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7)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나온다

by 하작가

글과 친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글쓰기가 힘들어질 때는 읽으면 되고, 읽는 것조차 버거울 때는 들으면 된다. 여기서 단 하나,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각종 영상물로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유명한 축구 감독이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SNS를 일부러 하지 않거나 전혀 할 줄 모르는 것도 여러모로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다. 문제는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릴스, 쇼츠, 클립 같은 짧은 영상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일이다. 무심코 하나를 클릭하는 순간, 몇백 개의 영상으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이쯤 되면 SNS는 정말로 인생의 낭비가 된다. 아무런 영양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때로는 강박적으로 텍스트에 영혼을 노출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좋은 글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그 마음이 다시 키보드 앞으로 나를 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해도 글을 읽을 기운조차 없는 날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시점을 자주 맞이한다. 소파에 편하게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는 영상을 흘려보고 싶은 날이 당연히 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스토리가 명확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편이 낫다. 기승전결이 있고, 갈등과 위기가 있으며, 인물의 변화와 성장이 분명한 이야기 말이다.


이야기는 영상으로 만들어진 텍스트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고 싶어진다. 좋은 영상물 뒤에는 대개 훌륭한 스크립트가 숨어 있다. 화면 뒤편에 자리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가만히 스며들어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균형 잡힌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준다. 글이 쓰고 싶다면 흔히 말하는 명작 영화나 드라마의 리뷰를 써보는 것도 좋다.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를 길고 깊은 텍스트 슬럼프에서 꺼내준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영화에 몰입했던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쓰기도, 읽기도 싫었던 마음은 180도 바뀌었고, 나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대본집을 샀다. 영화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존재하던 영화의 원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나도 소설이라는 걸 꼭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품었던 것 같다.


그날 밤, 혼자 공항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꿈을 꿨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왜 혼자 공항에 있었을까? 평소 같으면 눈을 뜨자마자 잊히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여겨질 사소한 꿈이었겠지만 잠들기 직전까지 영화와 대본집에 잔뜩 매료된 직후라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노트북을 켜고 ‘여행기피자의 여행 이야기’라는 소재로 단숨에 소설 30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아직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고, 감히 소설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 경험은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나 역시 이야기를 상상하며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번 쓴 김에 끝까지 완성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쓸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든든한 지원군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래서 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는 글쓰기에 참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모든 중독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단 하나 중독되어도 괜찮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야기다. (철저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시길) 이야기가 좋은 이유야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야기 안에는 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실제 사람이 반영된 존재들이다. 사람은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그에 따라 행동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인물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성격과 마음 상태를 짐작하게 된다. 결국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시도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힐 때 이야기책을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만나는 사람의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 가족, 친척, 친구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 질문을 던지며 읽는 독서는 특히 좋다.


나는 문학 작품을 가장 많이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어른이 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히려 갈수록 더 어려워져서,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나는 문학이 그 실마리를 조금쯤은 쥐여줄 거라 믿는다.


귀찮아도 인물들에게 계속 질문한다. 이 선택은 왜 했을까, 이 말 뒤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아이들에게만 시킬 일이 아니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모른다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마음이 질문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그러다보니 또 하나의 소망이 생긴다. 끊임없이 질문을 떠올릴 수 있는 글을 쓰는 것. 많은 독자를 만나고 싶다. 그들이 던져줄 질문은 나를 더 크고 깊고 너그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나온다는 믿음을 갖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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