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에게 왜 가면을 벗는가

민낯이 아름다운 사람도 있을까?

by 이혼광탈녀

우리는 왜 상대 앞에서 가면을 벗고, 숨겨온 본모습을 드러내려 하는가


우리는 타인 앞에서 자신을 숨긴다.

착한 사람인 것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인 것처럼.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하나쯤의

가면을 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독 어떤 사람 앞에서는 그 가면을 벗어던진다.

애써 숨겨왔던 원래의 나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 대상은 대개 배우자이거나 가족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가족에게 더 조심스럽고, 더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가족을 만났다면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다.


나는 왜 배우자에게만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지 의문이 들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친절하면서 말이다.

왜 배우자에게는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는 걸까?

왜 남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배우자에게는 서슴없이 할까?

집에서도 가면을 써야 할까?

집에서도 가면을 써야 할까?


그 질문은 곧, 배우자가 가진 안전함과 내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상대가 날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안도감이 그 답을 준다.

배우자는 ‘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쉽게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존재다.


내가 민낯을 드러내도, 이 사람은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


예전에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이야기인데,

일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배우자를 시험한다.

‘내 안에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면이 있는데, 이 모습까지 보여줘도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까?’


그리고 상대가 떠나지 않으면,

이상한 안도감과 만족감이 생긴다.


“역시 내 느낌이 맞았어.”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내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었는데도

상대가 그 모습을 허용해 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배우자에게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있다


우리는 배우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내 기분을 풀어주길,

위기 상황에서는 내 편이 되어주길.

이 기대가 충족될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불만은 쌓이고 실망은 분노로 바뀐다.

그 분노는 결국 타인에게는 숨겼던 민낯을 배우자에게는 거리낌 없이 드러내게 만든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운다.


왜 그럴까.

사회에서는 감정을 함부로 터뜨릴 수 없다.

그렇게 억눌린 분노는 씨앗이 되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상에게 향한다.

배우자는 그렇게 분노의 대리 표적이 된다.


민낯이 반복될 때, 관계는 무너진다


상대가 안전하다는 이유로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사과는 사라진다.

갈등은 반복되고, 결국 단절이 시작된다. 이것은 관계 붕괴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가면을 벗고 난 모습을 초라했다.


그렇다면 이 민낯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태어날 때부터 가족에게 험한 말을 하지 않고 늘 존중과 매너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태도는 성장 과정에서 길러진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상담 현장에서는 늘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의 성장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상담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신분석학 상담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정신분석학적 상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온전하고 완벽한 가정이 어디 있는가.

자녀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설명을 부모에게 돌리는 것은

부모에게, 가혹한 일처럼 느껴진다.

물론, 말이 험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같은 방식을 학습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쪽을 믿고 싶다.

나는 자기 결정과 학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방식이 편했고, 그 방식이 통했기 때문에 그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내가 민낯으로 상대를 공격했을 때 그 반응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패턴은 반복되고 학습되었다.

만약 내가 부드럽고 젠틀한 방식으로 소통했을 때 그 방식이 더 잘 통했다면, 나는 아마 그 방식을 배웠을 것이다.


학습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를 들어보자.

“엄마는 왜 이래! 나한테 해준 것도 없으면서!

나도 다른 애들처럼 롱패딩 사달란 말이야! 엄마 자격 없어!”


이런 방식의 소통이 결국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아이는 이 방식을 ‘성공적인 소통’으로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방식은 배우자에게로 옮겨간다.

그러나, 배우자는 그 소통이 통하지 않는다. 배우자는 그 소통이 성공적이 아닌 단절하는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아, 나처럼 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민낯을 드러낼 것인가, 존중을 유지할 것인가는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자, 학습이다.


타인에게는 가면을 쓰고서라도 관계를 이어가려 애쓴다. 그러나 배우자 앞에서는 가면을 벗고 민낯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그 민낯이 아름답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관계는 어디로 흐르게 될까?

자신의 아름답지 않은 민낯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존재가 가족이 아닌 배우자라면 도망갈 수밖에 없다. 여러이유로 도망가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상대방의 잔상이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남긴채 살아가게 된다.


이미 아름답지 않은 민낯을 보여, 상대방의 관계가 무너졌다면, 내 경험상으로는 다시 일어날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희망을 팔지 못하겠다.

이전 05화부끄럽지만 담담한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