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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레 Oct 12. 2024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우리는 모두 숙성 중인 미생물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11살 동춘. “대머리가 영어로 뭐예요? “ 뜬금없는 질문에 엄마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 대답한다. “드디어 영어 유치원에 가 볼 때가 되었구나.” 그렇게 늘어난 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 논술, 미술, 과학사 등등 시간표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쳇바퀴 돌듯 굴러가는 하루에 무념무상이 되던 동춘은 문득 궁금해진다. “선생님, 제가 이거 왜 하는 거예요? “ 선생님은 엄마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엄마는 선생님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계속 쌓여간다.



대한민국 교육 과정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동춘이가 대학 갈 때쯤 특별 전형이 생긴다는 정보에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꼬불꼬불한 글자들이 암호 같다. 수학여행을 떠난 밤. 우연히 소화전에서 막걸리 한 병을 발견하고 아침햇살 병에 담아 온다. 뽀글뽀글. 기포들이 올라오면서 소리를 낸다. 학교에서 배운 모스부호로 그 소리를 적어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르시아어로 해독해 본다. 이럴 수가. 로또 4등 번호를 알려주었다. 꿈속에서 상상 속의 인형 친구들 털복이, 숭이와 노래를 불러본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답안지를 잃어버린 문제집, 나이를 먹으면 언젠가는 정답을 알게 될 거야. 그건 아마도,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



동네에서 만난 자연인 아저씨 영진을 통해 로또를 사게 되었다. 정말 4등에 당첨되다니. 아저씨와 반반 나누고 헤어진다. 막걸리가 알려주는 것을 해독하기 위해 모스부호와 페르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동춘. 막걸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미션들을 던진다.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거야?” 궁금증이 생긴 동춘은 막걸리가 알려주는 대로 해보기로 한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건만, 막걸리가 아이에게 기포로 이야기하는 영화라니. 상상해 본 적 없는 콘셉트이라 나도 모르게 엉뚱함에 홀려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교육방송 속의 아이들처럼 또박또박 목소리를 높여 연기하지 않는 동춘의 무덤덤함이 참 좋았던 영화다.



동춘이는 공신폰을 쓴다. ’ 공부의 신 핸드폰‘이라는 뜻으로 통화와 문자만 가능하도록 만든 폰이라고 한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게임도 하고 지도도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짝꿍은 말하지만 동춘이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막걸리가 말하는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폰으로 탈옥한다. 똑똑함을 가졌으나 학교-학원-집만 다니던 동춘이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국 교육 현실에 상상력을 버무려 씁쓸하고 독특하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밤거리를 혼자 다니는 모습에 불안 초조 하면서도, 막걸리의 깊은 뜻이 함께 궁금해져서 동춘이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신기한 응원을 하게 된다. 동춘이가 선택한 마지막은 답을 찾기 위해서일까, 또 다른 질문을 위해서일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궁금해진다.



각본 연출을 작업한 김다민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평소 평생학습관이나 주민센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데, 전통주 만들기를 배우면서 막걸리를 배우게 되었다고. 방 한 구석에서 숙성되고 있는 막걸리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다니 놀랍다. 이 영화는 아이와 어른을 편 가르기 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미생물들처럼 보이게 만든다. 각자의 기억과 사연들을 안고 함께 성숙해지고 있는 가련한 존재들. 누구에게도 정답은 없다. 하다 보면 자기만의 방법이 생길 뿐. 모두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나만의 답이 생긴다는 그 ‘언젠가’를 기다려본다. 뽀글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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