 말로 보여준다.


오늘은 울지 않았다.

대신 자기 상추를 자랑했고, 자기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해주었고, 젠가를 무너뜨리고 다시 쌓았다.


아이들은 큰 조언을 원하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 하나면 충분하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걸!
자기 속도로 알아갈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사람. 그게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

하늘이는 조금 더 자기 마음 가까이 왔다. 이후로 더 자주 웃었고 벗지 않던 마스크를 벗기도 했고 점점 더 이야기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렇게 나에게도 가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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