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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실패는 틀리지 않았다

좌절의 기록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법

by 하레온

왜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모두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어쩌면 성공에 대한 갈망보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더 강력하게 지배하는지도 모릅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좌초되었을 때, 수백 번 고쳐 쓴 기획안이 냉담한 거절의 대상이 되었을 때, 혹은 간절히 바랐던 승진에서 미끄러졌을 때의 그 감각을 기억하실 겁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허무함,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날카로운 자책감 말입니다.


밤새워 준비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경험. 그것은 단순히 '잘 안된 일'이 아니라, '내가 틀렸다'는 낙인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안전한 길을 택합니다.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고, 혹시나 잘못될까 봐 아예 시작조차 망설이게 되죠.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실패 회피 편향(Avoidance Bias)'입니다. 실패했을 때의 고통이 너무도 선명하기에, 그 가능성 자체를 피하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안전한 길만 걸었다면, 인류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실패라고 부르는 그것들은, 정말로 '끝'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니면 '막다른 길'이라고 알려주는 이정표였을까요?


이 글은 실패의 경험으로 좌절한 당신을 위한 변론입니다. 실패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에 아직 없던 길을 찾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지극히 당연하고 값진 통과의례입니다. 우리는 그 통과의례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그 여정을 함께 떠나보려 합니다.




1장. 실패는 손실이 아니라 데이터다

Image_fx - 2025-10-29T213840.850.jpg 수많은 어두운 삼각형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빛나는 피라미드를 이루는 모습, 실패 데이터의 축적을 상징하는 삽화


실패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손실', '낭비', '끝'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일 겁니다. 하지만 만약 실패가 종착역이 아니라, 단지 목적지로 가는 수많은 경로 중 하나를 기록한 '로그(log)'라면 어떨까요?


토마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1만 번 넘게 실패했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1만 번이나 실패한 기분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네. 단지 작동하지 않는 1만 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네." 이 말은 단순한 긍정의 주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의 거대한 전환을 의미합니다. 에디슨에게 실패는 '손실'이 아니라 '데이터'였던 겁니다.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그 방법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만 개의 '오답' 데이터는 '정답'으로 가는 길을 더욱 좁혀주는 핵심 정보가 됩니다.


이 관점은 현대의 혁신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청소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5,126번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던 제임스 다이슨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5,126번을 실패한 걸까요? 아닙니다. 그는 5,126개의 '공기 흐름에 관한 데이터'를 축적한 것입니다. 매번의 실패는 그에게 "이 구조는 왜 먼지를 제대로 분리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혁신적인 '사이클론' 기술이 탄생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손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강력한 증거이자, 가장 치열하게 얻어낸 '배움의 흔적'입니다. 실패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도전의 잔재물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실패 기록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세상에서 가장 값진 '원시 데이터'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지 배워야 합니다.




2장. 혁신은 '예외 값'에서 태어난다

Image_fx - 2025-10-29T213909.219.jpg 정돈된 회색 점들 사이에서, 홀로 붉은빛을 띠며 패턴을 벗어나는 한 개의 점, 예외 값을 상징하는 그래픽.


우리는 평균과 표준을 지향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평균 점수를 높이라 배우고, 직장에서는 표준화된 업무 절차를 따르도록 요구받습니다. 시스템은 안정성을 추구하기에, 평균에서 벗어나는 값, 즉 '예외 값(Outlier)'을 불편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종종 '오류'나 '문제'로 취급되곤 하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혁신은 언제나 그 '예외 값'에서 태어났습니다. 혁신은 평균값을 향해 순응하며 걷는 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스템이 '오류'라고 부르는 그 값, 누구나 피하려는 그 불편함 속에서 세상이 한 걸음 나아갈 가능성이 움틉니다. 실패는 바로 그 가장 강력한 '예외 값'입니다.


