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두려움이 아닌, 걸어가는 신중함을 선택하라
혹시 당신의 마음속 서랍에도 빛바랜 계획서 하나쯤 들어있지 않나요? ‘언젠가 꼭 해봐야지’ 다짐했던 세계 일주, 퇴근 후 짬짬이 구상했던 쇼핑몰 아이디어, 차마 건네지 못하고 망설였던 고백의 말들. 분명 좋은 생각이었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계획이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생각’으로만 간직하고 있을까요?
아마 당신은 이렇게 답할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서요.” 너무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답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책임감 있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안도감마저 느낍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우리 마음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그 ‘신중함’이라는 멋진 가면 뒤에, 혹시 ‘두려움’이라는 맨얼굴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 남들의 비웃음, 안정된 현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우리는 이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신중함’이라는 그럴듯한 방패 뒤로 숨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 경험으로도 그랬습니다. 처음 심리학 강연을 시작하려 할 때, 저는 6개월 넘게 강의안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더 완벽한 자료가 필요해’, ‘나는 아직 부족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서툴고 부족한 모습을 보일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당신을 멈추게 하는 것이 정말 현명한 ‘신중함’인지, 아니면 당신의 가능성을 좀먹는 ‘두려움’인지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두려움과 신중함은 출발부터가 다른, 전혀 다른 길입니다. 이제 그 갈림길에서, 당신이 가야 할 진짜 길을 찾아 나서는 첫걸음을 함께 내딛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머뭇거릴 때, 뇌에서는 아주 원시적이고 강력한 경보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바로 생존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의 비상벨이죠. 편도체는 ‘새로운 것 = 위험한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공식으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실패의 가능성, 미지의 결과, 타인의 평가 같은 것들을 모두 생존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멈춰!’, ‘도망쳐!’라는 신호를 온몸에 보내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의 이성적인 뇌가 이 원시적인 경보를 아주 세련된 ‘변명’으로 포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상하니까요. “나는 지금 두려워서 못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신중하게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중이야”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편이 훨씬 근사하게 들립니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변명이 바로 ‘완벽주의’라는 함정입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조금만 더 준비해서 완벽하게 시작할 거야.” 이 말처럼 달콤한 독약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시작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영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물에 들어가는 것이지, 수영 이론서를 완벽히 독파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결국 시작하지 않기 위한 가장 정교한 핑계일 뿐입니다.
또 다른 흔한 변명은 ‘아직 때가 아니야’라는 막연한 기다림입니다. “지금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조금 더 경력을 쌓은 후에.”, “아이가 좀 더 크면.” 물론 타이밍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말하는 ‘때’는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심리적인 준비 상태를 의미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땐 그 어떤 좋은 ‘때’가 와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번엔 이런 문제가 있네’라며 또 다른 시작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낼 뿐이죠.
이처럼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과 결합하여 아주 교묘한 합리화의 가면을 만들어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의 해소’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과 ‘두려워 움직이지 못하는’ 행동 사이의 모순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사실은 도전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신중하게 생각하는 거야”라고 생각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죠.
‘손실 회피 성향’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도 두려움의 편을 듭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100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는 고통을 두 배 이상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얻게 될 불확실한 성공의 기쁨보다는, 지금 가진 안정적인 월급, 편안한 일상, 쌓아온 평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잃지 않는 선택’,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으로 기울게 됩니다.
이제 당신의 마음속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당신이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하는 그 계획 앞에서,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인가요? 아니면 실패했을 때 잃게 될 것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인가요?
그 변명들의 속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작은 아이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가 조금 과하게 작동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이제 그 두려움을 외면하는 대신,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울 차례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신중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도전을 포기하게 만드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적인 도전을 위해 위험을 뚫고 나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여기, 인류 역사상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신중함을 무기로 삼아 기적을 만들어낸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입니다.
1914년, 섀클턴은 27명의 대원과 함께 인류 최초의 남극 대륙 횡단이라는 위대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배 인듀어런스호는 거대한 유빙에 갇혀버렸고, 결국 얼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나침반도, 통신 장비도 무용지물인 세상의 끝, 영하 수십 도의 얼음 위에서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질식할 것 같은 최악의 상황. 만약 섀클턴이 두려움에 굴복했다면, 그는 ‘더 나아가는 건 불가능해. 여기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가장 신중한 판단이야’라고 말하며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신중함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생존’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한 가장 치밀하고 대담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신중함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과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부서진 배의 잔해로 작은 보트를 만들고,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했습니다. 대원들의 체온 유지를 위해 동물의 지방을 태워 불을 피우고,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유머를 잃지 않으며 끊임없이 그들을 독려했습니다. 그의 모든 판단은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섀클턴의 위대함은 그의 여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작은 구명보트 3개에 대원들을 태우고 망망대해의 얼음 바다를 건너 엘리펀트섬이라는 작은 무인도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곳 역시 안전한 곳은 아니었죠.
