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를 부탁해
반려견 해치는 2012년에 태어났다. 올해 13살이다. 사람나이로 계산을 할 때에는 강아지 나이에서 곱하기 5~7을 한다. 곱하기 5를 하면 65세, 곱하기 6을 하면 78세, 곱하기 7을 하면 91세 할머니이다. 숫자만 봐도 눈물이 난다. 나는 곱하기 5 계산법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해도 해치가 식구 중에 가장 나이가 많게 되어 버렸다. 강아지들은 외모면으로 보면 아주 눈에 띄는 노화가 없다. 그래서 작은 소형견은 여전히 아기 같이 귀엽다. 아주 자세히 보면 뱃살이 좀 늘어져 있고 눈에 백내장이 껴있는 것 같고 약간 털이 부스스하다. 그러나 신체적인 면에서 노화가 나타난다. 해치는 현관에서 나는 도어록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예전처럼 현관으로 달려 나오지 못한다. 그저 자고 있다. 처음에는 자는 곳에 가서 우리 왔어하고 인사를 했다. 해치 본인도 쑥스러운지 무척 당황해한다. 이제는 자는 모습 그대로 둔다.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손을 씻고 있으면 어느새 온다. 아직 후각은 살아있다. 그리고 자신이 찾아왔기 때문인지 무척 반가워한다. 그 모습은 아기때와 똑같다. 최근에 길에서 어느 사람이 해치 보고 아기냐고 물은 적도 있다. 산책을 여전히 좋아하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다른 개들에게 짖기 때문이다. 청각 빼고 해치는 모든 면에서 건강한 편이다. 그래도 견주에게 가장 반려견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어디가 아프다고 해주는 말이다. 동물은 아파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약해 보이기 싫은 것도 있고 주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한다. 나도 해치가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하면 좋겠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
스파니엘 종은 귀가 크고 늘어져있다. 나는 그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강아지처럼 귀엽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귀가 쳐져 있으니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귓병이 잘 생긴다. 귀가 가려워 발로 긁다 보면 발까지 균이 옮겨진다. 귀 관리가 필요하고 사실 힘들다. 좀 괜찮은 것 같으면 매일 해야 하는 귀세정을 미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해치의 귀가 악화되어 있다. 조그만 음식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귀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병원에 다니다 지친 나는 의사에게 아주 정확하게 귀세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개의 귀 구조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세정액이 뒤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도록 귀를 마사지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솜으로 다 빼내야 한다. 식구들은 나에게 반 수의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엄청 활발한 해치를 겨드랑이에 꽉 끼우고 기선 제압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이어서 발가락 사이사이도 소독을 하고 가끔 이도 닦여야 한다. 거의 아기 보는 수준이다. 얌전히만 있다면 매일 하겠다. 해치는 도망 다니고 나는 잡으러 다니고 식구들은 다른 쪽 다리를 잡고, 그 과정이 힘들다. 그래도 조금씩 해치의 기가 꺾이는 것 같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13년을 살면 반려견은 그냥 가족이 된다. 여자냐 남자냐 따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사람이냐 개냐 그런 것을 우리는 따지지 않는다. 해치는 그냥 우리에게 공기 같은 존재이다.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남편이다. 마당에 묶어둔 개만 키우다가 처음으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반려견을 키우게 된 것이다. 무슨 강아지랑 같이 자냐던 사람이 이제는 해치가 없으면 허전하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해외여행, 장거리 여행 빼고는 거의 해치를 데리고 다닌다. 딸이 초등학생 때 동네 강아지들을 너무 좋아해서 키우게 된 해치이다. 사실 강아지는 집안에서 엄마가 좋아해야 키운다. 아이들은 나에게 그동안 강아지 키우고 싶은 것을 어떻게 참았냐고 할 정도이다. 그래서 해치는 나를 가장 좋아하고 따른다. 당연하다. 매일 밥 주고 엄청 예뻐하고 틈틈이 산책시키고 병원, 미용 관리를 다 하는데. 나는 해치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행복하다. 따뜻한 햇살을 좋아하는 모습, 킁킁 거리며 거리를 탐색하는 모습, 털 깎고 나를 기다리는 해치를 보는 순간, 꼬리를 흔들다가 흥에 겨워 폴짝폴짝 뛰는 모습, 코를 고는 모습 모두 사랑스럽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순례길에서 식구들 중 해치가 가장 보고 싶을 것 같다. 어쩌면 보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 울지도 모른다. 아, 해치가 조금만 젊었어도 같이 순례길을 걷는 건데. 아, 내가 조금만 일찍 순례길에 도전했어도 같이 오는 건데. 최근에 순례길을 반려견과 같이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요즘 해치가 발을 많이 핥아서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했다. 해치를 제압하는 방법을 다시 식구들에게 전수해야 한다. 나 없는 동안 해치를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