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꿈에 나오면 순자는 납골당을 찾아간다. 서울의 작은 사찰 옆 납골당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의 유골함이 모여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목포에서 아버지의 납골당을 이곳으로 모셔온 건 오빠와 순자의 결정이었다. 함께 모셔두는 것이 자식으로서 마음이 편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곁에 오빠의 유골함도 있게 될 줄은.
산 꼭대기에 위치한 사찰로 올라가기 위해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산을 깎아 만든 좁은 도로는 울퉁불퉁 직진 없는 커브 길이 계속된다. 한참을 올라가니 익숙한 사찰 앞 식당이 보인다. 매번 망하는 자리인데 1년도 안되어 역시나 인테리어 공사 중이다. 건물 한쪽 벽면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해물탕집 벽화가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변하는 건 계절과 저 가게뿐이다.
사찰 입구에서 대웅전을 향해 짧은 기도를 드리고 들어가 참배를 드렸다. 버릇처럼 천장에 매달린 연등에서 가족 등을 찾는다. 나이가 들어 눈은 침침하지만 수많은 이름 속에서 자식들 이름을 찾으면 순자는 신기하게도 안심이 된다. 가족 사랑이 남다른 그녀는 매번 좋은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 연락하고 연등을 선점한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별채에 납골당이 있다. 문 앞에 붙어있는 대자보가 눈길을 끈다. 그곳에 이름이 쓰인 유가족은 관리 사무실로 연락 달라는 공지가 쓰여있다. 가족이 찾지 않거나 유지비를 내지 않는 유골함들은 한동안 저렇게 이름이 쓰여있다가 사라지곤 한다. 가족이 찾지 않는다니 그녀에게는 상상하기도 싫은 슬픈 일이었다.
의식처럼 “저 왔어요.” 속삭이고 손수건으로 유골함을 닦다가 순자는 오빠의 유골함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빠가 죽었다던 그날 밤처럼. 다시 정신을 차리고 관리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 분들이 사찰 뒷산에 뿌려드리고 싶다고 하셔서 유골함을 내드렸습니다.” 가족? 순자는 유골함 얘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올케였다. 오빠가 떠난 뒤 몇 년간 제사에 참석했지만 항상 기분이 나빠 돌아왔다. 차린 음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을 줘도, 제수상을 차려 보내도 고마워하지 않는 게 미웠다. 차라리 납골당으로 와서 오빠에게 술 한잔 건네는 게 편했다.
몰래 만나듯 찾아왔던 오빠의 유골함이 사라지자 허탈함이 밀려왔다. 한참을 뒷산에서 오빠를 부르며 울다가 돌아가는 길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곁에서 며느리가 듣고 있는지 아들의 말소리가 조심스러웠다. “그 가족의 결정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엄마. 우리 가족끼리 잘 살아요.”
순자는 아들이 말하는 그 가족에 자신이 포함된 것인지 갑자기 의문스러웠다. 가족은 어디까지일까? 평생을 봐온 오빠의 유골함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목숨처럼 귀한 자식들도 결혼 후에 남보다 더 눈치를 보고 있다. 지금 들어가서 만나게 될 징글징글 한 남편만이 내 가족이라면 순자는 유골함의 가루처럼 날아가 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