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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Oct 20. 2023

남편 휴가 보내기 프로젝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3월쯤이었다.

아는 지인이 아직 40대 후반인데 이제 곧 50이 된다면 Fifty Blue가 생긴 거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티아고 길을 가고 싶은데 아내가 반대한다고 했다. 나도 산티아고 길이 가고 싶다고 했더니 아시냐고 반가워하며 되물었다. 나의 버킷리스트라고 얘기하니 너무 반가워하며 자기 아내를 설득시켜 달라고 했다.


난 산티아고 길을 직접 간 적은 없지만

프랑스길은 책으로 10번쯤은 완주했다.


2007년도쯤에 대학원에서 강의를 듣던 중에 교수님께서 책 한 권을 소개해주셨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제목과 함께 그 길에 대한 짧은 한 줄 소개를 강의 중간에 지나가듯 언급하셨는데 내 뇌리를 파고들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래!! 난 저기를 꼭 가야 해!!'


언젠간 꼭 가고 말겠다는 다짐과 함께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샀다.

너무 재밌게 읽었다.

   비록 책으로 떠난 여행이지만  그 여행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며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었다.

그 이후로도 서점을 들릴 때며  산티아고 길에 관한 책을 한 권씩 더 사 와서 그렇게 아끼며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난 미국으로 왔고 이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언젠가 거길 가고 싶다는 맘은 늘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있을 때 함께 활동했던 선교단체의 간사님들이 그곳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속상하고 서운했다.

나한테도 물어봐줬으면 만사를 제처 두고 따라갔을 텐데....


미국 와서 한동안 아침산책과 운동을 할 때도 언젠가 가게 될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며

준비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할 만큼 그 길에 대한 갈망은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그런데.... 그 길에 가고 싶다는 얘길 하니 난 여건만 되면 무조건 가라고 나도 꼭 가고 싶은 길이라고 얘기했다. 그분의 아내는 나의 열변과 열망을 듣더니 '그래요?' 하며 무조건 반대만 했던 맘이 민망한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직장 때문에 길게 시간을 낼 수 없기도 하고 마침 스페인 쪽으로 출장 갈 일이 있어서 출장 마치고 바로 포르투갈로 가서 포르투길을 한 일주일정도 걷고 올계획이라고 했다.

내 덕분에 아내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좋아했다.


4월에 거길 다녀오고도 한동안 그곳에서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자주 그 길에 대한 얘기를 나누어주었다.



그 여파가 흘러 흘러 이젠 우리 집으로 왔다.

9월 중순까지 여러 가지 일로 무척 분주했던 남편의 스케줄을 정리하다가 10월쯤엔 아예 시간을 따로 빼서 좀 쉬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타주에 다녀오는 스케줄을 조금 조절하면 한 달 정도의 휴식을 가질 수 있을 거 같았다.

남편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스케줄을 정리하다가 남편에게 쉬는 동안 뭐 하고 싶냐고 혹시 산티아고 다녀오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너무 좋다고 하더니 이내 '거긴 같이 가야지'라고 했다.

난 지금 하는 일도 있고 코로나기간 지나면서 운동도 안 하고 몸도 약해지고 거기다 갱년기까지 겹쳐서 도저히 지금은 못 갈 거 같으니 이번에는 홀가분하게 혼자 가서 오롯이 좀 쉬다가 오라고 했다.

그래도 연신 내 맘을 너무 잘 아는 남편이 미안한 듯 머뭇거렸다.

원래 그 길은 혼자가야 더 좋은 거라고.... 나도 혼자 가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으니

 당신이 가서 먼저 답사해 보고 다음에 같이 갈 때 가이드를 잘해달라고 했다.

남편은 마지못한 척 그럴까 했지만 좋아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며칠 전 바쁜 일정들을 마무리하고 포르투갈로  출발했다.

남편이 보내온 순례길 사진


남편에게는 그동안 많이 바쁘고 힘들었으니 무리하지 말고 이번길은 순전히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하루에 걷고 싶은 만큼 조금씩만 걷고 중간중간 휴식도 가지면서 아주 천천히 쉬었다 오라고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일랑 다 내려놓고 좋은 시간 가지라고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남편은 그렇게 해외를 많이 다니고해도 일이 아닌 휴식으로, 거기다 가족도 없이 가는 건 처음이라 

약간 어색하고 긴장도 된다고 했다.


남편이 전화를 더 자주 한다.

아마도 그 길에 가고 싶어 했던  내 맘을 헤아려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그렇게라도 달래주고 싶어 하는 거 같다.

그 길에선 묵언수행을 해도 좋을 거 같은데 말이다.

 

오늘도 난  그 길을 걷는 이 시간이  남편에게 좋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부부일심동체이니.... 나 지금 그 길 어딘가에 서 있는 것이라  여기며 멀지 않은 시간에

함께 나란히 걸을 수 있도록 다시 운동도 시작해야겠다.

남편이 첫날에 포르투 성당에서 받은 크레덴시얼을 잃어버렸다고 했을때 난 너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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