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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구 Mar 13. 2024

[영화 리뷰] 어느 가족 _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

브런치를 떠난 지 오래됐지만.


다시 플랫폼을 찾아 떠도는 와중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고 일단 어디라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에 브런치를 다시 로그인했다.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가족은 불가침의 영역이자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가족의 범위는 나와 내 부모, 형제, 친척, 외가를 모두 포함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회와 부딪치며 내가 생각한 가족은 사실상 나를 낳아준 부모와 형제, 배우자가 아니라면 쉽사리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 나아가 사랑으로 함께한 배우자도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나이를 더 먹고 더 넓은 곳을 경험하며 부모와 형제로 남은 그 가족마저도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요즘은 그런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지만) "나는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으로 엮인 관계는 쉽사리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은 절대 불가침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부모와 형제, 사랑하는 배우자도 내가 아닌 남이기 때문에 깨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친척과 외가, 배우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와 형제가 '남'이라고? 하며 불편해한다. 심지어 이 이야기를 부모한테도 한 적이 있었는데, 몹시 불쾌해하셨다. 사실 내가 저 말 뒤에 붙이려던 건 "그러니 아무리 가족 관계여도 나를 다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지 말고, 나를 언제나 보듬을 거라 생각하지 말고 더 조심스럽고 잘 대해줘야 한다"는 말이지만 괜히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저 말과 뒤에 붙이려는 말의 텀을 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내가 관계나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하던 말과 생각을 다시 곱씹게 만들었다. 영화는 도쿄에서 하츠에의 연금을 기반으로 각자 일용직과 파트타임일을 하며 사는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어느 가족(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이모 아키, 아들 쇼타, 할머니 하츠에)이 부모의 학대와 방치를 당하는 아이 유리(쥬리, 린)를 발견하고 데리고 와 같이 살다 모종의 사건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것까지 그린 영화다.


 하츠에의 연금을 기반으로 각자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이 가족은 습관적으로 물건을 훔친다. 그리고 물건을 훔쳐서 쓰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당연하듯 대한다. 하츠에의 연금과 각자 일용직을 하며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돈이 쪼들려서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니고 [워크셰어]라는 점에서 도둑질은 혈연이나 문서처럼 이 가족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공통사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처음 유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을 때 이 가족들은 훔친 물건으로 한 요리는 유리에게 주지 않고 돈을 주고 산 크로켓만 유리에게 준다. 도둑질로 얻은 것은 가족에게만 해당하며, 유리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리가 훔친 물건으로 만든 요리를 먹게 된 것은 유리를 잠시 돌봐준 뒤 다시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돌아갔을 때 유리의 부모가 유리를 학대하고 있는 정황을 보고 측은함에 다시 집으로 데려온 이후다. 온 가족이 같이 훔친 물건으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유리가 다가와 처음 훔친 밀개떡을 같이 먹는 장면은 이후 유리가 이 가족에게 편입됨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후 유리가 실종 되었다는 뉴스가 전국에 퍼지고 유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기로에서 유리는 부모의 학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고 이들은 유리에게 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같이 살게 되며 가족이 된다.


 처음 린과 가족은 어색하고도 낯선 관계로 지내지만 각자 학대와 버림, 결핍의 상처가 있다는 공통점에서 서로를 보듬고 정과 진정한 가족애를 나누며 점점 진짜 가족으로 변해간다. 그 가족애의 절정은 평생 바다를 보지 못했다던 린을 위해 온 가족이 바닷가로 놀러 가 즐거운 시간과 추억을 쌓는 장면에서 폭발한다. 그러나 바닷가에 다녀온 이후 하츠에는 자던 도중 자연사 한다. 오사무는 급하게 구급차를 부르려 하지만 연금 수령을 계속하기 위해 노부요는 가족들에게 할머니를 집 밑에다 묻어버리자고 한다. 결국 이들은 하츠에를 암매장하고 할머니가 마치 계속 살아 있는 것 처럼 해 그 연금으로 생활을 한다. 이 가족의 변화만큼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쇼타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변화를 겪는다. 예전에는 가족의 구성원임에 당연히 워크셰어라는 점에서 물건을 훔쳤지만 린 이라는 동생이 생긴 이후 이 모든 것에 회의감을 느낀다. 아무리 가족 구성원을 이어주는 공통점이라 할지라도 도둑질 자체는 나쁘고, 그 나쁜일은 나 하나면 족하지 사랑하는 동생까지 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회의감은 매번 물건을 훔치던 구멍가게 주인이 그 도둑질을 묵인해 왔음이 밝혀지고 주인이 죽어 문을 닫게 되면서 절정에 이른다. 평소처럼 물건을 훔치려던 쇼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물건을 훔치려는 린을 보고 일부러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물건을 훔쳐 도망치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다쳐 붙잡힌다. 다리를 다친 쇼타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보호자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급하게 도망간 오사무와 노부요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야반도주를 하려는 이들을 붙잡아 그동안의 행각이 모두 드러난다.


