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할 게 없어 독서를 시작했더니 출근길이 즐거워졌다
원래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1년에 서너 권 읽을까 말까 한 '독서가 호소인'이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곧 태어날 아이에게 의식 있는 아버지로 보이고 싶다는 약간의 허세와 절박함이 섞인 의지가 나를 책상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는 이제 나의 출근길을 즐겁게 방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읽다 보니 연간 독서량이 70권에 육박하자 주변 동료들이 묻는다. 비결이 뭐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읽습니다"라고 답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늘 한결같다. "에이, 전 아침잠이 많아서요."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외친다. '이보세요, 아침잠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저도 잠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입니다만!' 어떤 동료는 한술 더 떠 "나이 먹으니 잠이 없어지나 보네"라며 나의 열정을 노화의 증거로 치부한다. 답답한 양반들 같으니.
내가 새벽을 깨우는 이유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단지 '다음 장이 궁금해서'다. 인생 드라마를 만나면 1시간이 1분처럼 흐르고 종영이 아쉬워 밤을 새우지 않는가. 책도 마찬가지다. 나를 잡아끄는 문장을 만나면 내 엉덩이와 지하철 의자는 완벽하게 동기화된다.
가끔 매력적인 책에 영혼을 빼앗겨 내릴 곳을 한참 지나칠 때가 있다. 보통은 자책해야 마땅한 상황이지만,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세상에, 내가 책을 읽느라 정거장을 놓치다니! 나 좀 멋지잖아!"라며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심지어 업무 중에도 아쉽게 덮은 책의 뒤 내용이 궁금해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있다. 참다못해 책을 품속에 숨기고 화장실 대변칸으로 달려간 적도 있다. 오래 머물지 못할 걸 알면서도 감행하는 그 소소하고 무모한 일탈.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이나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등을 읽을 때가 그랬다. 우리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화장실 칸에서 숨을 죽이던 그 시간만큼은, 나는 내 김형석 책임이 아니라 꿈틀대며 살아 숨쉬는 역사의 목격자였다.
흔히들 독서가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체력'의 문제라고 믿는다. 활자를 버텨낼 정신적 맷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책도 수면제일 뿐이다. 이 독서 체력을 기르는 나만의 비결은 '일단 100페이지까지는 묻지마 돌진'이다.
보통 100페이지는 넘겨야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며 이야기의 국면이 바뀐다. 거기까지만 참고 달리면, 그다음부터는 책이 나를 읽는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반대로 그 고비를 못 넘기고 책갈피만 꽂힌 채 먼지가 쌓여가는 독서 미제 사건들이 내 책장에도 산적해 있다.
그러니 혹시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싣고 스스로가 인생의 패배자처럼 느껴진다면, 일단 책을 펴보길 권한다. "꼭 읽어야지"라는 비장한 다짐은 필요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펴서 눈을 활자에 갖다 대는 거다. 출근 시간만으로 부족하다면 30분만 일찍 나와보라. 사무실 도착 후 업무 시작 전까지의 그 '골든 타임'을 확보해 100페이지 고지에 도달하라.
그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당신의 출근길 세계관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자동차들처럼 의미 없이 증발하던 시간들이 비로소 당신의 편이 된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피곤한 직장인들의 행렬 속에서, 당신은 '가장 생산적인 존재'라는 은밀한 자부심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거장들의 지성이 어느덧 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기분. 이러다 보면 결국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이럴 바엔 그냥 내가 책을 써볼까?" 그렇다. 나는 지금 기분 좋게 미쳐가는 중이다. 매일 아침, 설레는 출근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