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타악의 기억이 있다
타악의 기억
우리는 모두 타악 연주자의 시기를 거쳤다. 아이는 엎드리고 기고 움켜쥐고, 그 움켜쥔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두드린다. 우리는 누구나 타악 연주자의 시기를 지나 성장한다.
타악기 소리는 인간의 심장 박동을 끌어올린다. 우리의 심장은 타악기 리듬에 반응한다. 잘 마른 가죽을 덧씌우거나 쇠를 연마하여 빚어낸 타악기의 울림은 우리 내부의 어느 지점을 향한다.
웅숭깊다.
사물놀이 연주 무대를 처음 접했을 때, 그 강렬한 타악기 소리와, 소리를 불러내는 신들린 몸짓에 심장이 떨렸다. 서서히 달궈져 뭉근히 공기를 덥히다 찢을 듯 솟구치는 타악기의 음량에 영혼이 흔들렸다. 사물악기의 소리가 벼락처럼 내 안으로 치고 들어와 고스란히 쌓이는 느낌이었다.
특히 장구는 매혹적인 악기였다. 궁채와 열채의 맵시와, 궁편과 채편 그 각각의 자리에서 솟는 다른 느낌의 소리에 이끌렸다. 소리를 잘게 나눠 숨 막히게 몰아가다 어느 순간 휘모리의 천둥이 폭포처럼 쏟아지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두드림은 희열과 몰입의 세계였다. 그 세계에 이끌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장구 가락을 익히며 타악의 세계를 탐험하는 일은 이국의 항로에 배를 띄우는 것만큼이나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 소리의 끝에 자리한 신세계의 형체를 가늠해 보는 일은 짜릿했다.
영남농악, 웃다리, 설장구 공연, 국악관현악단과의 협주곡인 <신모듬>*공연 무대 등 크고 작은 연주 무대에 서면 언제나 떨렸다. 하지만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은 뒤로 물러나고 오직 악기와 나만이 남는 몰입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연주자의 실력이나 연주곡의 수준과 상관없이 오직 타악이 주는 근원적 황홀감이 있다. 심장을 지닌 인간으로 타악을 접한 이가 필연적으로 다다르게 되는 지점이다. 잘 마른 가죽이 채의 타격으로 둥--- 울음 울면 우리의 심장도 같은 음량으로 따라 운다.
(*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
박범훈 작곡가의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악관현악곡으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이 만난 최초의 곡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