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담담한 이혼

회색빛 미래에서 베이지색 현실

by 이혼광탈녀

부끄러운 이혼


사회가 이혼에 대한 시선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가졌으면 좋겠다.

이혼율은 급등하는데, 그에 따른 시선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등본에 두 명이 적힌 정보를 건네면 쑥스럽다.

등본을 건네며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을 먼저 꺼냈다.


솔직히 부끄럽다. 그래도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려고 노력한다.

아들과 내가 적힌, 빈칸이 많은 등본을 건넬 때면 이혼 후 2년이 지나도 마음 한편이 뚫려 있는 느낌이 든다.


아이가 보는 동요나 동화 속에는 항상 엄마, 아빠, 아이, 이렇게 세 명이 등장한다.

마치 단단한 트라이앵글 삼각형 같다.


아이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된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미안함 같은 것을 삼킨 채 채널을 돌렸다.

도둑이 제 발에 저린 것이다.


남편,아빠가 없는 만화


새가 나오는 만화가 있다.

그 만화에는 다행히 아빠가 없다.

설정상 이야기의 중심이 ‘엄마와 아기들’의 생존과 성장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 만화를 볼 때면,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진다.

아빠 없는 만화를 보며, 안도감이 생기는 건 나의 이기심일 걸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

아빠와 남편이 없는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과 민망함은 내가 견뎌야 할 무게


이 점을 이혼 전에 이미 고려했다.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선택한 이혼이기 때문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맞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이혼 후의 미래는 회색빛만 있는 것 같다.


나는 무슨 색일까?


그래서 이제는 회색보다 조금 더 밝은, 베이지 톤의 미래를 써보려고 한다.

베이지 톤은, 회색빛의 상태는 지났지만, 그렇다고 핑크색처럼 눈부신 밝음은 아니다.


안정감은 생겼지만, 긴장 상태는 여전히 함께 있기 때문에 베이지 톤 하늘 아래 있다.


싸울 사람도, 불만을 가질 대상도 없다.

가까이 기댈 사람도, 함께 울어줄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혼자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진행할 수 있어서 편하다.


그만큼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다.

그런 상황이 부담스럽지만, 자유롭다.


마치 하늘을 비행하는 독수리 같다. 자유롭게 비행하지만, 배고프다. 애정이 고프다.

그래서일까, 고사리 같은 아들의 작은 손 하나를 꼭 잡고 있다.


자유를 느끼고 있는 나


배우자가 나를 새장에 갇히게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결혼생활에서는 답답했으며, 왜 이혼하고 자유를 느낄까?

이혼은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애정의 결핍을 느끼게 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난 건, 나를 놓았기 때문이다.


폭력, 폭언 등의 강력한 사건은 아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천천히, 나도 모르게 오는 압박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하지 않냐

이 정도는 부모님께 해야 하지 않냐

이 정도는 불편해도 참아야 하지 않냐


내가 왜 예민한지 설명해야 하나

내가 왜 불만인지 설명해야 하나

내가 왜 소비를 하는지 설명해야 하나

내가 왜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야 하나


내가 상대방에 불만을 가지게 되면, 죄책감이 따라왔다.



내가 불만을 가져도 되는 존재인가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안정은 되었지만 긴장은 여전하고,

자유는 존재하나 책임도 존재하며,

싸울 사람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는 지금


눈보라는 앞으로도 오겠지만, 그 사이에 숨 돌릴 만큼의 하늘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나를 둘러싼 사회가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한부모 가정을 바라봐준다면,
베이지 톤 하늘은 언젠가 맑고 푸른 하늘이 될 것 같다.


이혼이 부끄럽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할 것이다.
다른 사람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나는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푸른 하늘 아래서 편한 미소를 띠며 산책할 것이다.

나의 영원한 동반자는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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