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행으로 갈아탈까 하행으로 갈아탈까.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이동수단만 정해져 있을 뿐.
손 안의 스마트폰 속 지도에서 경부선 라인을 살피다가 추풍령이란 지명에서 눈길이 멈춘다.
이제는 사라진 비둘기호, 통일호 그리고 SRT까지 나의 오랜 기차 경험에 비춰 볼 때 내게 꽤나 익숙한 지명인 걸 보니 나름 번화했던 곳이겠거니 추측해본다.
평일 대전에서 추풍령까지 가는 무궁화호는 7대이다.
스마트폰으로 3시 표를 끊고_이런 건 창구에서 끊어야 제맛이지만, 이젠 마냥 아날로그일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_ 대전에 오면 항상 들리는 빵집인 성심당에서 ‘우리 엄마 학창 시절 판타롱 입고 통기타 치며 즐겨 먹던’ 부추빵을 사들고 상대적으로 한산한 동광장 방향 계단에 앉는다.
부추빵 즐겨 먹던 그 엄마는 이미 할머니가 된 지 오래일 텐데, 따위의 잡생각을 하며 맥주 한 캔과 함께 늦은 만큼 한가로운 점심을 즐긴다.
타고난 것인 듯 바쁘고 급한 것은 늘 힘이 들어, 무궁화호를 타고 여행하기를 즐겼는데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내가 소유한 것 중 시간이 가장 많은 상황이 되니 당연하다는 듯 무궁화호를 찾곤 한다.
오늘처럼 짧은 하루 여행에서 시간이 애매할 땐, 잠시 빠른 것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나의 여행은 대체로 무궁화호를 타면서 시작된다.
20년의 직장 생활을 마감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퇴직 후엔 흐느적흐느적 가능한 한 느리게 살고자 하였지만, 지나온 시간은 늘 그렇듯 어느 새이다.
회사를 그것도, 안정적인 공무원을, 정년을 한참 남기고 그만두었다고 하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왜요오??”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다음 반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왜 그만뒀냐며 매우 안타까워하거나, 너무 대단하다며 부러워하 거 나다.
안타까워할 일도 부러워할 일도 아니건만, 어쨌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겐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애매하게 한 번 웃어주면 그만이지만,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나는 그저 빠르게 달려가는 속도에 적응을 하지 못해 중간에 내렸을 뿐, 나는 내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당신이 더 대단해 보인다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이에 맞춰 학교를 다니고,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고, 그리고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몇 번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고 둘째를 낳고. 그렇게 서른 중반의 나이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당연한 듯 그리고 착실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순간순간 버거움을 느낄 때에도 그 또한 모두들 그러할 것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의문 없이 삶의 과정으로 여겼던 듯하다.
그리고 35살 즈음에는 남들보다는 좀 빠르게 승진을 하고, 26살 13평 낡은 아파트 전세로 시작했던 주거는 시간과 함께 착실히 평수를 넓혀 가다 44평 아파트에 이르러 있었다.
그렇게 보통의 삶을 꽤나 모범적으로 잘살고 있던 그때, 직장 내에서 생긴 작은 분란이 삶의 균열을 일으켰다.
직장에서 나는 언제나 할 얘기를 하는 편이었고 동기들보다 조금 빠른 승진 후에는 더 겸손하려 노력했지만, 승진 전에는 자신감이 있는 정도로 문제 될 것이 없던 태도는 승진 후에는 건방지고 무례한 것이 되어있었고, 어찌 보면 별일 아니었던 작은 분란은 부풀어져 나는 어느새 직장 내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세상에선 평온을 깨는 쪽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꽤나 흔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커진 균열과 그에 수반되어 벌어지던 이런저런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할 생각도 하기 전에 그 모든 상황의 시작이 오랜 시간 친구란 이름으로 함께했던 동기들이란 사실이 내 마음을 무너뜨려 버렸다.
한 번 무너진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배신감과 억울함 등이 얽힌 속앓이는 어느 하루 출근을 하고 책상에 앉았다가 왜인지도 모르게 그저 흘러넘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고 곧 병가와 휴직으로 이어졌다.
직장과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집에서 쉬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마음의 병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기억들과 상처 억울함, 서글픔, 자책 등 온갖 감정이 버무려져 끝도 없이 나를 괴롭히다가는 이내 지쳐 저 밑으로 한 없이 침잠해져 버리기를 매일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겨우 아이들을 챙겨 어린이집과 학교에 보내고 나면 그저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시간들이 이어졌고, 지켜보던 남편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조심스레 병원에 가보기를 권했다.
