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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낙형 Sep 11. 2017

베트남은 정말 기회의 땅일까?

호치민 출장소감 10가지

이번에 호치민에 있는 한국 IT기업의 지사를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첫 방문이었는데 여러모로 인상적이어서 여러가지 보고 느낀 점들을 10가지정도로 정리해 봤습니다.


1. 무질서 속에 나름의 질서가 있음. 일례로 건널목 신호등이 없거나 있어도 지켜지지 않음. 길을 알아서 잘 건너야 하는데, 오토바이 또는 차들이 끊임없이 밀려옴. 천천히 걸어서 건너고 있으면, 오토바이들이 보행자를 피해주기 때문에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음. 반대로 무서워서 뛰어 건너려 하면 오토바이랑 부딪힐 가능성이 높음. 이런식으로 외부인이 보면 무질서하지만 현지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룰에 근거해 사회가 움직이는 느낌.


2. 오토바이 국가. 대만도 스쿠터가 많았지만, 여기는 많은 정도가 아니라 필수품. 1억 인구에 5천만대 정도 보급되었다니까, 성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한대씩 가지고 있는 셈. 중학생 정도면 등하교 길에 타고 다니는 것 같더라. 오토바이 위에서 자고, 오토바위 위에서 밥먹고, 특히 오토바이 함께 타고 놀러다니는 연인들이 아주 자주 보임. 옛날 몽고인들이 말위에서 먹고자고 생활하던게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었음. 덕분에 대중교통은 굉장히 불편하고, 앞으로도 발달할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음. 관광객은 택시나 우버로 다녀야 함.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도시의 발달 모습이 지하철역 중심으로 되어있는 한국과는 완전 다른 양상.


3.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서 그런지, 중국과 프랑스의 문화가 절묘하게 융합 되어있는 듯한 느낌. 언어는 알파벳으로 표기. 단어에 한자어가 많아 한자 안쓰는 한국어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사람들은 한자를 전혀 모른다고 함. 우리가 잘 아는 ‘포’는 납작한 면을 뜻하는 한자어라는데, 무슨 글자인지는 절대 알 수 없음. 바게트 빵을 베이스로 쓴 음식이 많고, 쌀과 해산물이 많이 나는 나라인만큼 두가지를 이용한 요리가 많다. 베트남 음식은 전반적으로 모두 맛있는 편인데, 그 비결이 엄청난 설탕과 조미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달달한 베트남 커피에 반미(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음. 


4. 하노이가 베트남의 정치 중심지라면 호치민은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 호치민 인구가 거의 1천만에 육박한다고 함. quan 이라는 행정구역에 넘버링을 하고 있는데, 4년 전에는 7 quan 주택지 광고가 교민잡지에 나왔는데, 최근에는 9 quan 지역의 광고가 한창이라는 걸로 보아 빠른 도시의 성장을 짐작할 수 있음. 하지만 상업지구는 모두 1~3 quan 에 몰려있고, 다들 오토바이로 출퇴근 하는 덕분에 매일 엄청난 교통체증이 발생. 차를 탄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답답.


5. 최근 안정되게 7~8%의 GDP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은행이자율도 7%대라고 함. 그만큼 물가도 많이 상승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베트남 화폐인 dong 은 원화기준 20배 하면 얼추 비슷함(20만동=1만원). 그걸 기준으로 물가감각은 한국의 1/5 수준이라는 느낌. 고급식당 말고 거리에서 대강 한끼를 때운다 치면 1~2천원 정도로 해결가능. 그러나 아이폰 같은 전자제품 가격은 전세계 어디나 비슷하니 우리나라 물가감각으로 약 400만원 정도를 내고 사는 셈이 됨. 즉, 베트남에서 아이폰 쓰는 사람 발견하면 엄청난 부자라는 이야기. 호치민에도 스타벅스는 들어와있으나, 커피 한 잔 가격이 7.5만동 정도라서 우리나라 감각으로는 18000원 정도 하는 느낌이니 거기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


