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등학교에서 강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내 책상의 맞은편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었는데, 그 테이블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이 불려와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너무나 협소한 공간이었기에 내 자리에 앉아있으면 의도치 않게 한 개인의 정보와 가족사를 듣게 된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아이, 한쪽 부모만 있는 아이,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 반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 학교 짱인 아이…… 적은 나이에도 묵직한 사연들을 가진 아이들도 제법 많았다.
아쉽게도 그들의 대부분은 명예로운 일로 그곳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가슴 아픈 사연 하나씩을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지 말았어야 할 잘못도 가진 아이들이 주로 그곳에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실내는 항상 무거운 침묵이 흐르거나 어떤 날은 살벌한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그런 일을 매일 대하는 선생님이나 자주 불려오는 아이들이나 안타깝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평소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내 책상의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에서 한 학생이 담임 선생님에게 호되게 야단맞고 있었다. 학생은 쉬는 시간에 친구를 때렸고, 맞은 아이는 코가 골절되어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넌 어째 안 좋은 일에서 빠지는 법이 없냐? 이번에는 그냥 넘기기 힘들 것 같다.”
선생님은 다소 격양되었지만 안타까운 말투로 학생에게 말했다.
그 학생의 교내폭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했다. 학생은 굳은 표정으로 손가락만 연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1시간 뒤쯤, 중년의 남자 한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들어오면서부터 침통한 표정의 남자는 한눈에 봐도 앉아있는 학생의 아버지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학생과 그의 아버지는 선생님을 마주 보며 나란히 앉아있었다.
선생님은 학생의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곤 이번엔 학교에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 섞인 얘기를 했다. 학생의 아버지는 아무런 얘기도 없이 듣고만 있었다.
잠시 후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학생한테 말했다.
“넌 일단 수업 들어가 있어!”
학생은 경직된 얼굴로 사무실을 떠났다. 사무실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후, 학생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엄마 없이 혼자 키우다 보니…… 제가 일하느라 잘 돌보지 못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학생의 아버지는 갑자기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당황한 담임 선생님은 얼른 티슈 몇 장을 뽑아 건넸다.
학생의 아버지는 그렇게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학생들이 혼나던 테이블에 앉아 아이가 그 공간을 떠나기 전까지 침묵으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헤아려보았다.
나는 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지도 못한 채 아버지라는 존재의 고된 슬픔을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이는 알까? 아버지가 남몰래 흘렸던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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