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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May 13. 2024

당신에게

첫번째 편지


당신에게


그 날은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당신은 살고 싶지 않다고 했고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당신이 슬픔과 우울 속에 지내는 것을 알았다. 내내 아프고 이루는 날들을 보낸다는 것도 알았다. 알았지만 나는 당신을 모른 척했다. 당신의 크기를 알 수 없는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보며 고민했다. 가야하는 게 맞는걸까. 이제 우리의 세계는 없어져버렸는데 나는 여전히 당신의 곁을 맴돌았다. 미워하고자 하였으나 미워하지 못했고 밀어내려 했지만 끊어져버린 끈을 놓질 못했다.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에게로 간다.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가는 길이 두려웠다. 이미 후회가 밀려왔다. 무엇을 바라고 나는 이렇게 무모하게 또 달려가는 것일까. 마음을 다시 돌려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마음을 두고 오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다정으로 당신에게로 향하던 마음을 끝장내고 싶은 것이다.


살고 싶지 않다는 당신의 말을 생각한다. 죽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지 않다는 그 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삶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삶이 다시 이어가고 싶은 작은 구조요청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 작은 손짓을 더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당신을 볼 자신이 없어 편지를 쓴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기 위해 오늘을 살라고,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위해 며칠을 더 살라고, 그렇게 간절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낸다.


당신을 기다린다. 비는 여전히 장마처럼 쏟아진다. 지난 날 당신과 함께 앉아있던 벤치에서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이 눈 앞에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그래. 이런 결말이구나. 이렇게 달려와도 후회할 것이고 오지 않았어도 후회했을 것이다. 나는 후회에 파묻혀사는 인간이니까.


이상하다. 마음이 후련하다. 나를 지독하게 붙들고 있던 집착과도 같던 이 사랑의 끝을 이렇게 만났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를 쓰려 한다. 썩어가는 이 지독한 사랑의 끝을 시작으로 다시 되감기를 하며 한 웅큼씩 뜯어 날려보내는 나의 이별작업을 쓴다.


보내지 못할 편지를 씁니다. 늦었지만 당신을 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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