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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Apr 09. 2024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석원은 주장한다. 서인주는 자살을 한 것이라고. 그녀의 삼촌 이동주도 서른일곱 살에 자살을 했고 그녀의 어머니 이동선도 자살을 했으니 그녀에게는 자살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그녀를 조사한 것을 토대로 평전을 낼 것이고, 유고전도 전시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녀의 친구 이정희는 안다. 인주는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고. 그녀에게는 이혼 후 자신에게 남은 민서 딸이 있었다. 그러면 왜 인주는 미시령에 가서 사고가 난 것일까.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실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어머니 이동선은 대학 시절 정보부 간부의 아들 진수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아픈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진수는 이동선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영어 과외 의과생 류인섭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도 이동선을 짝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어린 시절 미시령을 넘던 버스가 벼랑에 걸쳐졌을 때 어머니가 남동생만을 살리려 했던 장면을 지옥처럼 기억하고 있다. 동생과 둘만 남은 이동선은 술로 아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결혼을 한다고 알린 이동선과 마지막 밤을 보내던 셋은 미시령으로 그녀를 데려간다. 모두 술에 취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동선의 약혼녀를 본 순간 진수는 차를 몰아 그를 죽인다. 그러나 감옥은 류인선이 가게 된다. 강석원의 무례한 집착도 진수, 류인섭의 잔인한 집착은 닮아 있다. 


"우주가 태어났다는 것은 0이 스스로 무한이 되었다는 걸 뜻한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우주 공간 속에서 0이 끝없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물고기는 물이 텅 빈 공간이라고 생각할 거야. 우리가 공기를 마시면서도 허공이 텅 비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허공은 결코 비어 있지 않아. 바람이 불고 벼락이 치고 강한 압력으로 우리 몸을 누르지. 그러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눈, 더 높은 차원의 눈으로 우주의 공간을 볼 수 있다면 모든 건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거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볼품없어 보이는 인생에도, 너덜너덜 찢긴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이동주 삼촌이 그리려고 한 작품을 인주가 일 년을 바쳐 완성하려고 한 것은 그녀의 평생 아킬레스건인 그들의 슬픔의 원형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친구 이정희가 그랬듯이 어머니는 영원히 보호 본능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자살을 시도한 정희를 살린 것도 인주였고, 인주가 살려고 했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도 정희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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