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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May 21. 2024

009. 나의 상사일지

초코파이 씹는 날

관찰

 :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


(불평불만주의)


나의 상사를 초코파이라고 부르겠다.


나의 상사 초코파이는 나보다 10살 정도 나이가 많은 남성이다. 초코파이를 처음 만난 건 1월이었다. 약 5개월간 지켜보며 쌓여간 나의 불만을 풀어내기로 했다.


초코파이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겨울이었는데 그때도 여자를 소개해주면 피자를 사주겠다느니 헛소리를 해서 그냥 우리가 사 먹겠다고 했던 전적이 있다. 같이 일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역시나 여자를 소개받고자 하는 대가가 있는 자리였다. 물론 나는 퇴근 후에는 직장사람을 만나지 않기 때문에 단칼에 거절했다.(직장 내 친구가 생기면 만나기도 한다.) 내가 왜 나의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쓴단 말인가. 자신보다 10살 이상이나 어린 여자를 원하다니 참 염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만나는 기준이나 원하는 이상형은 개인의 자유이니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초코파이와 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초코파이는 자리를 잘 지키지 않는다. 틈만 나는 자리를 비워서 전화를 당겨 받아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때 상대방의 말은 늘 같았다.


"초코파이씨 또 없어요?"


초코파이는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다. 출퇴근을 할 때면 모두들 인사를 한다. 그런데 초코파이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네네, 하면 살짝 고개를 까딱한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좀 지나고 나서 알아차렸다. 초코파이는 인사를 받는 사람이구나. 나이가 많으니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는 어려운 걸까. 나는 초코파이가 아니라 이유는 알 수 없다. 초코파이의 또 다른 독특한 행동은 사람이 앞에 있을 때이다.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 사람과의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초코파이는 역시 남다르다. 앞에 있던 사람이 정확하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고 같이 온 사람과 무언가 상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초코파이는 자리를 떴다. 나는 그들과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라 어디 가냐고 물으니 커피를 타러 간다고 했다.

네? 지금요?

어떤 날에는 개인 전화를 받으러 나가며 나보고 하라고 했다.

네? 뭘요?


초코파이는 지금의 자리에서 일한 지 3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업무가 많지 않고 편하면 자리를 자주 비우더라도 일하는 방식이 마음이 안 들더라도 참을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코파이의 자리는 해야 할 업무가 꽤 다양하고 많다.

초코파이를 쭉 지켜본 결과, 초코파이는 어떤 업무를 하나  하고 있으면 그것을 하다 말고 다른 업무를 잘하지 못한다.(그래서 나한테 다 떠넘긴다.) 전화업무도 많은데 개인전화도 얼마나 자주 오는지 통화를 많이 한다.(그것도 나가서!!!) 담배도 태워서 담배타임도 있다. 요즘에 주차문제로 이동주차를 하러 나가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일을 효율적으로 하면 좋겠는데 매우 부산스럽고 중구난방이라 옆에 있는 사람까지 정신 사납게 한다. 나는 정확한 기준에 따라 일하고 싶은데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거나 기준이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정확한 지침을 주라고요!!!

최근 다시 발생한 나의 이명의 원인에는 초코파이도 있다.


오늘은 매우 바쁜 날이었다. 상대해야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우편발송과 서류정리가 밀려 있어서 바빠도 너무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자리를 자꾸 비우는 초코파이 때문에 안 그래도 여름날씨인데 열불까지 나서 쪄 죽을 뻔했다. 나도 내가 완벽하게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코파이도 분명 내가 거슬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초코파이를 씹지 않으면 이 열불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아 불평불만이 가득한 일지를 쓰고 말았다. 더 많은 초코파이의 만행이 있지만 이쯤에는 마무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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