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내게 생이 몇 년쯤 남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대로 살다가 죽을 때 후회하게 될 일은 무엇일까 꼽아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더 많은 햇볕을 쬐지 못한 일, 더 오래 숲길을 걷지 못한 일, 더 많은 꿈을 꾸지 못한 일 등.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나는 후회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김형경 외 49인,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 중에서
며칠 전 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와 통화하며 실수로 수신거부를 눌렀고,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통화가 끝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한 병 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네 큰아빠가 죽었다" 나는 놀라며 물었다. "왜?" 큰아버지의 죽음에 어떤 '생각'이 들기도 전, 툭하고 그 말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죽을 수가 있는 건지 바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살아 있으리라 생각했던 누군가가, 어떻게 이제는 같은 세상에 없는 것인지. 아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당연했던 일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 뒤집힐 수가 있는 건지. 어제는 큰아버지의 장례식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켜고, 내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어디인가요?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돌아가신 부모님을 다시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앞으로는 지금의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떤 이름을 갖고 싶은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장례식에서 흘렀으면 하는 음악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60여 개의 질문을 정리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꼬박 내 나이만큼의 시간이 들었다. 지금이, 첫 번째 질문을 시작할 타이밍이라는 직감이 든다. 우리는 누군가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만 '잊고' 살 뿐이고,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2년 전, 친구 K의 사고와 죽음을 기사로 접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내게 만나자고 전화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영안실에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때부터 우리에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축복은 없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예고도 기다림도 없이 어느 날 문득 어깨 옆에 서 있는 것.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짙은 분노와 무거운 죄책감을 이고 웅크린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숨을 쉬다가도 엉엉 울음을 터뜨렸고, 해가 떠도 마음 그늘에는 이슬이 맺혔다. 어느 날 곰팡이가 슨 마음의 벽지를 뜯어내며 나는 유서를 썼다.
당신이 괜찮다면 저는 정말로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니 충분히 울고 마음껏 슬퍼한 후에는 꼭 다시 말갛게 웃어 주세요. 눈이 반쯤 사라지고 목젖이 보이도록 자주 웃어 주세요. 제가 늘 보고 싶었던,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상상했던 당신의 얼굴이니까요. 당신은 저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었고, 저 또한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라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인사에도 차마 담을 수 없을 만큼 당신에게 고맙고, 마음 가득 사랑합니다.
내 죽음 뒤에 남은 이들에게 미리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남겼다.
K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와 늘 가까이 지냈다. 누구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것은 삶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했다.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난한 습관을 버리기도 하고, 용기를 내 미루어 둔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통화 말미에 아버지가 물었다.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안 생겨, 그런 일" "나한테 이런 일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고" 아버지는 목소리를 키우며 답을 듣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큰아버지는 혼자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았고, 며칠이 지나 발견되었다.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누가 먼저 갈지는 아무도 몰라" 두렵고 어려운 질문의 답을 회피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이번에는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잠시의 정적 후 아버지의 지친 목소리가 건너왔다. "끊어"
아버지도 나도, 우리에게 어쩌면 생길지도 모르는, 하지만 그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나씩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일을 상상하기보다는 현재를 붙잡기로 했다. 지금 우리는 살아 있으니, 미래의 우리를 달랠 지금을 착실히 쌓기로 했다. 내가 실수로 수신거부를 누른 후 다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평생 그 일을 후회하며 살았을 것이다. 실수였다 할지라도, 왜 친구와의 통화를 어서 마무리하지 않았는지, 왜 아버지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를 매일 밤 생각하며 자책할 터였다. 사소한 일이지만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내가 친구와의 통화를 마치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 건너편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는 것은. 내 질문에 답을 하고, 내게 안부를 묻는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은.
내가 지구라면 가족은 달이었다. 나는 평생 그들의 한 면만 보아 왔고, 그것이 그들이라 여기며 살았다. 뒷마당 정원에 핀 꽃은, 그 위로 떨어지는 이슬과 그림자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더 늦기 전에, 달의 뒤편에 있는 미지의 장소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 부모의 마음을 찾을 것이다. 그곳에 있는 빵집에서 갓 구운 식빵을 사고, 그곳의 정원을 산책하고, 시든 꽃을 발견하면 흙을 토닥이고 시원한 물을 줄 것이다. 내 부모의 뒤편을 모른 채 살아가고 싶지 않다. '언젠가 이런 걸 물어봤어야 하는데',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하는 뼈 아픈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달의 뒤편에 노크한다.
"똑똑. 계신가요? 너무 늦기 전, 당신의 마음을 산책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