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말들

마음을 먹다

by 아룬
마음 :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 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먹다 : 음식 따위를 입을 통하여 배 속에 들여보내다


무언가를 먹는다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꼭 비싸고 좋은 음식이 아니어도 그렇다.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는 라면 한 그릇의 마력, 하다 못해 운동 후에 먹는 퍽퍽한 닭가슴살조차도 곱씹을 수록 담백하다.


배가 고플 때 먹는 것만 즐거운 것도 아니다. 때론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먹게 된다. 아무리 싸구려 뷔페라도 세 접시를 채 못 먹은 날은 왠지 패배자라도 된 듯 소침해진다. 그게 뭐라고. 나는 겪어보지 않았지만, 유전자 싶이 새겨진 기근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먹는 일은 대체로 즐겁다. 오늘도 라면에 계란 두 개 넣는 호사를 부리다가 궁금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먹기 힘든 건 대체 뭘까.


오이….일까. 어디에 들어가든 그 비릿함. 먹으면 시원하다고요? 그렇다면 저는 그냥 얼음을 씹겠어요. 얼마 전 모 브랜드에서 출시했다던 오이 샌드위치가 떠오른다. 오오, 기획자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하지만, 오이에게 그런 영광(?)을 주고 싶진 않다. 그냥 내 유전자 어딘가에 또 오이를 먹지 못하는 DNA가 스며 있나 보지.



물론 타고나기를 비위가 약한, 연약한 나란 짐승이 먹기 어려운 것은 한 두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써보자. 이글은 내 편식의 연대기를 다루려고 쓰기 시작한 게 아니니까.


정말 먹기 어려운 건 그런 음식이 아니지 않을까. ‘먹는' 거 치고 세상에서 제일 먹긴 힘든 건 ‘마음’을 먹는 일 아닐까. 애초에 ‘마음’을 ‘먹는다’라는 표현을 생각한 이는 누구일까. 천재다. 그러게 천재다. 그에게 은총이 있을지어다.


‘마음을 먹다'


생각해보면 매일 삼시세끼 하는 행위이지만 “먹는다”라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외부의 것을 받아들여 내 안에 스미게 하는 일. 입 안에서 침을 분비하고, 이는 그것을 잘게 씹고,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위에서는 위산과 효소를 내어 음식물을 갈고 녹이고, 소장에서 쓸개즙과 췌장액으로 또 한 번 분해하여 양분들을 흡수한다. 대장은 남은 수분까지 쪽쪽 빨아들인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먹는다는 건, 이렇듯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고로운 과정이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도 그렇다. 한 번도 내 안에서 세계를 바라보며 떠올리지 못한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나의 행동까지 바꿔보겠다는 어떤 의지의 발현. 대체 그 의지라는 게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아직 감도 못 잡겠지만, 그것은 내 안에 어떤 씨앗을 품는 일이다.


씨앗은 그냥 자리잡지 않는다. 아주 작지만 그건 어떤 균열을 내는 일이다. 내가 지금껏 품고 있던 하나의 세계에, 아무리 작더라도 새로운 여지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새로운 마음을 품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을 먹자.

무엇이 되었든, 조금이나마 더 나아져보겠다는 마음을 먹자.


어쩌면 싹이 피지 못한 채 뭉그러지더라도, 때론 싹이 나고도 꽃이 피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마음을 먹자.


그래야 무언가 조금이라도 달라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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