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난 후...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by 사람

오늘은 전부터 보고 싶었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지루함이 없고 내가 끝없이 생각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 조건에 충족하고, 내가 봤던 퀴어 영화 중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영화는 공산당 집권 계염령이 끝이 나고 군부독재에서 벗어나지만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분위기로 동성애 혐오가 극에 달한 대만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찍었다. 퀴어 멜로 영화이며 청불이지만 수위가 높지는 않고, 2020년도에 제작된 영화이며, 국가는 대만, 러닝타임은 한 시간 반 정도.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일단 이 영화는 주인공 자한의 감정선이 잘 드러난다. 자한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잘 받고 순종적인 편이다. 친구가 동성애자여서 괴롭힘을 당하던 남학생을 때리라고 했을 때, 그 말에 휘둘려서 고민하다가 끝내 때리려고 한다. 그리고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버디를 말리느라 바쁘다. 반대로 버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굉장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고 자신이 느끼는 것과 부당한 것은 말을 해야 직성에 풀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버디가 너무나도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자한과 버디가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마음을 나누다가 갑자기 버디는 함께 했던 자한을 두고 후배 여학생과 사귀게 된다. 혼자 남겨진 자한은 버디에게 실망하지만 버디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쉽게 접지 못한다. 자한과 버디가 같이 탔던 오토바이는 후배 여학생의 이벤트에 필요한 풍선을 구하러 갈 때에도 쓰이기 모자라서 버디의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자한과 버디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상황까지 가게 하는 요소이다.

버디가 자한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다가 사고가 나서 자한을 부른다.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다. 버디는 구급차도 안 부르고 자한을 불렀다. 후배 여학생이 버디와 사귀기 전, 자한과 버디가 함께 했을 때도 버디는 자한과 함께 감정을 나누었을 뿐,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버디의 마음은 뭘까... 후배 여학생을 사랑하게 된 거 같은데 왜 연락은 자한에게 했을까에 대한 고민을 보면서 많이 했던 거 같다.


자한은 사고로 인해 부서진 오토바이가 아닌 버디를 걱정하지만, 버디는 계속 부서진 오토바이 걱정만 한다. 자한이 그것만 신경 쓰이냐고 버디에게 물을 때 너무나 슬펐다. 보통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으면 자신에게 어떠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상대방이 나를 걱정했겠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버디에게는 버디를 걱정하는 자한에 대한 배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버디를 보고 자한은 화를 참으며 사고로 다쳐 혼자 씻기 불편한 버디를 도와준다. 자한이 버디를 씻겨 주는 그 과정에서 자한은 버디를 향한 갈망을 참지 못했다. 처음에는 말리던 버디도 마찬가지... 결국 좁디좁은 샤워실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버렸다. 처음에는 버디가 너무 자유롭고 솔직해 보여서 버디와 후배 여학생이 사귈 때 버디는 자한과 친구로서만 지낸 걸까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할 말은 다 하며 살아야 하는 버디가 왜 후배 여학생까지 사귀어 가면서 자한을 피해야만 했을까? 영화에서 비추어지는 버디는 자신의 신념이 자유와 비슷해 보인다. 그토록 중요한 자신의 신념보다 자한이 더 소중해서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디는 계속해서 자한을 밀어낸다. 초반에는 주변 환경에 순종적인 자한이 별로였는데 영화가 전개되면 될수록 자한만 보면 안쓰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버디가 자한에게 상처를 주는 말만 늘어놨기 때문이다. 버디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한을 계속 부정하는 말들을 했다.

버디는 사귀는 후배 여학생을 위해 학교에서 이벤트를 한다. 옛날에 자한과 웃으며 밤거리를 질주하던 오토바이를 타고 구했던 그 풍선으로 말이다. 자한과 버디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두 장면에서의 자한의 표정 변화가 슬프다. 아무튼... 그 이벤트는 범인인 버디를 잡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 같았으나 결국 들통나게 되고 학교와 연관이 있는 버디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버디를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구타를 하기 시작한다.