 이 가족을 붕괴시킨 건 사회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붕괴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쇼타다. 이 영화에서 쇼타와 유리를 제외한다면 이들이 어떻게 합의를 하여 같이 살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상황과 사건을 통해 어렴풋이 가늠만 가능할 뿐이다. 그렇기에 나이도 그렇지만 출신으로도 쇼타와 유리 그리고 오사무와 노부요, 아키, 하츠에로 구도가 나뉜다. 이 가족이 아무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정을 나누며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난다 하더라도 이들의 도둑질을 정당화할 순 없다. 오사무와 노부요, 아키, 하츠에는 이미 어른이고 이 모든 삶의 루틴을 만든 이들이기 때문에 가족을 이루는 공통점인 도둑질이라는 고리를 깰 수는 없다. 린도 불가능하다. 린은 이제서 학대와 버림에서 벗어나 회복단계인 소녀기 때문이다. 결국 이 고리를 깰 수 있는 건 쇼타뿐이다.  금속을 계속 갈아서 모양을 만들고 변태를 하는 매미를 응원하던 쇼타처럼 몸도 정신적으로도 성장해 가는 청소년만이 이 고리를 깰 수 있다. 자신의 도둑질을 묵인해 주고 동생에게는 시키지 말라고 조언하던 구멍가게 주인의 죽음과 자신의 도둑질을 따라 하는 린을 보고 쇼타는 결심한다.


"이 고리를 끝내야 한다"


 모든 게 밝혀진 시점에서 사회는 사회는 이 가족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들을 철저히 쪼개고 찢어놓는 것도 모자라 서로에게 미처 남기지 못할 말과 행동조차 꾸민다. 혈연이나 사회적 합의보다 더 끈끈해 보이던 이 가족은 사회로 인해 더 상처받고 붕괴된다. 결국 사회는 사회가 생각하기에 제일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원래(?)의 자리로 이들을 모두 되돌려 놓지만 이 원래의 자리라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고 불안해 보인다. 가족이 모두가 살아 있지만 연락도 받지 못하는 아키나 여전히 학대의 위험 속에 있는 린, 보육시설에 맡겨진 쇼타 모두 내가 보기엔 그전보다 위험해졌으면 위험해졌지 원래의 자리로 갔다고 해서 안전해 보이진 않는다. 그들이 안전할 거라는 건 사회가 믿는 모습일 뿐이다.


 영화에 나오는 가족들은 가짜다. 가짜 가족일 뿐 아니라 이름도 가짜다. 심지어 진짜 이름이 있는 쥬리 조차 린이라는 가짜이름을 붙여준다. 가짜 문어로 노는 린, 가짜 미끼인 루어 낚시를 하는 쇼타, 풍속업소에서 가짜 사랑으로 돈을 버는 아키. 이 영화는 온통 가짜들과 함께 가짜가족의 가족애를 보여주면서 진짜는 무엇인지 계속 내게 묻는다.


진짜란 무엇일까.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정말 성스럽고 절대적인 것일까.


 관계는 늘 어렵지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이는 특히나 더 어렵다. 유독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는 건 그 관계가 영원하고 굳건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 때문에 가족과 사랑하는 사이의 관계에서 사람은 좀 더 쉽게 말하기도 하고 나를 이해해 주겠지 나를 보듬어주겠지 하고 말도 잘 안 하기도 하고 되는대로 행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믿음이 있다면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단단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부러지면 상처는 더 깊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이제 완전히 떨어지게 되며 비로서 말하는 쇼타의 아버지라는 대사와 아무도 없는 빈 아파트에서 가짜 가족과 함께 있던 시절 배운 노래를 부르는 쥬리(린), 빈 폐가에 찾아간 아키를 보며 과연 사회가 이들을 행복하게 만든게 맞을지. 이들의 미래가 앞으로 좋아질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먹먹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희곡을 읽었을 때 그럼에도 가족은..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가족을 보고 나서는 이러함에도 가족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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