여기서 섀클턴은 또 한 번의 ‘계산된 위험’을 감수합니다. 가장 용감한 대원 5명을 직접 선발해, 7미터 남짓한 구명보트를 타고 1,300킬로미터 떨어진 사우스조지아섬의 포경 기지까지 가서 구조선을 가져오겠다는,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성공 확률이 희박한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처절할 정도로 신중한 준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항해술이 가장 뛰어난 대원을 선발했고, 바람과 해류의 방향을 계산했으며, 제한된 식량으로 버틸 수 있는 최대 기간까지 염두에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섀클턴은 기적적으로 사우스조지아섬에 도착했고, 4번의 시도 끝에 엘리펀트섬에 남아있던 22명의 대원 전원을 구해냈습니다. 남극 횡단이라는 최초의 목표는 실패했지만, 그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를 살려내는 더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섀클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신중함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에 ‘안전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명확한 목표를 위해 위험을 정면으로 분석하고,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하며, 성공 확률을 1%라도 높이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적극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당신의 도전을 가로막는 위험이 있다면, 그것을 회피할 이유로 삼지 마세요. 섀클턴처럼, 그 위험을 관리하고 넘어설 계획을 세우는 ‘신중함’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두려움의 정체를 알았고, 신중함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거창한 계획은 오히려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해서 실패하는 것조차 어려운 ‘첫걸음’을 떼는 연습입니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 드리고 싶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이중 가장 마음이 가는 것 딱 하나만 골라서 오늘 한번 시도해보세요.
첫째, ‘2분 규칙’을 활용해보세요.
어떤 일을 시작하기 망설여진다면, 자신에게 이렇게 약속하는 겁니다. “딱 2분만 해보자.” 이직을 위한 정보 검색이 막막하다면, 딱 2분만 채용 사이트에 접속해보는 겁니다.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다면, 2분만이라도 첫 문장에 대해 고민해보세요. 2분이라는 시간은 심리적 저항감이 거의 없어서, 미루고 있던 일을 시작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스위치가 될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일단 2분을 시작하면, 5분, 10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당신의 두려움을 종이 위에 꺼내놓으세요.
팀 페리스가 제안한 ‘두려움 설정(Fear-Setting)’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노트를 펴고 세 개의 칸을 만들어보세요. 첫 번째 칸에는 당신이 도전하려는 일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어보는 겁니다. 만약 실패하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보세요. 두 번째 칸에는 그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거나 ‘가능성을 줄일 방법’을 적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칸에는, 만약 최악의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그것을 ‘회복’하거나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 적어보는 겁니다. 이렇게 두려움을 막연한 감정이 아닌 구체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나면, 생각보다 별일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통제력을 되찾게 될 겁니다.
셋째, 아주 작은 성공을 의도적으로 경험하고 기록하세요.
용기는 성공의 경험을 먹고 자랍니다.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가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퇴근해보기, 왠지 어색했던 동료에게 먼저 점심 식사를 제안해보기, 회의 시간에 아무 말도 못 하던 내가 아주 작은 의견이라도 한마디 내보기. 이런 사소한 성공들을 스마트폰 메모장에라도 꼭 기록해보세요. ‘오늘 내가 해낸 용감한 일’ 리스트가 쌓여갈수록,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나도 할 수 있네’라는 자기효능감이 당신의 마음속에 단단하게 뿌리내릴 것입니다.
오래전,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저 길가에 서서 물만 바라본다면, 바다를 건널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길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완벽한 배가 나타나기를,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순풍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실은 한 걸음 내디딜 용기가 없었던 우리의 모습을 이제는 인정해주어도 좋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두려움이 나쁜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다만, 그 두려움이 당신 삶의 주인이 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그 두려움과 함께 한 걸음을 내딛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섀클턴이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을 무시하는 만용이 아니라, 두려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설 계획을 세우는 지혜로운 용기를 우리는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의 일상은 이전과 똑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속에는 작은 변화의 씨앗이 심어졌기를 바랍니다. ‘이건 두려움일까, 신중함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 단단한 마음 말입니다.
당신이 꿈꾸는 그 길은, 누군가 만들어주거나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의 걸음으로만 시작되고, 당신의 걸음으로만 이어집니다. 오늘 내딛는 그 사소하고 작은 첫걸음이, 훗날 당신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