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문학, 음악, 미술은 학창 시절 중요과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했다. 나의 감정을 모형으로 만들어 오라는 고등학교 미술 숙제가 기억에 남는다.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그 막막한 기분, 그러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분을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도형을 만들기까지 그렸다 지웠다 반복을 했다. 스케치한 것을 도형으로 담기에는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대로 되지 않아 미술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의논을 하고 조언을 듣기도 하며 밤낮으로 하드 보드지를 자르고 붙이고 완성했다. 또 현대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의 중학교 수업도 기억에 남는다. 친구들과 함께 자명종 시계와 주변에 소리가 나는 물건들을 이용해 제멋대로 한 연주를 선생님은 극찬을 하셨다. 잘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던 나는 그 때 두 과목을 통해 스스로 해 냈다는 성취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 같다. 초등학교 친구가 쓴 구름이 들려주는 이야기 독후감을 읽고 느낀 충격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친구처럼 다양한 표현을 찾아 소설과 시를 읽고 따라했다. 친구들이 영어, 수학을 열심히 할 동안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과목에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집중했다. 그 순간만은 충만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졸업할 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이유는 국어, 영어, 수학 과목에는 원 점수에 곱하기 5점을 하고 음악, 미술, 체육 과목에는 곱하기 1점을 하는 성적 산출 과정으로 등수를 매기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어를 못하면 독해력이 떨어져 글을 읽어도 내용 파악을 할 수 없고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를 못하면 글로벌 시대에 문맹처럼 원활한 소통을 하기 힘들고 그 흔한 인터넷의 용어를 읽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학을 못하면 생각하는 힘, 사고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음악을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리듬은 단조롭고 힘든 삶에 흥을 주고 좋은 노래 가사는 마음의 위로를 준다. 흥얼흥얼 조용히 부르는 노래로 우리의 귀에 행복이 들어온다. 음악을 통해 매일 감성의 비타민을 먹는다. 미술을 못해도 큰일이다. 시각적 심미안과 표현력을 키우지 못하면 좋은 풍경을 봐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통해 자유로운 마음의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시각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리의 앎을 의미한다. 시를 통해 아름다운 진리를 마음에, 눈에 담아 우리는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 유산을 만든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함께 깨닫게 된다.
나는 “프레드릭” 그림책을 통해 시, 음악,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잿빛 밖에 없는 겨울을 위해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고 있는 프레드릭 같은 삶을 살며 이 세상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하고 싶다. 이야기는 사라지고 글자만 남은 세상에서, 우리에게 엄청난 소중한 것이 증발하기 전에 알려 주고 싶다. 공기 중에 떠도는 음악과 글자가 주는 진리와 아름다운 자연의 목소리, 건강한 발소리를 담아둔다.
남는 건 사진뿐이지 않다.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시로 남길 수 있다. 사진은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한다. 순간을 찍었기 때문이다. 물론 글도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남기지 않고 글로 남기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문학과 예술이 주는 선물이다. 내가 그 장소에 가서 느꼈던 기분을 다시 기억하는 것은 빛바랜 사진이 주는 것보다 이야기가 더욱 진솔하다. 감정을 잃는다는 것은 서럽다. 차곡차곡 쌓인 추억은 힘이 될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그 곳에 없다는 고통스러운 자각이다. 책을 읽고 여행을 한 후 사진만 남으면 손으로 모래가 빠져 나간 듯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다. 마치 뻥 소리와 함께 터지는 샴페인같이 기분이 날아간다. 글로 쓴다는 행위는 단순히 순간을 기억할 뿐만이 아니라 나와 세상과 하는 대화가 존재하게 한다. 부재의 공간에 존엄을 주어야 한다. 세상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소수어로 말하듯이. 나는 내가 읽은 책과 경험한 기억, 소중한 사람, 풍부한 세상의 모습을 나만의 언어로 기록한다. 나의 몇 줄 안 되는 경력을 담은 이력서와 내가 들어간 사진은 나를 다 표현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자의 모양과 음절이 모여 단어가 이어져 색깔과 표정을 만든다. 나는 오늘도 서사를 기록한다. 시간이 못 다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