그때 바보 같은 자한이 달려와 버디와 아버지의 싸움을 말리기 시작하고... 결국 둘의 감정이 격해져 둘은 주먹싸움을 하게 된다. 그 상황에서도 자한은 버디의 잘못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 한다. 버디를 감싸주고도 피 터지게 싸우는 모습은 자한의 사랑이 너무나 과해서 비참했고,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다. 버디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자한. 여기서 버디는 화를 내며 자리를 뜨고 자한은 학교에 남게 된다. 영화에서 자한 혼자 남겨지는 듯한 장면이 많이 나와서 보는 내가 다 괴로웠다. 남겨진 슬픔은 자한이 모두 삼켜야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버디가 자한의 집에 찾아온다. 버디는 자한의 부모님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버디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부모님 모르게 언지를 준다. 자한은 여태 참아왔던 감정이 여기서 터진다. 버디는 자한에게 겁쟁이라고 한다. 그런 버디에게 자한은 여기에서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버디에게 너는 그럴 수 있냐고 되묻는다. 버디는 게이처럼 굴지 말라며 또다시 자한에게 상처를 준다... 동성애자가 역겹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버디에게 화가 난 자한은 집을 뛰쳐나가고 버디는 그런 자한을 따라간다. 이 장면은 내가 최고로 뽑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둘은 기차를 타고 배도 타며 바다가 있는 땅 끝까지 간다. 둘은 같이 죽을 것처럼 물에 뛰어들지만 결국 물놀이만 실컷 하다가 나온다. 정말 학생다운 사랑이 보이는 장면이었고, 버디와 자한을 괴롭히는 세상이 미워졌다.

영화 초반에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버디에게 자한이 ost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비를 쫄딱 맞은 자한이 공중전화기 부스에서 자신이 아는 선배가 만든 노래라며 버디에게 들려준다. 내가 생각하기에 선배가 만든 노래라는 말은 비극만 기다리고 있는 둘의 관계에 자한이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사가 너무나 버디를 향한 자한의 마음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도 기억에 남는 가사가 있다. '네 이름은 시간을 잊게 해'라는 가사. 보통 시간은 모든 걸 잊게 한다. 그런데 이름이 시간을 잊게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사라지면 영원이 찾아온다. 자한은 버디와의 불가능한 영원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버디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둘의 접점은 사라지게 되고 몇십 년 뒤에 둘의 재회 장면이 나온다.


버디를 우연히 술집에서 마주친 자한이 또다시 버디를 만나기 위해 그 술집으로 찾아간 자한과 자한의 사진을 아저씨가 된 지금까지 지갑에 넣어 다니는 버디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 후 버디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너를 너무나 사랑했다고. 이 장면은 버디가 처음으로 자한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장면이다. 몇십 년이 지난 후에야 너를 밀어내던 나의 모습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너를 열렬히 사랑했다고 말하는 버디의 모습에 나까지 가슴이 철렁했다. 버디의 말에 자한의 생각에 잠기는 표정까지 말이다. 사랑을 향해 내달리던 자한과 사랑을 감추어가며 혼자 앓아야 했던 버디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시리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장면. 자한의 숙소에 다다르자 자한은 버디에게 조금 있다 가라고 한다. 하지만 버디는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이 언제가 될 줄 알고 버디는 다음이라고 하는 거지? 속으로 조금 짜증이 났는데 숙소에 들어간 줄 알았던 자한이 뛰쳐나온다. 버디와 조금 더 함께 걷고 싶어서라고 했다. 자한은 정말 다정한 사람...

그 후에 자한과 버디가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자한이 버디에게 공중전화기 부스에서 들려주었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본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 비가 쏟아질 때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은 영화. 그만큼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이고 자한과 버디의 사랑이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요즘 사회는 편을 너무 나눈다. 주위를 둘러보면 혐오가 가득하다. 나 또한 어떤 특정에 대해 혐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랑까지 성별을 나누어야 할까 싶다.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함께 해 줄 상대를 찾았다면, 그 자체로도 이미 완벽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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