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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스템으로만 말한다

더 이상 감정과 의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삶의 구조 설계법

by 하레온

당신은 의지가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은 결심의 달인이지만, 실행의 초보자입니다. 새해 다이어리는 원대한 목표들로 가득 채워지지만, 그중 꾸준히 지켜지는 건 손에 꼽죠. 새벽 기상, 매일 운동, 외국어 공부... 수많은 결심들이 왜 작심삼일로 끝나는 걸까요? 우리는 번번이 '의지 부족'을 탓하며 자책의 늪에 빠집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는 자괴감은 어느새 익숙한 감정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모든 실패가 당신의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구조'의 부재 때문이었다면 어떨까요? 이 글은 바로 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번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의지력을 쥐어짜는 대신, 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삶을 바꾸는 것은 결심이 아닌 구조일 수 있습니다.




본론 1: 의지력이라는 위험한 착각

Image_fx - 2025-10-12T103850.585.jpg 거대하고 붉게 깜빡이는 배터리 아이콘 앞에 지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의지력이 고갈된 상태를 표현한 삽화.


우리는 '의지력'을 무한히 솟아나는 정신적 에너지라고 착각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달콤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번아웃으로 이끄는 위험한 함정이기도 합니다.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가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으로 밝혔듯, 의지력은 근육과 똑같습니다. 사용하면 피로해지고, 언젠가는 반드시 바닥납니다.


그의 유명한 '래디시와 초콜릿 쿠키' 실험을 떠올려보세요. 배고픈 상태에서 눈앞의 초콜릿 쿠키를 참아내고 무(래디시)만 먹도록 강요받은 그룹은, 이후 해결하기 어려운 퍼즐 문제를 훨씬 빨리 포기해버렸습니다. 쿠키의 달콤한 유혹을 참아내는 데 이미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침에 100% 충전된 의지력 배터리는 출근길의 교통체증, 까다로운 상사의 요구,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거치며 빠르게 방전됩니다. 정작 퇴근 후 운동을 가거나 책을 읽는 등 정말 중요한 습관을 실천해야 할 저녁이 되면, 우리의 의지력 계좌 잔고는 이미 바닥나 있는 셈이죠.


이때 우리는 또다시 '결심'이라는 카드를 꺼내 듭니다. '내일부터는 진짜 달라질 거야!'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결심 중독'의 시작입니다. 고갈된 의지력 위에 세워진 결심은 사상누각처럼 쉽게 무너지고, 반복되는 실패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깊은 무력감만 남깁니다. 이제 우리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의지력을 탓하는 것을 멈추고, 의지력이 필요 없는 판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본론 2: 뇌를 속이는 자동화의 힘, 시스템

Image_fx - 2025-10-12T103920.416.jpg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첫 번째 조각이 쓰러지며 완벽한 곡선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도미노, 자동화 시스템의 힘을 상징하는 삽화.


의지력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바로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본질은 단순합니다. '내가 원하는 행동이 저절로 일어나도록 설계된 환경과 규칙의 조합'이죠. 의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다음 행동이 도미노처럼 자연스럽게 실행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핵심 원리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스탠퍼드 대학 BJ 포그 교수의 B=MAP 모델입니다. 행동(Behavior)이 일어나려면 동기(Motivation), 능력(Ability), 그리고 자극(Prompt)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이론이죠. 아무리 동기가 높고 능력이 충분해도, '지금 하라'는 명확한 신호(Prompt)가 없다면 행동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둘째는 환경 설계의 힘입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환경이 의지력을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의식적인 선택보다 주변 환경이 제시하는 경로를 따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의 스마트폰 홈 화면을 떠올려보세요. 첫 화면, 가장 누르기 쉬운 위치에 SNS나 유튜브 아이콘이 있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무의식적으로 그 앱을 열어보게 됩니다. 반면, 그 자리를 '명상 앱, 독서 앱, 메모 앱'으로 바꾼다면 어떨까요? 단지 아이콘의 위치를 바꾸는 작은 설계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를 채우는 생각과 행동의 리듬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행동의 마찰력은 줄이고, 원치 않는 행동의 마찰력은 높이는 환경 설계의 위력입니다.