J.K. 롤링은 <해리 포터> 원고를 들고 수십 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습니다. 당시 출판 시장의 '평균적인' 기준에서 볼 때, 이 원고는 너무 길었고, 아동 문학의 성공 공식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거절 경험은 시장의 기준에서 볼 때 명백한 '실패'이자 '예외'였습니다. 하지만 그 '예외성'이야말로 <해리 포터>가 가진 독창성의 본질이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거절당할 때마다 원고를 수정하여 평균적인 기준에 맞추려 했다면, 지금의 <해리 포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실패는 기존 시스템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혹은, 당신의 방식이 기존의 표준과 다르다는 '예외적 데이터'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예외'를 '오류'로 치부하며 깎아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의 징후로 읽어낼 것인가 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실패 데이터 속에는 분명 평균적인 시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예외 값'이 숨어있습니다. "왜 이것이 통하지 않았을까?", "왜 사람들은 이것을 불편해할까?" 이 질문을 파고들 때, 우리는 비로소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혁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실패는 기존의 질서를 따르지 않았기에 발생한 '불편한 데이터'이며, 바로 그 불편함 속에 새로운 질서의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3장. 점을 연결하면, 실패는 길이 된다

Image_fx - 2025-10-29T213940.139.jpg 흰 배경 위에 흩어진 점들이 하나의 빛나는 금색 실로 연결되어 복잡한 별자리를 이루는 모습, 연결되는 실패를 상징


수많은 실패 데이터를 쌓았고, 그 안에서 예외적인 가능성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도대체 이 실패들이 어떻게 '성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연설에서 "Connecting the dots(점들을 연결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대학을 중퇴하고 우연히 들었던 '서체(Calligraphy)' 수업이 훗날 매킨토시의 아름다운 글꼴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미래'의 점을 내다보고 서체 수업을 들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단지 당시의 흥미를 따랐을 뿐입니다. 그 '점'은 1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의미 있는 연결'이 되었습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과거를 돌아보며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의 순간에, 그것은 그저 외롭고 고통스러운 '점'처럼 보입니다. NeXT 컴퓨터의 처참한 실패는 잡스에게 거대한 좌절의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가 없었다면, 그는 픽사(Pixar)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NeXT에서 개발한 운영체제 기술이 없었다면 애플 복귀 후의 iOS도 없었을 겁니다. 실패라는 점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하나의 거대한 '궤적'이 되었습니다.


실패를 견디는 힘을 우리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힘이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실패를 '활용하는' 힘이라고 재정의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흩어져 있는 실패의 '점'들을 언젠가는 반드시 연결될 것이라 믿고, 그 점들을 꾸준히 찍어 나가는 힘입니다.


캐롤 드웩 교수가 말한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은 바로 이 연결의 힘을 믿는 태도입니다. 실패를 '나는 여기까지인가 봐'라는 능력의 한계(고정 마인드셋)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점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까?'라는 과정(성장 마인드셋)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당신의 실패는 독립된 점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모여 당신만의 고유한 별자리를, 당신만의 '길'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에필로그: 당신의 실패는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을 '현명함'이나 '신중함'으로 포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닙니다. 성공의 진짜 반대말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음(학습의 부재)'입니다.


실패했다는 것은, 적어도 당신이 무언가를 시도했고, 그 결과로 '작동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귀중한 데이터를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데이터도, 어떤 배움의 잔재물도 얻을 수 없습니다. 실패를 피하는 것은 당장의 고통은 막아줄지 몰라도, 결국 우리를 어제의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할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지금 쓰라린 실패의 한복판에 서 있다면, 부디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을 멈추길 바랍니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저 세상에 없던 길을 가기 위해, 혹은 당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실험'을 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그 수많은 실패 기록, 그 '예외 값'들, 그리고 흩어져 있는 그 '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당신 안에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은 완벽한 시도보다, 실패로 증명된 진실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당신의 실패 데이터를 믿으십시오. 그 안에 당신의 다음이, 그리고 당신만의 위대한 혁신이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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