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6)

증발 직전의 감동을 문장으로 잡아놓는 삶

by 하작가

2025년, 육아 휴직에 돌입하면서 나는 새로운 아침 루틴을 하나 더 장착했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맑은 상태의 뇌와 아직 덜 풀린 손으로, 30분 동안 창의성을 깨우는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의 시작을 ‘생각 정리’가 아닌 ‘생각 방출’로 여는 시간이었다.


마침 내가 좋아하던 두 분의 뮤지컬 인플루언서가 ‘맥베쓰 클럽’이라는 모닝 페이지 모임을 만들었고,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많은 회원들과 아침을 함께 꺠울 수 있었다. 뮤지컬과 모닝 페이지, 그리고 글쓰기. 얼핏 보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조합이다.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고민이 하나 있다. 공연을 보는 순간에는 분명 엄청난 감동과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쏟아지는데, 막이 내리는 동시에 그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어디엔가 리뷰를 남기고 싶어도 이미 그때의 마음은 증발해버린 뒤다. 결국 “좋았다”, “찢었다”, “지렸다” 같은 아쉽고 저렴한 언어로 소중한 공연을 허겁지겁 포장해 버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름 꾸준히 글을 써왔다고 자부했지만, 공연 리뷰만큼은 늘 아쉬움이 남았다. ‘분명 이 정도로 끝날 감상이 아니었는데, 분명히 내가 마음속으로 훌륭한 말로 표현한 게 더 있었는데!’ 실체를 잃어버린 감상은 오히려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면 사진 한 장, 날짜, 당일 캐스팅 정도만 SNS에 남긴 채 가장 중요한 마음의 흔적은 어딘가에 묻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어디에 묻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쉬운 추억만 남는다.


나의 글쓰기는 뮤지컬과 연극 관람 빈도가 급격히 늘어난 이후 또 하나의 전기를 맞았다.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를 쓰고 인증하며, 수시로 단톡방에서 공연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했다. 흩어질 뻔했던 감상들이 그 자리에서 말이 되고, 문장이 되고, 기록이 되기 시작했다. 기억 저편에 숨겨두었던 소중한 순간들이 되살아났고, 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 얻었다.


생각해 보면 뮤지컬과 연극은 그 자체로 얼마나 훌륭한 글감인가? 무대와 세트, 배우와 음악, 노래가 있고 무엇보다 서사가 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종합예술은 사람의 창의성을 극대화한다. 다만 기억의 유효기간이 지나치게 짧을 뿐이다. 그래서 수시로 메모하고, 기록하고, 붙잡아두지 않으면 티켓값을 뽑아내기 어렵다.

대극장 VIP석 기준으로 티켓 가격이 19만 원에 육박하는 요즘,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활동은 아이러니하게도 SNS 활동이다. 돈만 쓰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공연 관람은 가성비가 지나치게 낮은 고급 취미로 끝난다. 적어도 공연 초대 이벤트라도 받으려면, 내 SNS에 신뢰할 만한 리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디서 본 장면이다 싶었다. 독서를 결심하고 서평을 쓰기 시작해 서평단에 선정되고, 출판사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책 구매 비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그때와 꼭 닮아 있었다. 초대 이벤트 신청서에는 늘 SNS 주소를 적게 되어 있다. 주최 측이 보는 것은 명확하다. 공개 계정인가? 그리고 실제로 이 분야를 좋아하고 꾸준히 기록해 온 사람인가? 신청자의 진심은 이 두 가지만 보면 충분하다.


고가의 티켓을 통상 두 장씩 제공하며 노리는 홍보 효과가 분명할 텐데, 게시물이 거의 없거나 평소 공연을 보는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계정이라면 뽑아줄 이유가 없다. 처음엔 아무리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해도 선정되지 않다 보면 결국 지치게 된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뽑히는 거야?’라는 깊은 의심만 남긴 채, 여전히 내돈내산으로 공연장을 찾게 된다. 사실은 아주 조금만 변화를 주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2025년, 나는 무려 83번의 공연을 봤다. 그중 20번의 초대를 받아 극장을 찾을 수 있었다. 공연을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인스타그램이 허락하는 분량을 꽉 채워 리뷰를 썼고, 최근에는 릴스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300회 노출에 그치던 영상들이 이제는 1만 뷰를 넘기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팔로워도 적게는 두세 명, 많게는 백 명 가까이 늘어나곤 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분명해졌다. 무엇을 하든, 글쓰기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영상을 만들 때도 어떤 문구를 넣을지, 본문에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어떤 글이 읽히고 감동을 주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인스타그램도 그런 글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여기저기 퍼뜨려준다. 사람과 AI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글,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는 글은 무엇일까 추가로 생산적인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 것이 바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공연이었다. 내 공연 리뷰를 본 사람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한 번 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는 요즘이다.


결국 이 고민은 작가로서 내가 독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좋은 공연을 티켓팅하고, 초대 이벤트에 부지런히 참여한다. 공연을 보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공연을 본다. 꽤 그럴싸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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