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디자인 노트 07
나의 영상 제작 학습 일지
현재의 문맹자는 영상을 모르는 사람
모홀리 나기가 “미래의 문맹자는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면, 현 시점에서 문맹자는 단연 영상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속한 밀레니얼은 여전히 글과 이미지의 지배를 많이 받지만, 내 동생이 속한 Z세대는 영상의 지배를 받고 있다. 검색을 하라고 시켜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뒤지고, 심지어는 오프라인에서 책을 찾기도 하는 동안 내 동생은 유튜브를 찾는다. 2008년생인 내 동생은(나이차가 많다) 모든 것을 유튜브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한글도, 영어도, 역사도, 정치도(..) 모두 유튜브에서 떼었다. 자기 빼곤 다 어른인 가족들 사이에서 초딩 나름의 박학다식을 뽐내고 있을 때 보면 유튜브가 마냥 교육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영상의 시대라는 말은 너무 흔하겠다. 내가 영상을 배우게 된 개인적인 계기는 따로 있다. 내가 가진 영상에 대한 로망을 키운 건 크리에이터도 유튜브 스타도 아닌 김태호와 나영석이었다. 무한도전의 해골 모양 자막과 윤식당의 영상미, 그런 것들이 영상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로망을 자극했다. 무한도전이 한창 흥행할 때는 PD 지망생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PD가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쉽지 않지만, 그때의 김태호와 나영석은 청소년 롤모델 1,2위를 다툴 정도였다. 모두들 예능 PD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혹은 언론정보학과를 가고 싶었던 아이들이 많았던 것도 이들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으며, 재수를 하던 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디어학부, 이른바 신방과를 쓰겠다고 우겼다. 반대에 부딪혔다. 경쟁률이 많이 높았다. 신방과를 결국 쓰지 못했고, 이렇게 국문과에 왔다. 국문과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신방과의 대체제로서 국문과를 택한 사람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영상은 신방과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만난 신방과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같은 것들을 배웠다. 물론 광고 제작이나 시나리오 글쓰기 등 재미있어 보이는 강의들이 눈에 밟히긴 하지만 실상 팀플의 향연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 내가 속한 전공에 감사하게 된다.
영상은 얼마든지 따로 배울 수 있었다. 혼자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맨 처음 영상을 만든 건 아이폰에서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영상 제작 어플을 통해서였다. 여행 영상을 찍어서 이리저리 짜깁기 해보고, 음악의 작은 효과음에 집중해 전환 타이밍을 조절하고, 마지막에 완성된 영상을 볼 때는 희열을 느꼈다. 영상을 만드는 건 역시 재미있었다. 다들 배운다는 프리미어를 한 번 써보고 싶어 졌다.
학생부 전형 세대인 나는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강박증이 있었던지라 프리미어도 당당히 독학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쓰고자, 어도비의 학생 요금제에 가입했고, 그 속에 포함되어 있던 프리미어를 무작정 다운받았다. 프리미어의 생김새는 꽤나 직관적이었다. 타임라인이 하단에 위치하고, sound와 video가 나누어져 있었다. 완성되어가는 영상은 미리보기 화면으로 플레이되고, 전환 효과도 이것저것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버튼을 눌러가며 실험을 해보고, 각각의 툴의 쓰임새를 스스로 터득했다. 1분짜리 영상에도 매우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단축키 그런 건 잘 모른다.
렌더링을 제대로 할 줄 몰랐으니 어떨 땐 화질이 엉망이고, 어떨 땐 규격이 어그러졌으며, 어떨 땐 또 용량이 너무 커졌다. 어찌 됐든 프리미어로 처음 만든 영상은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 영상이었는데,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반응이 나름 좋았다. 영상으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내게도 좋았다. 여행을 영상으로 남기면 생생함이 남달랐다. 그 이후로 여행을 가면 사진보다 영상을 더 많이 찍었다. 갔다 오면 숙제처럼 영상을 편집했다. (밀린 숙제도 많다) 그러다 보니 프리미어를 다루는 속도와 숙련도는 자연스럽게 단련이 되었다. 예전에 보고 꿈꾸던 예능 프로그램들처럼, 자막도 음악도 전환 효과도 타이밍에 맞게 넣는 과정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보니 시각적인 것과 글과 음악과 스토리와 맥락을 모두 다루는 영상은 내가 찾던 종합성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성.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종합적인 사고방식을 요하는 일이었다. 당시엔 tvn 같은 곳에 입사하고 싶었다. Cj enm 채용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다. 창의적 사고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단다. 딱이라고 생각했다. PD에게 필요한 건 영상 툴을 다루는 능력보다는 강철 체력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영상을 더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에프터이펙트를 배우게 되었다. 프리미어의 역할이 촬영한 영상을 짜깁기 하고, 자막도 넣고, 사운드를 조절하는 것이라면, 에프터이펙트는 그래픽에 기반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능을 한다. 효과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 넣거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만 구성된 모션그래픽을 만들 수도 있었다. 프리미어가 포토샵과 비슷하다면, 에프터이펙트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유사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에펙(에프터이펙트)은 프리미어처럼 고생하며 배우지 말자고, 강의를 수강해서 배웠다. 디노마드에서는 실무자를 만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예능의 화려한 영상 인트로를 포트폴리오로 뽐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걸 할 순 없겠지? 비슷하게라도 해보고 싶다,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위치가 가장 가깝고, 평이 좋은 강사를 택했다.
