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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May 08. 2024

짜장면은 배달시키지 않겠다는 결심

먹는 게 남는 시간

삼 일간 5번의 등산을 하고 아직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날의 오전.

늘 느끼지만 등산을 하면 살이 찐다.

아무래도 운동량이 늘면 몸은 그만큼의 섭취량을 원하고,

운동을 이만큼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마음이 슬쩍 동조하기 때문이리라.


또 몸이 아프거나 피곤할 때면(간혹 마음이 피곤할 때도) 여지없이 왕성한 식욕이 휘몰아친다.


아마 이는 당연한 작용으로 선사시대 이후 비만이 인류의 질병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그저 뚱뚱함이 부의 상징이었을 때까진 합리적인 진화의 방향이었을 것이다.

살기 위한.


그러나 이젠 손가락만 뻗으면 온갖 음식의 수렵이 가능한 시대이고 동일 질량 혹은 부피의 음식이 내는 칼로리는 비교 조차 할 수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는 식의 진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고, 몸과 마음의 욕구를 거스르는 다이어트는 필수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등반과 동반되었던 맛깔난 남도 지역의 음식에 늘어난 위는 쉬 줄어들지 않고 연속된 등반의 피로는 식욕을 부추긴다.


평소처럼 공복에 커피를 마시러 나온 카페에서 몰아닥친 식욕에 샌드위치 메뉴를 보고 또 보지만, 딱히 주문 버튼이 눌러지지 않고 내 욕망의 귀결점은 카페를 향하던 길에서 본 중국집임을 이내 깨닫는다.

짜장면과 군만두와 맥주.

양장피, 팔보채 같은 요리와 즐기는 특유의 향을 지닌 중국술도 좋지만,

내 뇌 속의 중국집을 지어 올린 건

짜장과 짬뽕의 갈등 그리고 가끔 뜬금없는 볶음밥과 울면의 역습

그리고 탕수육과 만두 그리고 기름진 입을 헹궈 줄 시원한 맥주.

함께 할 이가 있다면, 이 모두가 기본으로 한 상을 이루겠지만, 혼자라면 다시금 가지를 쳐내고 쳐내 근본의 근본만을 남길 수 밖 없다.

내게 있어 짜장과 짬뽕의 갈등은 8:2 정도로 짜장이 압도적으로 우세.

탕수육과 만두 그리고 맥주 중 포기할 수 없는 건 역시나 맥주.


한 번 달큰하고 고소한 짜장의 면발과 청량한 맥주를 떠올리자 다른 음식들은 맥을 못 춘다.

아직은 한창 오전인 시간이라 짜장과 맥주는 다소 무리가 된다 싶은지

국밥 국수 햄버거 돈가스…

이런저런 메뉴를 들이대 보지만 한 번 떠올라 버린 단짠고소 짜장을 물리칠 여력이 없다.

커피를 채 비워버리기 전,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근처 중국집으로 들이닥친다.


11시 10분.

아직은 비어있는 홀엔 곧 들이닥칠 점심 인파를 대비한 단무지와 양파가 세팅이 되어있다.

오늘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날.

그냥 짜장면을 시키고 싶지만, 4인상의 무게가 버거워 2천 원이 더 비싼 간짜장과 맥주를 주문한다.

먼저 나온 맥주를 따라 입을 축이고 식초를 둘러 새콤한 단무지를 입맛을 돋아 놓는다.

드디어 나온 양파 가득한 간짜장 소스와 부엌과 나의 거리가 주는 만큼의 텐션만큼 탱글해 보이는 면발.

소스를 부으려 그릇을 집어 들었다가 뜨거움에 내려놓고 곧 흐뭇하게 면을 한 젓가락 집어 소스 그릇으로 옮겨 과하지 않게 소스가 잘 코팅되어 볶아진 양파를 가볍게 비벼 입에 넣는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고 짠 감칠맛과 양파와 면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더는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지 않겠구나.

라고.

짜장면은 내가 주방장에게 팔을 뻗어 감격의 악수를 청할 수 있는

아직은 그릇이 뜨거워 소스를 부을 수 없는

그 가까움이 근본임을.

소스 그릇에 면을 한 젓가락씩 비벼 점점 짙은 색깔로 면을 물들여 먹다가

시원한 맥주로 입과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 좀 식은 그릇을 들어 면발 위로 붇는다.

이제 본격적이다.

후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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