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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Apr 02. 2018

[메트로폴리탄_2] 루벤스, 그의 아내와 아들

by 루벤스

이 작품은 네로와 파트라슈의 이야기,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화가, 루벤스의 작품이다. 루벤스는 단연코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였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나온 단어로 앞선 시대였던 르네상스의 기품 있고 절제된 고전주의 미술과 달리 선이 온통 요동치고 구불거리거나 혹은 색채에 파묻혀 흐릿하게 사라지는 화풍을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되던 용어였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불명확함이 오히려 감상자에게 여운을 남기고 마음을 사로잡았다. 꿈틀거리는 선과 드라마틱한 구성, 강렬한 명암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요소가 되었고, 전 유럽에 걸쳐 널리 받아들여지는 양식이 되었다. 그리고 루벤스는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바로크의 다채롭고 화려한 색채의 거장이요, 활달한 운동감, 역동성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루벤스는 독일의 쾰른 인근 지역에서 태어났다. 당시 신교였던 부모님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독일 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10살 무렵 다시 안트베르펜(앤트워프)으로 돌아왔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4세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시작했는데 미술 외에도 라틴어, 고전 문학 등을 두루 배우며 교양을 쌓았다. 이는 후에 유능한 외교관으로도 활동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23세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만토바 공국 곤차가 가문의 후원으로 이탈리아의 걸작들을 보고 배우면서 한편으로는 궁정화가로,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 사절로도 활동했다. 8년 만에 귀국해서는 당시 플랑드르를 통치하던 스페인 필리페 2세의 딸 이사벨라와 부군의 궁정화가가 되었으며, 역시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평화사절로도 활동했다. 훤칠하게 잘 생긴 이 화가는 그림 실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예의 바르고 우아했으며 6개 국어에 능통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보수 동맹을 이끌어 내는 등의 외교적 공로로 루벤스는 스페인과 영국 양국으로부터 귀족과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족적이 말해주듯 루벤스는 유럽 곳곳을 오가며 고전 화풍을 익히고 새로운 사조를 접하면서 통합, 체화하여 그만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그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옷감의 질감이나 피부의 매끄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물의 표면을 충실히 그리는 북유럽의 전통에 능했으며 원근법이나 해부학과 같은 구조를 통해 현실성을 갖추는 이탈리아의 화풍도 섭렵했다. 여기에 풍부한 상상력과 신화·역사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바탕으로 대작을 거침없이 구성해 내는 능력이 더해져 그의 작품은 역동적이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그림이 되었다. 그의 그림은 유쾌하고, 생기발랄하고, 따뜻하고, 사랑이 넘쳤다. 

당대에 높은 인기를 누린 만큼 그의 화방은 도제들로 넘쳐났는데 100명에 가까운 도제들이 그의 작업을 도왔다. 우선 작은 사이즈로 채색까지 겸비한 스케치를 그가 직접 그리면 제자들이 그 그림을 큰 화폭으로 모사한다. 스승의 구상이 제자와 도제들에 의해 큰 화폭으로 옮겨지면 루벤스가 다시 마지막 채색을 보완하여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마지막 채색은 옷자락일 수도 있고, 명암의 보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이나 얼굴 등 피부가 드러나는 곳은 그의 손을 거쳤다. 루벤스는  피부 표현에 특히 탁월해서 여인들이나 아이들의 피부는 우유에 피를 섞어서 그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이런 방식으로 양산하다 보니 그의 서명이 들어간 작품이 무려 3,000점(드로잉 제외 1,600점)에 이를 정도였고, 당연히 그림의 수준이 들쭉날쭉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물론 스케치부터 마무리까지 그가 전부 그린 것도 있고, 반면 작은 유화 스케치만 루벤스가 그리고 이후에는 모두 도제들이 그린 것을 그가 감수만 한 것도 있다. 

또 한가지 독특한 것은 자신의 그림 중 일부를 정물 분야의 대가라던가 혹은 동물 그림에 특히 비상한 화가 등을 초빙해서 그리게 했다는 점이다. 이런 현대적인 분업 생산방식으로 그는 밀려드는 주문 물량을 효과적으로 소화해 냈다. 그리고 막대한 부와 명성을 누리고 살았다.             


[ 루벤스, 그의 아내 헬레나 푸르망과 그의 아들 프랜]

이 작품은 만년에 그의 두 번째 아내 헬레나 푸르망과 그녀와의 사이의 아들을 그린 그림이다. 루벤스는 헬레나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는데, 대체로는 둘째인 페테르 파울로 보고 있으나 첫째 아들인 프랜이라는 설도 있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이 여아용 의상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어린 남아에게 여아용 의상을 입히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이다. 다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둘째 페테르 파울이 아닌 첫째, 프랜일 것으로 보고 있다. 


루벤스는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그의 나이 53세에 당시 16세였던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다. 첫 번째 부인과도 금슬이 좋았지만 두 번째 부인과도 매우 행복했다. 이 작품은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헬레나에 대한 경의를 담은 작품인 만큼 주인공은 단연코 젊고 예쁜 아내, 헬레나 푸르망이다. 회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마치 사진처럼 헬레나 푸르망에게 초점이 맞아 있으며, 스포트라이트도 그녀를 향하고 있다. 아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루벤스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는 아들의 시선도 모두 헬레나 푸르망으로 모인다. 이 작품은 루벤스가 만년에 그린 그림이요, 가족 초상화이다 보니 그만의 특징적인 역동성과 긴장을 찾아볼 수는 없다. 대신 행복한 가정생활과 가족 간의 사랑, 부유함, 여유로움 등이 넘쳐난다. 비록 역동성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그림을 통해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다른 그림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림의 배경 역시 그들 가족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헬레나 뒤의 장미꽃은 비너스에게 바쳐지는 사랑의 꽃이다. 앵무새는 성모 마리아의 모성을 상징하며, 배경에 등장하는 격자형 울타리와 여인 형태의 기둥, 그리고 분수는 모두 다산을 상징한다. (그들은 모두 5남매를 낳았다.) 인상파 이전의 그림들은 액자 안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담았다. 그림 속 대상의 의미를 낱낱이 아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인상을 구성하는 요소로 파악하는 그림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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