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국혼

by 임복경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이듬해 매화가 지고 복사꽃이 흐드러진 날, 공주의 가례일에 이르렀다. 왕에게 열 살 난 아들이 있었으나 병약하였으니, 다음 왕이 될지도 모르는 공주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열강의 사절단이 모였다. 주변 열국은 물론이고 피부색이 어두운 서쪽 지역의 사람들, 바다 건너 동쪽으로 용맹한 맥 족, 그 아래 왜인들까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동서남북으로 자리한 궁궐의 전각들은 지붕이 모두 3개의 층이었다. 그 끝마다 쪽빛과 연홍빛 긴 천을 이리저리 이어 하늘을 수놓았고 살랑이는 바람이 간간히 꽃비를 뿌렸다. 수 차례의 절과 축사가 지나고 드디어 의식의 마지막 순서였다.

공주와 팔급이 대전 밖으로 나가 조정에 늘어선 천여 명의 대신들과 수백 명의 사신들 앞에 나란히 섰다. 잠시 술렁이던 인파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주시했다. 공주는 봉황으로 수를 놓은 붉은 옷에 금과 옥으로 장식한 화관을 쓰고 하늘거리는 붉은 가리개로 얼굴을 가렸다. 팔급은 검은 옷에 흰 구름과 기러기 문양의 붉은 띠를 어깨부터 발끝까지 늘어뜨렸고 옥으로 된 허리띠를 매고 일곱 줄의 옥구슬 면류관을 썼다.

고(큰 북)가 한 번 크게 울리고 이어지는 피리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결혼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천하를 비추는 태양을 만나 아침이 열리고

생명의 대지에 안겨 영원히 노래하리

내 심장은 당신의 숨이요 갑옷이 되리….


삼일 동안 밤낮으로 연회가 이어졌고 신방은 궁의 남쪽에 차려졌지만 화촉은 밤새 하루도 꺼지지 않았다.


혼인 이후 달포가 지나서 팔급은 변방을 공고히 지킨다는 명분으로 북쪽 끝 처례성으로 달려갔다. 부마의 신분으로 위험천만한 전장에 나서겠다는 상소를 왕이 여러 번 물리쳤으나 팔급은 국경을 지키는 것이 왕녀, 시진을 지키는 것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북방 흉노의 출몰이 잦아들면 즉시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하고 떠났다. 궁의 남쪽에 마련된 왕녀 내외의 처소인 화란궁에서 한동안 뜸하던 비명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해가 갈수록 스산하던 화란궁에 대신들의 발걸음이 늘었고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쌓였다. 그중에서 왕녀를 기쁘게 하는 것은 단연코 동물이었다. 타국에서 들여온 동물들은 제대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기 일쑤였고 시진은 그것을 살아 있는 양 박제하여 주위에 두기를 즐겨했다. 대형 날개 박쥐가 들보에 늘어뜨려져 있고 박제된 사자, 표범, 원숭이, 기린 등이 벌건 입을 벌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나운 동물들은 왕녀가 산채로 던져주는 죄인들로 굶주리지 않았고 죽어서도 지나다니는 궁인들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시진은 유리로 만든 물건도 끔찍이 아꼈다. 멀리 서쪽 나라에서 들어온 것들이라 귀한 몸인 유리는 화란궁에서는 애물이었다. 궁인이 유리 장식품을 깨기라도 하는 날엔 당사자의 황천길 행은 당연지사였고, 왕녀가 술에 취해 횡포를 부리다 깨뜨려도 그 벌은 궁인의 몫이었다. 어여뻐서 거슬리는 궁인 하나를 골라 화려한 물건의 파편을 한 점 남기지 않고 모두 삼키게 하는 것이 그 벌이었다.

삼 년 만에 팔급이 어머니의 병환이 깊다는 기별을 듣고 궁에 당도한 날이었다. 왕을 먼저 배알하고 나서 어쩌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뵈는 것이 아닐까 하여 왕녀와 동행을 제안하려고 화란궁에 서둘러 막 들어선 참이었다.

궁 앞마당에 궁인 하나가 형틀에 묶여 있고 옆에 선 다른 궁인 둘이 깨진 유리 화병 조각을 입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왕녀 시진이 대전 앞의 돌단에 앉아 피칠갑을 한 궁인을 내려보며 깔깔거리다 팔급을 알아보았다. 왕녀가 옆에 선 궁녀에게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궁녀가 시진의 얼굴을 황급히 가리개로 가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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