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모욕감을 줬어 (그것도 내 결혼을 앞두고)
회사는 당연하게도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급여, 복지혜택 등 회사로부터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담당 업무, 미래 비전, 주변 동료 등 모든 조건이 그렇다.
지난 직장 생활을 돌아봐도 앞서 말한 것 중 제대로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건 좋은 기업이나 기관에 입사해서 높은 직급과 연봉을 받는다 해도 느끼는 체감은 비슷한 것 같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가봐도 자기 회사 너무 좋다고 자랑하는 걸 본적이 없다. 즉, 회사로부터 받는 불만족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십수 년의 직장 생활을 진행해 본 결과 중간 결론으로, 회사는 일단 재미있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눈을 뜨자마자 ‘아 출근하고 싶다!’라는 생각과 함께 신나게 아침 시간을 보냈던 적이 분명 있었다.
1. 업무 자체가 재미있어서
여태까지 했었던 업무 중 정말 재미있어서 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몰입감이 있었던 것은 단연 강의였다. 2010년 사회 초년생 때 우연히 교육팀에서 근무 할 기회가 주어져 강의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때부터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람, 마치 무대 위 주인공이 되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쾌감, 강의를 할수록 계속 발전한다는 충만한 뿌듯함. 이런 즐거움이 있었기에 주말에도 스스로 회사에 나가 강의 자료를 준비하고 강의 연습하면서 가슴이 두근댔던 엄청난 기억이 있다. 이후, 직업상담사 자격증 취득 후에도 여러 가지 주제의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각종 행정 업무에 지쳐 있다가 2~3시간 강의를 하고 오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을 반복하면서 즐겁게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회사 전체적으로 부서 및 직무 개편을 하면서 내 직무에서 강의가 빠지게 됐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전문 강사도 아닌 직원들이 강의하게 되면 그 손해는 고객이 떠안게 된다. 어쭙잖게 우리 직원들이 강의하게 두는 건 큰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외부 전문 강사들을 대규모로 모집해서 모든 강의를 진행하도록 하시오.”
우리의 강의가 완벽하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지만 그걸 보고 ‘전문 강사가 아닌 직원’, ‘어쭙잖게’ 등의 말로 폄하 당하니 기분이 매우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내부에서 그런 평가를 내리니 일의 즐거움은 일순간 증발해버리고 참담한 마음만 남을 수밖에. 그순간 나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전문적인 강의가 뭔지도 잘 모르는 그대들에게 이런 어쭙잖은 평가를 받고 업무 조정까지 이뤄지니 기분이 참 거시기하다.”
회사의 체질 개선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꼭 이렇게 기분 나쁜 방법과 멘트로 실행할 필요가 있을까? 직장 내에서의 언어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윗분’들의 지휘와 통제를 받는 것은 참 통탄할 일이다.
강의 말고 과연 내가 좋아하는 업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100%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성향이나 역량에 따라 분명 업무가 주는 흥분감 같은 게 존재하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엔 어울리지 않게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업무가 타이밍 딱딱 들어맞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날 해야 할 중요한 일에 대한 작은 성공 경험이라도 있다면 간질간질 설레는 느낌이 들고, 뭔가 시원찮게 진행된 경험이 있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나중에 회사를 차리게 되고 직원을 채용하고 포지션 배치를 할 때, 일을 하면서 순간순간 받는 세밀한 느낌도 고려하면서 해보고 싶다. 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다들 말하겠지만 업무 당사자와의 긴밀하고 진심어린 소통을 누적시키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다. 그걸 이뤄내는 순간, 회사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출근을 위해 눈을 뜨는 순간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갈 준비를 하면서 행복한가요?”
“행복하다면 그게 업무 때문인가요? 특히 일할 때 어떤 순간에 행복한가요?”
“지난 번 그 일을 하면서 실수하거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불행한가요? 잊어버리고 싶은데 자꾸 생각나서 괴롭나요?”
이런 질문들을 내 동료들에게 하며 회사 생활 중 느끼는 감정에 대해 주목해 주고 싶다. 나도 십수 년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누구도 이렇게 물어봐주지 않았다.
회사에선 함부로 기뻐하지도 못한다. 업무가 잘 풀리는 것 자체가 직장 생활 최고의 행복 아닌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밝아진다. ‘중간급 윗분’이 지나가다 내게 질문한다.
“요, 얼굴이 왜 이렇게 폈어?”
“네, 일이 재미있네요!”
“아, 일이 아주 편하구나? 그럼, 내년엔 00부서 가서 본격적으로 일 좀 해봐야지?”
아니, 우리 회사에 편한 일도 있었나? 그리고 내가 지금 일이 재미있다고 했지 편하거나 쉽다고는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모든 직장인들이 어려운 마음과 상황 가운데 고군분투해서 일을 풀어간다. 잘 풀리면 만족감과 성취감에 얼굴이 펴지는 거고 안 풀리면 책임감이 발동해 얼굴이 어두워진다. ‘윗분’들은 감히 내가 준 일을 잘 해내고 나서 회사에서 웃고 다니는 걸 보기 참 힘들어하는 것 같다. 즉, 일이 안 풀리는 것을 더 선호하는 집단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직원의 고생은 자신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못된 심보가 윗자리로 가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건지, 나도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어진다.
