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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Aug 08. 2018

[메트로폴리탄_11]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

by 르누아르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후원자였던 조르주 샤르팡티에의 부인(마르그리트 루이즈 샤르팡티에)과 아이들을 그린 작품이다. 조르주 샤르팡티에는 모파상, 졸라, 도데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간행하는 성공한 출판업자였다. 그는 ‘라 비 모데른(La Vie Moderne, 현대의 삶)이라는 잡지를 통해 인상파 화가들이 그들의 주장을 펼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잡지사 1층에 갤러리를 열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샤르팡티에 부인은 매주 금요일 남편을 통해 책을 발간한 저자들을 모아 살롱을 열었는데 이 모임에는 당대의 유명한 배우나 가수, 작곡가는 물론이고 화가들도 초청받았다. 그중에서도 르누아르는 가장 환영받는 손님이었다. 그는 샤르팡티에 부인의 살롱 모임을 통해 부유한 상류사회 후원자들을 소개받기도 했다. 물론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샤르팡티에 부인 자신이었다. 르누아르는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의 초상화를 총 다섯 점 제작했는데, 그중 하나인 이 작품은 그가 프랑스 미술계에서 명성도 높이고 그간의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 

제목 그대로 이 그림은 마르그리트 샤르팡티에와 그녀의 딸 조제트, 그리고 아들 폴의 모습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림 속 아이들은 모두 푸른색 원피스에 풍성하고 긴 금발머리를 하고 있어 소녀처럼 보이지만 가운데 앉아 있는 아이는 아들인 폴이다. 유럽 귀족 가문에서는 병마가 비껴가길 기원하며 어린 남아에게 여장을 시키던 풍습이 있었다.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은 샤르팡티에 부인의 느긋한 자세,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과 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 등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 누나 조제트가 걸터앉은 개의 심통 난 표정 또한 그림 전체에 정감과 재미를 더해준다. 르누아르는 빛이 주는 효과를 중시하는 인상파 화가이긴 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빛이 주는 효과보다 인생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주제였다. 이 작품은 그런 르누아르가 잡아낸 행복하고 편안한 가족의 한때이다. 

이 작품이 주는 편안함은 당시 초상화로서는 파격적인 구도에서 나왔다. 초상화는 대체로 가상의 배경 속에 모델을 세우거나 앉히고 그 모델을 성격, 직업 등을 설명하기 위한 소도구를 배치하기 마련이다. 그런 초상화들은 잘 들여다보면 모델들이 경직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어떤 초상화 속의 어린 소녀는 울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른바 ‘일본 방’이라고 불렸던 거실에서 모든 가구들이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놓인 채 그려졌다. 물론 배경을 채운 꿩이 그려진 황금색 일본식 병풍과 그림, 등나무 의자 등 당시 파리 상류 부르주아 가정임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어떠한 의도적인 재배치는 없었다. 더하여 엄마도 아이들도 초상화의 모델을 서고 있다기 보다 편안한 집에서 저마다 원하는 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다. 사진으로 찰칵 찍어낸 편안한 일상의 찰나처럼 보인다.  
  
더불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 그림의 색채이다. 르누아르는 대담하게 색을 대치시키면서도 조화를 이끌어내는 재능이 특히 뛰어난 화가였다. 황금색 배경 속에 윤기나는 아이들의 금발 머리, 거침없는 검은색의 드레스와 개, 그리고 유리식기와 물병의 반영까지, 르누아르는 이 작품에 깜짝 놀랄 만큼 동질적이거나 혹은 이질적인 색을 자유자재로 병치시켰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림 우측 상단의 정물의 색채를 두고 ‘티치아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에 필적할만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림에 활력이 없다'던가 혹은 '원근법이 드러나지 않는다' 등의 비판도 있었지만 사랑이 가득한 순간을 잡아낸 르누아르의 감수성과 뛰어난 색채로 인해 이 그림은 제도권 비평가들과 대중, 그리고 인상파 화가들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 참고 ]

이 작품은 1879년,  인상파 전시회가 아닌 공식 살롱전에 출품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살롱전은 심사 평점에 따라 전시 위치도 더 좋아지는 방식을 취했는데, 산만한 전시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점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오늘날 대형마트에서 골든존에 상품을 진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살롱전의 전시 스타일은 오늘날의 미술관처럼 작품들이 서로 간격을 두고 눈 높이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들이 서로 서로 맞붙어 빼곡히 전시되었는데, 옆으로만 붙은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여서 봐야 하는 아랫 부분부터 목을 뒤로 젖혀 봐야 하는 천장 부분까지 층층이 쌓여 걸렸다. 살롱전에 전시가 되기는 했지만 눈길 한 번 받기 어려운 작품도 부지기수였다. 르누아르는 그동안 소소하게 살롱전에 입상한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샤르팡티에 부부의 영향력 덕택에 이 작품은 살롱전에서도 매우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인구에 회자될 수 있었다.


[같이 보면 좋아요]

피아노 앞의 두 소녀 - 오르세 미술관                                                       피아노 앞의 두 소녀 - 메트로폴리탄 리먼관

1891년~92년 사이 르누아르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생존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신규 박물관, 뤽상부르 미술관에 전시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를 위해 같은 구도로 유화 5점, 파스텔화 1점을 그렸고 그중 오른쪽 작품이 최종 선택되었다. 이때 같이 그린 작품 중 하나가 메트로폴리탄 리먼 컬렉션에 전시되고 있다. 따뜻함, 행복한 순간이라는 그의 그림 주제와 다채롭고 과감한 색채와 필법이 잘 드러난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니, 비록 전시관은 따로 떨어져 있지만 놓치지 말고 챙겨 봐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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