막연히 ‘신경정신과’란 것에 거부감이 있었던 나는 병원에 가기 전 마지막 노력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이해 혹은 치료해 보고자 상담심리학과에 편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얕게나마 심리학을 접하고 나니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며 내가 사는 삶과 내가 나아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을 생각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아니란 것,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속도가 내게는 버겁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심리학 공부와 책 읽기로 어느 정도 나를 수습하고 다다른 결론은 퇴직이었지만 그보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도 있기에 속초로 이사를 가보기도 하고 삶의 방식을 적게 소유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며 6년이란 시간이 보냈다.
그리고 최종 기점으로 삼았던 공직 20년이 되던 해, 다른 것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타고 있는 이 기차에서 내리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미련 없이 나 자신의 관점에선 나름 이런저런 미련들을 떨쳐 내며 퇴직을 했다.
퇴직 전 마지막 직장생활을 한 곳이 대전 이어서일까. 이런저런 상념이 가득한 점심을 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어느새 출발 시간이 십여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평일 오후라는 시간대를 감안한다 해도 다른 플랫폼보다는 다소 한산하지만, 저마다의 목적지가 있을 사람들이 무궁화호를 기다리고 있다.
기차가 도착하고 자리를 찾아 앉는다. 다소 낡았지만 KTX의 좌석보단 넓고 편하다. 각자의 취향이고 각자의 선택이지만, 나의 취향은 확실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철그덕 철그덕 소리를 내며 기차가 달려간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감상에 잠기기도 하고 잠시 책을 들여다보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추풍령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짐을 챙겨 플랫폼으로 내려선다.
추풍령역에서는 나를 포함 세 명의 사람이 내렸다. 다들 목적지가 있는 듯 바쁘게 역사를 빠져나가고 목적지가 없는 난 어슬렁대며 역사를 돌아본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추풍령이라는 제목의 옛 노래 가사가 적힌 비가 눈길을 끈다.
추풍령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 시 생긴 역으로 경부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라고 한다. 지금의 역사는 2003년에 철거하고 새로 지은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오래됨과 새로움, 빠름과 느림의 공존’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다. 그렇게 역사에 대한 설명도 읽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한여름의 열기가 너무도 쨍해 보이는 밖으로 나갈 맘의 준비를 하고 있자니 역사를 어슬렁대는 내가 수상해 보였는지 역무원이 다가와 ‘다음 열차까지 멀었어요’ 하신다.
손님이라고는 별로 없을 한산한 역에 나는 예기치 않은 불청객이리라.
다음 기차 시간까진 3시간이 넘게 남아있다. 대략 돌아갈 시간은 맘으로 정하고 밖으로 나선다.
추풍령역 풍경들_중간은 오래된 급수탑
역 바로 앞이 읍내인지 지도를 살펴보니, 제법 상가들이 즐비하다 때마침 배가 고프기도 하고 식당들이 많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즐비한 식당과 다방, 방앗간, 금은방, 약방까지 예전엔 꽤나 번화했을 곳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중 영업하는 곳은 별로 없는 듯, 문이 열린 곳이 별로 없다. 메뉴를 고르는 건 사치,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아 들어간다.
가끔은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맘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끈한 순대국밥 한 그릇에 소주를 한 병 시켜 느긋이 마신다. 집에 온갖 먹거리가 넘쳐날 시골의 소읍 식당은 실패가 없다. 마지막 잔과 마지막 남은 국물을 마시고 살짝 오른 취기에 기분 좋게 식당을 나선다.
한 여름, 한낮의 볕은 여전히 한창이고 추풍령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여전히 여유롭다. 더위 사이를 피하고자 가능한 천천히 소읍을 걷다 보니 유난히 다방이 많다. 카페가 아닌 다방. 은하수, 약속, 용궁, 제일, 샘 다방을 지나 10번째 다방인 역 앞의 정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손님은 나 하나.
반가운 인사와 함께 날이 너무 덥다며 혼자 계셨으면 켜지 않았을 에어컨을 켜주신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얼음 가득하고 달달한 감식초에 더위는 금방 가신다.
핸드폰도 들여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는 내가 무료해 보였던지 “여기 사시는 분은 아닌 것 같은데...”를 시작으로 소소한 대화가 이어 진다.
불량하게 학창 시절을 보낸 아들이 맘을 잡고 공부해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한 이야기에서 여사장님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어린다.
더위가 가신지는 오래이고 살짝 몸에 서늘함이 깃들 즈음 다방을 나와 역사로 들어가 플랫폼으로 향한다. 어느덧 햇살도 한 풀 숨이 죽고 흰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이 어려있다.
내가 탈 기차는 경부선 상행 무궁화호.
일단은 대전행 표를 끊는다.
목적지를 정하진 않았다.
대전역으로 향하는 동안, 혹은 대전역에 내려 옆 앞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정하면 될 일이다.
내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들, 사는 동안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들 어떠한가. 나는 다만 대전역에 내려 느린 무궁화호를 타고 생의 어느 한 곳으로 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