4주짜리 강의는 꽤나 빡셌다. 이틀의 주말을 투자해 강의를 듣고, 숙제도 하고, 복습도 해야 했다. 에펙의 생김새는 얼핏 프리미어와 비슷해 보였지만, 도저히 뭘 건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했다. 모르고 막 건드리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첫날은 가볍게 타이포를 움직여 보았다. 에펙의 원리는 타임라인에 따라 scale, rotation, position, opacity 값을 조절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Position을 예로 들자면, 1초 즈음 “이” 위치에 있던 것을 2초에 “저” 위치로 가있도록 만들면, 그 개체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움직임의 속도값은 그래프로 나타난다. 그래프의 모양에 따라 움직임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공을 땅에서 튀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자동차가 달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에펙은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그 원리를 배우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마지막 수업엔 개인과제를 냈다. 자유 주제로 무엇이든 배운 것을 복습해 영상을 만들면 됐다. 제주도를 다녀온 직후라 제주도에 대한 짧은 영상을 기획했다. 어떤 요소를 넣을지, 어떻게 움직이게 할지, 기획하는 단계가 꼭 필요했다. 배운 대로 만들어도 실수가 잦았다. 렌더링을 마치고 재생했더니 효과가 꼬여있기도 했다. 모션그래픽 하는 사람들의 제작 과정을 보니 타임라인에 수많은 바가 끔찍하게 많았다. 역시 영상의 원리는 노가다임이 틀림없다.
영상을 다룰 줄 안다는 건 다루는 수준과 상관 없이 어떻게든 쓸모가 많았고, 에펙은 쓸모가 더 많았다. “이렇게 멋있고 감각적인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때 생각한 걸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좋았다. 에펙으로 만든 영상이 가진 화려함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혹하게 했다. 제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배운 직후엔 신나서 여기저기 에펙으로 영상을 만들고 다녔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작은 영상 공모전 하나에서 상을 탔다. 돈이 들어오니 신이 났다. 이게 진짜 내 길인 것 같았다. 이대로 발전시키면 큰 능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영상에 대한 내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제대로 돈을 받지 않더라도 연습할 겸, 또 포트폴리오도 만들 겸 영상을 만들어주곤 했다. 어떨 땐 내 노동을 너무 헐값에 후려쳤나 싶어졌다. 영상에 들어가는 품은 엄청났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영상은 단지 있으면 좋은 것이고, 많은 돈을 투자하고 싶진 않은 것이었다. 이제 영상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그렇다고 비용 대비 영상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을 높이 측정하긴 쉽지 않다. 그러니 영상에 들이는 비용을 줄인다. 영상 노동자의 페이는 점점 줄어간다.
영상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회의감마저 들 즈음에 내 꿈은 다시 바뀌었다. 지금 영상 제작은 하나의 남들 보기 좋은 스펙으로 전락해 버렸다. 영상 제작을 그 자체로 업으로 삼기엔 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의 수족이 되기가 쉬웠다. 기획을 포괄하는 PD를 하기엔 영상 제작보다 더 중요한 많은 역량들이 필요했다. 탑 PD로 불리는 이들은 아주 일부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내가 흥미를 느꼈던 모션그래픽 영상은 PD가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주로 디자인팀이 담당하거나 외주를 맡겨서 만드는 것이었다. (내겐 꽤나 큰 깨달음이었다!)
생각과는 달랐던 영상의 길은 이제 나와 상관없는 길이 되었다. 하지만 디자인 툴을 많이 다룰 줄 아는 건 생각의 도구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툴이 여러 가지 있다는 사실이 “나는 아이디어를 꺼내고, 표현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기 좋게 만든다. 또 혹시 아나, 나중에 할 일이 없다면 치킨집 사장 대신 유튜버를 할 수 있을지. 한때 빠져있던 영상은 내 든든한 무기 중 하나다. 녹슬지 않게 가끔 관리해주어야 할. 그러니 조만간 영상을 다시 다루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