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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Apr 23. 2018

[메트로폴리탄_4] 비너스의 화장 by 부셰

로코코는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사이에 나타난 미술 양식으로 1715년부터 1780년 정도까지 지속된 취향이다. 당시 미술계를 선도하던 이탈리아에서는 격렬한 동작과 강렬한 명암 대비를 내세우는 바로크 양식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의 의지 아래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엄격한 구도와 형태, 완벽한 붓질 등 데생을 강조하는 고전주의가 더 우세했다. 그런데 1715년, 루이 14세의 서거를 기점으로 프랑스에도 변화가 몰려왔다. 다섯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루이 15세가 섭정을 따라 베르사유를 떠나 파리로 이주하게 되면서 루이 14세에 의해 강제로 베르사유에 불려와 기거하던 귀족들도 각자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동안 버려졌던 그들의 저택을 궁정 스타일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로코코 양식의 시작이다.  

 
로코코는 원래 건물 실내 장식의 모티브로 많이 사용되는 조개를 닮은 비대칭 장식을 의미하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파생된 말이다. 곡선의 정교한 장식이라는 측면에서 바로크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크가 보다 생동감 있고 장중하며 남성적이라면 로코코는 보다 세련되고 화려하며, 여성적이다. 바로크가 구불구불하고 명료하지 않은 선을 경멸하는 뜻에서 시작한 것처럼 ‘로코코’ 역시 초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작화 특징을 반영한다기 보다 사치스럽고 과장되었으며, 무게가 없이 가벼운, 즉 전체적으로 경박한 취향을 비하하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로코코만의 가치들이 새롭게 조명된 오늘날에도 사실 ‘로코코’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저변에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로코코는 로코코만의 화사함과 삶에 대한 낙천적 시각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전의 프랑스 회화들이 이탈리아 회화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로코코에 이르러 프랑스 회화가 비로소 독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로코코를 기점으로  회화의 중심지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어오게 되면서 오늘날의 디자인과 패션 중심지로서 '프랑스 파리'의 명성이 기틀을 잡게 되었다. 

회화에서의 로코코는 이 당시 풍미했던 궁정의 몽환적인 우아함과 삶에 대한 즐거움을 담은 장식적이고 화사한 경향으로 나타나는데, 로코코 화가의 대가로는 ‘최신 유행의 옷을 차려 입고 전원에서 축제 같은 삶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유형의 페트 갈랑트 회화군을 창시한 장 앙투안 와토와 그의 후계자 프랑수아 부셰, 그리고 부셰의 제자 프라고나르 3명을 손꼽는다. 고전주의가 득세하던 프랑스 화단에 로코코 회화가 들어갈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한 와토에 이어 부셰는 선배가 깔아 놓은 디딤돌을 딛고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최고상인 로마상(Prix de Rome)을 거머쥐었으며, 루이 15세의 궁정화가로, 나아가 왕립 아카데미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부셰가 궁정화가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루이 15세의 유명한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총애를 받아 그녀를 위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아래의 작품 비너스의 목욕 역시 그중 하나이다. 


[ 비너스의 화장 ] 

이 작품은 퐁파두르 부인이 루이 15세에게 하사받은 벨뷰 성의 분장실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한 쌍의 그림 중 하나로, 비너스를 중심으로 푸토(Putto, 그리스 신화를 차용한 그림에서 날개를 단 아기를 가리킴. 큐피드와 잘 구분되지 않음)들이 몸치장을 도와주고 있다. 푸토 혹은 큐피드는 비너스를 상징하는 도상으로 언제나 비너스와 함께 등장한다. 이외에도 진주조개에서 태어난 비너스의 또 다른 현신이라 할 수 있는 조개와 진주, 그리고 역시 비너스의 상징하는 비둘기와 장미 등의 도상도 함게 표현되어 있어 화면에 앉아 있는 여인이 비너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값비싼 비단과 대리석 기둥에서 느껴지는 감각적인 질감 표현과 화사한 색채와 등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는 부셰를 비롯한 로코코 회화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이전 세대인 와토의 여인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관능적이지는 않은데 비해 부셰의 여인들은 더 화려하고 관능적이다. 부셰는 특히나 비너스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남겼는데, 비너스는 화가에게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주제였다. (당시 여자의 누드는 신화에 나오는 대상을 그릴 때에나 가능한 것으로, 현실의 인물을 누드로 그리는 것은 스캔들 감이었다. 이 그림보다 100년도 더 후에 그려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그토록 세간의 뭇매를 맞은 것도 신화나 역사 속 주인공이 아닌 현실의 여성이 나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 그림에서 비너스의 모델은 바로 루이 15세의 정부로 유명한 퐁파두르 부인이었다. 퐁파두르 부인이 워낙 미모와 지성으로 정평이 나기도 했지만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를 퐁파두르 부인의 모습을 빌어 그렸다는 건 사실 당시 프랑스 국정을 뒤흔들었던 그녀에게 아첨하고자 했던 의도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퐁파두르 부인의 본명은 잔느 앙투아네트 푸아송(Jeanne Antoinette Poisson)으로 1721년, 비록 귀족은 아니지만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19세에 후견인(친부일 것으로 추정됨)의 조카인 샤를 기욤 르 노르망 데티욜과 결혼함으로써 귀족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24세가 되던 해에 루이 15세의 공식 정부가 되면서 남편과는 이혼하고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작위를 얻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음악, 춤, 연기 실력, 여기에 더하여 지적 교양과 말솜씨까지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지나친 사치와 과도한 국정 개입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불온사상이었던 계몽사상과 [백과전서]의 지지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프랑스의 도자기와 로코코 미술, 그리고 부셰의 큰 후원자였다.                  


[ 같이 보면 좋아요 ]      

Mezzetin by Jean-Antoine Watteau 

'페트 갈랑트' 양식이라고 불리는 우아하고 화사한 로코코 양식을 전개한 초기 로코코 화가,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의 작품이다.  메트로폴리탄에 전시되어 있는 와토의 그림은 화사한 연인들의 파티 장면이 아니라 우수에 젓은 광대의 초상화이지만, 그래서 더 눈여겨봐야 하는 작품이다. 와토의 작품은 화사함을 추구한 다른 로코코 화가들과 달리 그 작품 속에 섬세하고 우수에 젓은 감정을 담아내 더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화려한 축제의 요소인 광대가 무대 뒤에서 실연의 상처를 노래하는 장면이다. 화사한 로코코 양식의 무대인 우거진 숲의 한 켠에서 축제의 뒷모습,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광대의 표정에서 슬픔과 우수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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