이 개념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볼까요? 의지력은 자동차의 '연료'이고, 시스템은 '엔진'이며, 환경은 잘 닦인 '도로', 그리고 프롬프트는 '녹색 신호등'과 같습니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맞물려야, 비로소 행동이라는 자동차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연료(의지력)만 탓하는 운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엔진을 만들고, 도로를 닦고, 신호등을 세우는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론 3: 오늘부터 시작하는 나만의 습관 시스템 설계

Image_fx - 2025-10-12T103942.071.jpg 잘 짜인 격자 구조 위에 빛나는 정육면체 블록을 조심스럽게 올려놓는 손, 자신만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과정을 표현한 삽화.


그렇다면 나만의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요?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3단계를 소개합니다.



1단계: 마찰력 줄이기 (환경 설계)


행동과 나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최대한 좁히는 단계입니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당신의 하루 동선을 재설계해보세요.


� 아침을 위한 설계 [ ] 잠들기 전, 침대 옆에 내일 입을 운동복과 양말을 준비했는가? [ ] 일어나자마자 마실 물 한 잔을 머리맡에 두었는가? [ ] 커피 메이커를 예약하여 기상 시간에 맞춰 향기로운 커피가 내려지게 했는가?


☀️ 낮 시간을 위한 설계 [ ] 건강한 간식(견과류, 과일)을 책상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는가? [ ] TV 리모컨이나 게임기를 서랍 속이나 다른 방에 두었는가? [ ] 스마트폰 홈 화면 첫 페이지를 생산적인 앱(독서, 명상 등)으로 채웠는가?


� 밤 시간을 위한 설계 [ ] 잠들기 전 읽을 책을 베개 바로 옆에 두었는가? [ ] 스마트폰 충전기를 침실 밖에 설치하여 잠자리에 들고 가지 못하게 했는가?



2단계: 신호등 만들기 (트리거 설정)


새로운 습관을 이미 매일 하고 있는 기존 습관에 찰싹 붙이는 '습관 잇기'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기존 습관이 새로운 습관을 시작하라는 강력한 신호등(트리거)이 되어줍니다.


"양치질을 한 후에, 바로 물 한 잔을 마신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신발장 위 영양제를 바로 섭취한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 회사 주변을 10분 산책한다."


"지하철에 타면, 무조건 가방에서 책을 꺼내 한 페이지라도 읽는다."



3단계: 작은 성공 기록하기 (피드백 루프)


습관 형성의 핵심은 '성취감'이라는 보상입니다. 실패하기조차 어려운 아주 작은 행동('팔굽혀펴기 1개', '책 1페이지 읽기')으로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 성공을 눈에 보이게 기록하는 겁니다. 달력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앱으로 체크하는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우리 뇌는 '해냈다'는 쾌감을 느끼고, 그 행동을 반복하고 싶어 합니다. '연속 성공'의 사슬을 끊고 싶지 않은 심리가 강력한 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결론: 나는 오늘부터 시스템으로 말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자기 비난의 언어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의지가 약해', '나는 게을러'와 같은 말들은 사실 우리 자신을 잘못된 프레임에 가두는 주문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그 낡은 프레임을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의지력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결심이 아닌 환경과 구조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더 이상 당신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자신에게 맞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누구나 설계하고 개선할 수 있습니다.


자기 비난에서 자기 설계로, 이것이 새로운 시작입니다. 당신의 일상을 바꾸고, 나아가 삶 전체를 바꾸는 것은 더 이상 뜨거운 결심이 아닙니다. 차갑지만 확실하게 작동하는 당신만의 구조입니다.


나는 더 이상 결심하지 않습니다. 대신, 구조를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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