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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29. 2024

047. 글을 쓴다는 것

쓰면 쓸수록 막막해지는

막막하다

1. 쓸쓸하고 고요하다.

2.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답답하다.

3. 꽉 막힌 듯이 답답하다.


매일글쓰기를 시작한 지 47일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했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이야기를 꾸며내는 게 좋아서 순정만화 속 줄거리를 각색해서 소설을 쓰고는 했었다. 노트에 시나리오처럼 적어서 친구들과 돌려보고는 했었다. 의외로 예민하고 감성적이라 시를 쓰는 것도 좋아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낯간지럽고 애절한 사랑시를 잘도 써댔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감수성이 풍부했던 여중생, 여고생 시절이었다. 쓰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작가가 된다는 것이, 시인이 된다는 것이 꿈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봐야겠다. 싸이월드부터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페이스북을 지나 인스타그램에 정착하게 되기까지 잘 쓰고 싶다는 생각과 잘 쓰지 못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적당히 끄적이며 지금에 이르렀다.


나에게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쓰는 사람. 소설가나 시인이 아닌 그저 쓰는 사람. 그렇게 살았다. 쓴다는 것은 막막하다. 일기조차도 솔직하게 쓰지 못하고 나 혼자만 보는 일기마저 거짓을 쓰기도 했다. 누군가 본다면 이런 나를 이상하게 볼지도 몰라,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 볼 수 있는 온라인에서의 글쓰기는 더더욱 제대로 쓰기란 어려웠다.


대학시절에는 감성적인 에세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같은 애틋하면서 감각적인 문체에 빠져있었다. 감성적이고 예쁜 문장으로 옮겨적으며 그런 분위기의 글을 꾸며서 적고는 했다. 그것은 나의 글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여전히 그저 쓰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누군가의 형편없는 글을 보며 이런 글로 작가를 하겠다고? 라며 건방진 생각을 했던 날들도 있었다. 나의 글이 평가받는 것은 지독히도 싫으면서 남의 글은 잘도 (마음속으로) 평가했다. 그러는 사이 형편없다고 우습게 여겼던 사람은 결국 꿈을 이루고 작가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함부로 남을 평가하면서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니 나야말로 형편없는 사람이었구나.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벌겋게 달아오는 내가 보였다. 이제는 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볼품없음과 형편없음을 잘 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쓰고 또 쓰고 자신의 글을 다듬고 성장시켜 나간다. 나는 전전긍긍하며 마음만 앞서서 제대로 시도도 하지 못한 사이에 그들은 성큼성큼 앞서나갔다.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글이라도, 형편없는 글이라도 뭐라도 써야 했다.


오늘은 S와 대화를 나누며 글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S는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잘 쓰고 싶지만 실력은 늘지 않는 답보상태의 자신을 답답해하고 있었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그저 해야만 해서 하는 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는 글을 쓰며 절망하고 좌절하는 중이다. 그런 시간을 건너 무엇이 될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고민 앞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잘 쓰고 싶은 마음과 자책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작은 온기를 나눠 받았다. 나를 보며 의지가 조금씩 생긴다는 S의 말을 가슴에 담아본다. 그렇게 나도 S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 조금은 덜 외로워졌다.


잘 쓴 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세계적인 대문호의 글이든 이름 모를 무명작가의 글이든 누군가의 마음을 울린다면 그것이 바로 잘 쓴 글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막막하기만 한 글쓰기는 계속된다. 100일간의 글쓰기의 끝이 어떨지 궁금하다. 계속 쓴다고 해서 잘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읽고 쓰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겠지. 그저 쓰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라도 중도포기하지 않고 완주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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