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신형철 시화

by 남하린


p.7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p.21-23

상호의존적인 약점이 있을 때 사랑은 성립된다.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상대가 필요한 사람은 대등하게 약하지 않다.

전자는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만, 후자는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일이 됐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의무‘가 되면 자신을 망가뜨릴 ’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렇게 늘 정신을 차려야 했고 빗방울까지 두려워해야 했다면 그 사람은 행복했을까.


p.26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건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아버지가 보내는 편지-


p.87

답이 있기는 하되 그것이 질문만큼은 중요하지는 않다.

적어도 시에서는 그렇다.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p.105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움켜쥔 채 살고 있는 것인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공 한 줌 속에도 얼마나 많은 감정과 집념이 들어 있는 것인지.

삶과 죽음도 결국 그 움켜쥠과 놓아줌의 다른 말이 아닌지.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p.120

많은 문학이론가에 따르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다.

세계의 완강한 질서에 감히 도전하는 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

그 비타협의 결과로 그는 패배하고 말지만, 그 순도 높은 패배가 오히려 주인공의 궁극적 성리가 되는 아이러니의 기록.

그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것.


p.131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