6. 호치민에는 옛날부터 베트남에 진출한 한인들이 많아서 한국인 교민 인구가 (호치민에만) 10만명 정도 된다고 함. 10만이면 왠만한 한국 중소도시 규모인데다 최근 관광객도 많아서 시내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한국말이 들려옴. 일단 섬유산업 같은 경공업 외주공장 주재원들이 굉장히 많고, 최근에는 IT쪽도 아웃소싱을 위한 지사들이 꽤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임. 뉴스에서 봤던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반한감정 같은 건 전혀없고, 한국 화장품이나 대중문화가 인기있다고 함. 나쁜 감정이 있는 건 개별 한국기업들에서 나쁜짓을 해서이지, 베트남전쟁은 자기들이 이긴 전쟁이고 한국은 용병으로 팔려왔던 사람들이라는 인식. 오히려 옛날부터 국경을 맞대고 싸워온 중국인들에 대한 감정이 진짜 안좋다고. 


7.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완전 친중이고, 여러면에서 중국 따라쟁이의 면모를 보여줌(이건 마치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 특히 무협소설이나 게임들이 인기가 있어, 김용 소설 읽은 사람 많고 중국산 온라인 게임들이 거의 게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모양. 최근 블레이드 앤 소울이 괜히 베트남에 진출한 게 아니었음.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게임 인구도 많고, 게임이 인기있는 컨텐츠인건 맞는데 워낙 시장이 애매한 사이즈라 메이저 게임회사에서 눈독들이기에는 좀 부족한 느낌. 그래서 대부분 한국에서 인기 못 끈 게임들이 베트남에 진출하거나 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중국회사들 게임을 현지 퍼블리셔들이 서비스하는 구조라고 함. 


8. 베트남은 아웃소싱 산업이 발달한 나라라서, 게임쪽도 일본 업체들의 경우 예전부터 아웃소싱을 진행해 왔었다고 함. 주로 프로그램쪽 아웃소싱인 것 같은데, 베트남은 교육열이 높고 대학진학 경쟁이 치열해서 전산쪽 인력의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고 함. 하지만 커리큘럼 자체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 위주라, 베이스레벨 프로그래밍은 힘들다고 함. 매뉴얼의 나라 일본의 외주작업이라면 완벽한 설계아래 정말 모듈화 된 부분을 인력으로 처리하는 아웃소싱이 아닐까 싶었음. 한국처럼 애자일(나쁘게 말하면 적당주의)하게 개발하는 문화에서는 아웃소싱이 쉽지 않을 수도…


9. 국가적으로 외국 기업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사람들이 영어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영어=돈), 대학나온 사람이라면 말하기는 몰라도 어느정도 읽고 쓰기는 가능한 수준이라고 함. 그래서 프로그래머들과도 보통은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고 부족한 경우에 베트남어 통역을 둬서 일하는 방식. 베트남에서도 프로그래머 직군이 약간 선망의 직업이라 고급인력들이 많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음. 베트남의 국립대학인 하노이대학, 호치민대학이나 포항공대같은 백과대학 학생들이 우수하다고 함. 이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친구들은 취직보다는 창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위기가 우리나라 80년대 고도성장기와 비슷해 취직은 당연한거고 더 큰 돈벌고 싶으면 자기 사업을 해야한다는 인식이 일반적.


10. 베트남에서 회사를 하고 있는 주재원이나 교민들과 이야기 해보면, 당분간 베트남의 경제성장에 대해서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계심.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인력비용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감당할 수 있는 수준. 특히 재산축적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태도에 메리트가 더 많다고 느낌. 반대로 최근 베트남 내수가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걸 노리고 들어온 한국 소매업체들은 조금 고전하고 있는 듯. 만나뵈었던 한국 분들이 공통적으로 앞으로 베트남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요인으로 후진적 정치(행정)체제를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꽌시만큼 힘든 장벽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임.


결론 : 베트남이 기회의 땅인 건 맞으나, 그 기회를 잡으려면 큰 노력+현지인과의 융화를 잘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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