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굽음병 일기 - 프롤로그
함구하려던 병 얘기를 시작하는 이유
한 자리에 앉은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관절은 굳기 시작한다. 퉁퉁 부어오르는 발과 다리를 구성하는, 수천수만 개의 신경과 혈관, 근육, 힘줄, 인대. 그리고 뼈. 실시간으로 다리가 뻣뻣해지며 생기는 통증과 당김, 불편감을 이겨내려면 주기적으로 일어나 산책하고, 스트레칭해야 한다. 월급을 받는 사무실 노동자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
오랜 시간 동안 남들도 다 그렇게 지내는 줄 알았다. 몸이란 게 원래 30분만 앉아있어도 굳은 밀랍처럼 뻣뻣해지기 마련이고, 신발을 신기 힘겨울만큼 다리가 붓는 거라고. 딱히 정상성이 뭔지 고민해보며 살지 않았고, 굳거나 붓지 않는 다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괜찮은 느낌"이 무엇인지 사실 몰랐다. 2년 전 어느 날 아침, 거짓말처럼 양손이 굽지 않았더라면 여태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저주받은 체형'이니 뭐니 하는 시덥잖은 자조나 던지면서 말이다.
나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다. 어쩌면 강직성 척추염 환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루푸스 환자이거나. 진단이 현재진행형이니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다. 다만 그게 무엇이건 내가 지닌 이 병의 주요 증상은 명확하다. 전신의 크고 작은 관절과 근육이 굳고, 붓는 것. 때로 입안에 심한 궤양이 생기는 것. 배탈과 복통, 설사가 반복되는 것.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는 적당히 대충 '굽음병' 정도로 부르기로 한다. 불편함이 병이 되면서 나는 이제야 내 몸이 오랫동안 어떠한 경계 지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찌뿌둥함'과 '뻣뻣함'은 다르다. 이 감각의 작은 차이는 놀랍게도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 바뀐 라이프스타일은 일상 전반의 선택지를 좁히거나, 때로 그것의 보기들을 완전히 새로 들인다. 이러한 인과를 한 줄의 문장으로 다시 쓰면, '삶이 바뀐다'.
그렇다. 나는 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주는 당혹스러움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겨울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관절염 환자에게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올해도 겪어야 하는 좌절의 계절을 과연 나는 작년보다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쓰기로 한 이상 1년 전보다는 해볼만한 싸움이 될 지도 모른다. '겨울'. 그래, 이 이야길 시작하려면 그해 겨울의 장면을 먼저 소환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