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녀

by 임복경

때는 칼 모양의 돈을 쓰는 청동시대였다. ‘고’ 나라는 북방 해안 지역에 위치하였고 주변의 노, 해, 동, 강, 제, 춘 나라와 대립하고 있었다. 지난해, 고 나라 관무제 15년, 고 나라는 평 나라를 무너뜨리고 일곱 나라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각 나라가 서로 전쟁을 하는가 하면 교역도 활발히 하였고 고 나라는 이웃한 제 나라와 우호 관계를 꽤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제 나라의 재상이 고 나라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딸은 고 나라의 귀족과 혼인하게 되었다. 제나라 출신의 강 씨라 하여 제강 부인이라 불렸다. 남편의 성은 림이요 이름은 맹문이라 했다. 그는 군주를 보좌하여 외교 문서를 다루는 '주부'라는 관직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제강 부인이 만삭의 몸으로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건강한 아기의 출산을 빌고 오는 참이었다. 배를 양손으로 감싼 채 앉은 그녀의 몸이 가마 안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늦가을 해 질 녘이라 행인들이 잰걸음으로 지나갔다. 한길에 들어서자 저 멀리 길 끝에서 이는 시끌한 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 길 끝에서는 흰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여자가 쫓기듯 걷고 있었다. 그 뒤를 수염이 시커먼 사내가 뒤따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네년 때문에 내 아들이 다 죽어가, 거기 서.”

여자가 말없이 뛰다시피 걸었다. 허리에 붉은 허리끈을 두른 걸 보니 무녀였다. 사내가 성난 얼굴로 여자를 따라잡았고 무녀의 어깨를 밀치자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왜 그런 저주를 퍼부었어? 네 년이 우리 아들이 아홉 살에 급살 한다고 떠들어서 멀쩡한 애가 저러는 거잖아. 그렇지? 무슨 허튼수작을 벌인 거지?”

사내가 무녀의 양어깨를 움켜잡고 흔들어댔다. 무녀는 엎어진 채로 체념한 듯이 눈을 내리깔고 여전히 말이 없었다. 주위에 대 여섯이 모여 두 사람을 둘러쌌다. 그 틈을 비집고 한 아낙이 바람같이 나타나 사내를 밀쳐내고 무녀 앞에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발 살려주시어요, 우리 아들 좀 살려주시오, 무녀님은 아시죠, 방법을 아실 거 아니오.”

무녀가 냉담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걸음을 떼기 시작하자 사내가 이번엔 무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너도 성치 못할 것이야, 우리 아들이 저대로 죽으면.”

사내의 아내인 듯한 아낙이 무녀의 머리채를 잡은 사내의 손을 물어뜯어 풀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무녀를 감싸 안고 사내에게 악을 썼다.

"우리 아들을 살리실 분이야!"

무녀가 벌떡 일어서자 아낙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무녀가 걸음을 옮겼고 아낙이 엎드린 채 땅에 끌려갔다. 사내가 뒤에서 가슴을 풀어헤치며 통곡했다. 동네 사람들이 안쓰러워 어쩔 바 몰라했다. 반은 넋이 나간 아낙이 무녀의 발아래에서 웅얼거렸다.

“제발 살려주시오, 제발, 아이만 살릴 수 있으면 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 제발요”

무녀가 뒤돌아 아낙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거다. 네 목숨.”

아낙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무녀를 올려 보았다. 무녀가 천천히 쭈그리고 앉더니 눈물로 얼룩진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가엾은 것.”

무녀가 일어나 등을 돌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사이 아낙이 길가 대장간에 뛰어들어갔다. 시커먼 낫이 한눈에 들어왔고 말릴 새도 없이 아낙이 자신의 목을 그었다. 솟구치는 피가 아낙의 집, 그이의 아들이 누워있는 방향으로 길게 뻗쳤다. 어미 말고는 그것을 눈치챈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악”

비명이 울리고 사내와 사람들이 대장간으로 몰려갔다.

“니 아들은 이제 살았다.”

무녀가 앞을 응시한 채 선 자리에서 아낙을 위로하듯 읊조렸다.


이때, 제강 부인의 가마가 가까워졌다. 앞선 소동을 알 리 없는 부인이 가마를 가린 청색 휘장 한쪽을 들어 조심스레 밖을 살폈다. 꽤 큰 소란이 있었나 본데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가마가 다 지나갈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던 무녀가 뒤에서 외쳤다.

“사내아이의 열여섯 번째 생일 시루는 깨지 마시오. 시루를 깨면 검은 문이 열릴 것이오. 그 문은 모든 것을 삼킬 것이오.”

가마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날 밤, 제강 부인은 아들을 순산했다. 림 맹문의 첫아들이었다. 같은 날 궁에서 전갈이 왔다. 황후도 공주를 낳았다는 소식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