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팝니다.
바람개비 팝니다.
출근길 버스를 타고 길음뉴타운 버스정류장에 내려 장인이 만든 집이라는 만둣집 쪽으로 길을 건너, 역 쪽으로 걸어 가다 보면 요새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개비가 보인다.
문화사.
문화사라는 곳이 무엇을 파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가게 대문에 도장, 인쇄라는 글이 적혀있고 가게 주변에 돌고 있는 바람개비들과 가게 대문에 적혀있는 글귀.
바람개비 팝니다.
라는 글귀로 나는 대충 생각한다. 인쇄나 도장 만들고 바람개비도 파는 집이네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바람개비를 판다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일까. 차라리 원래 본업인 도장이나 인쇄분야에서 더 특출 난 것을 내세우면 가게가 더 발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왠지 가게의 묘한 분위기에 바람개비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라는 판타지스러운 상상을 품지만 이곳은 내가 보고 있는 동안에는 손님이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바람개비에 대한 기억이라면 어릴 적 초등학교 때나 유치원 때는 자주 만든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가 없던 나는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이불속에서 우주선 놀이도 하고, TV에 나오는 종이 접기 프로그램을 보고 혼자 종이 접기에 열중하기도 하였다.
바람개비도 그랬다. 내가 종이 접기를 하여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통에 있거나 구석에서 찢어지고 뭉개질 뿐이었다. 어차피 만들 때 TV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만든 하찮은 것이니까. 다른 종이 접기처럼 바람개비도 그랬다.
유일하게 우리 집에서 내 종이 접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친할아버지 밖에 없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사지 못해 바람개비를 꽃 모양으로 접어 주었는데 할아버지는 그것을 참 좋아했다. 내가 준 그 어떤 것보다 그것을 참 좋아했다.
바람개비를 후후~ 불면서 바람개비를 불어보기도 하고 여름이면 항상 쓰고 다니는 챙 넓은 모자틈에 끼워 산책 나가기도 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 생각에 할아버지와 나와 함께한 기억이 없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끔 가족여행을 갈 때 같이 옆자리에 앉거나, 밥을 먹을 때 옆자리에 앉은 것, 종이 접기를 준 것.
가끔 바람개비를 볼 때면 내게는 기억조차 나지 않고 의미 없는 유치원, 초등학교, 혼자 놀던 시절이 생각난다.
이제는 종이 접기 대신 잔뜩 만드는 여러 가지 서류들을 처리하고, 정신없이 일을 한다. 매일 매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6시가 땡 하고 치면 무슨 바쁜 일들이 있는지 다들 바쁘게 집으로, 술집으로 향한다. 나도 향한다.
아직 저녁이 되지도 않았는데 비가 오렸는지 밖에는 어둠이 깔렸다.
서둘러 뛰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길거리에 묶어놓은 바람개비를 풀고 문화사 안에 바람개비를 들여 놓는다. 이내 어둠이 깔리고 비가 오고 하루 종일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비가 오네요'라는 의미 없는 말만 던지고 음악을 틀어준다.
손님이 없는 가게 안에서 바람개비를 만든다.
계속해서 바람개비를 만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람개비 만든다.
바람개비 팝니다.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