내가 화나는 지점은 그것 뿐이 아니다. 그분은 내가 잘 풀어간 이 업무가 심지어 ‘일’도 아니라는 말도 하고 있다. "고작 너 따위가 일하면서 재있다는 게 말이 안돼. 만약 그일이 잘된거라면 처음부터 쉬운 일을 맡았던 게 틀림없어." 다소 꼬인 마음으로 들어서 그런지 내 귀엔 저렇게 들렸다. 내가 속상했던 부분은 다른 부서의 더 난이도 있는 일이 진정한 일이라는 편향성을 가진 자가 회사에서 차세대 리더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수준 낮은 질문과 판단을 하는 회사,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2.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회사에서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위기 상황이 생겼을 때 책임이나 지라는 협박보다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회사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사랑해 준다는 충만함이 있다면?
회사 생활은 재미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결혼 날짜가 잡혔고 디데이가 하루하루 다가옴에 따라 준비에 정신이 없었을 때쯤 회사 대표님이 방으로 나를 호출하셨다. 정말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표실에 입장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10분 정도 덕담을 해주시고는 줄 게 있다며 만면에 미소를 띠어 보내신다. 설레는 멘트와 함께. "아내 될 분이 참 좋아할 거야!"
내가 왜 그리 흥분상태였나하면, 결혼식 날짜가 잡힌 사실을 알리면서 주변 동료분들이 이런 내용의 제보를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 대표님이 취임 후 첫 번째로 결혼할 사람이 나오면 세탁기나 냉장고를 장만해 주신다는 분도 있었고, 최소 축의금 100만 원은 하시겠다는 말도 들은 분도 있었다. 증인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찌 기대를 안할 수 있겠는가? 이미 내가 "네, 대표님!"하며 전화를 받을 때 나보다 주변 동료들이 더 반색하며 빨리 다녀오라고 했다.
예상한 대로 대표님의 손에는 흰색의 고급 봉투가 들려있었다. 떨리는 두 손으로 받아 들고 90도 인사를 드리고 거의 날듯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누가 볼까 봐 정성스레 봉투를 열었다. 봉투 겉봉은 확실히 두꺼웠지만 내용물에서 느껴지는 두께감은 별로 없었다. 얇지만 엄청난 것이 들어있나 보다! 라는 기대감이 앞섰다. 참으로 낯선 종잇장 하나가 손에 이끌려 나왔다. 돈도 아닌 것이, 수표도 아닌 것이, 상품권도 아닌 것이 오묘했다. 회사의 로고와 대표 직인이 찍혀 있는 ‘우리 회사 상품권’이었다.
실망, 허탈함, 어이없음, 분노가 골고루 혼합된 감정을 안고 퇴근 버스에 몸을 실었다. 누군가의 회사 직통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인사 담당자였다. 그분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00 님, 얼마 받으셨습니까?" 그 상품권이 지급되면 인사담당자가 통장에 상품권에 찍힌 해당 금액을 입금해 주는 시스템이라고 상품권 어딘가에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났다.
"10만 원입니다."
이어지는 잠깐의 침묵.
"에이, 거짓말 마십시오! 저 진짜 10만 원만 입금합니다. 그럼?"
"네, 그거라도 해주세요..."
"아...진짜 10만...원?"
나보다도 동료들이 더 실망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대표가 진짜로 약속을 지키나 지켜보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역시 기대를 한 우리가 잘못이라는 분위기가 사무실에 가득 차올랐다. 이번 일로 인해 회사에서는 대표의 권한이나 선심으로 인한 기쁨은 누릴 기대는 하지 못하겠다는 장기적 실망감도 컸을 것 같다.
회사에서 갖은 수모를 당한 썰들을 풀면서 누가 더 세냐 경쟁하는 순간이 오곤 하는데 나의 이 에피소드는 어딜 가도 최상위권에 랭크된다. 이야기에 조금 더 보탠다면 당시 대표님과 임원진들은 내 결혼식에 오시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 있으셨다고들 한다. ‘중요한 일’이라는 말 앞에 ‘네 결혼식보다 훨씬 더’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들렸다.
결혼식 오든지 말든지 그건 오는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아쉽고 서운하고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음이 상한 것은 축의금을 회사 상품권으로 지급 조치가 된 것을 크나큰 선의로 생각하고 베풀어졌다는 것이고, 축하의 진심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것이다. 상한 마음과는 무관하게 난 직원으로서 무려 대표의 은혜를 손수 입었으니 응당 감사히 여겨야만 하는 존재로 치부당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이 타들어 가게 만들었다.
리더의 크고 작은 행동들은 누적되어 기업 문화가 된다. 참고로 그 회사는 지금도 비슷한 분위기라고 한다. 내가 만약 대표라면, 방금처럼 회사 예산으로 주는 상품권 외에 자비로 추가 축의금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짧은 손 편지라도 썼을 것이다. 대표로서 아무리 분주해도 회사 구성원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소소한 정성으로 채워줬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대표가 내 인생 가장 큰 경조사에 직접 짧지만 정성어린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온다면 그건 단순한 축하가 아니다.
"내가 여기서 많이 인정받고 있구나."
"내가 그동안 여기서 나름 잘 생활하고 있었구나."
"회사라는 곳이 달리 보인다. 다녀와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등의 마음이 들어 장기적으로 회사의 지지자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당시 내 회사는 가장 열렬한 팬을 놓쳤다. 팬은 한 번 돌아서면 극렬 안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정으로 축하하는 마음은 의외로 쉽게 전할 수 있다. 그 쉬운 걸 이렇게 힘들게 망쳐놓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오늘도 여러 회사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좌절하고 있을까?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다’는 마음을 말로든 글로든 반드시 전했을 것이다. 난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그 대표님으로 인해 크게 퇴색됨을 느꼈다. 난 회사의 높은 분들께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 일 때문에 회사가 미워지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동시에 내가 주인의식 갖고 발전시키고 지켜야 할 곳을 싫어하게 만든 그 누군가에게 분노가 옮겨 붙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