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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티아고

3월 26일 론세스바예스

by 하루달

어제 7시에 잠들어서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둡다. 이층침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모든 짐을 조용히 가지고 나와 커뮤니티 식당에서 침낭을 개고 세수를 했다. 제니퍼와 남편이 벌써 아침식사를 한다. 커피를 내리고 바나나, 치즈, 요구르트를 먹고 발가락 사이사이 바셀린을 바르고 발목 보호대, 종아리 압박 밴드를 하고 배낭을 쌌다. 제니퍼가 출발할래 묻는다. 이를 안 닦았는데 기다리라고 하기 미안해서 먼저 출발하면 따라가겠다고 대답했다. 7시 출발이다. 이른 아침인데 연 빵가게도 있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방금 아침을 먹어 그냥 지나쳤는데 비상식량을 챙길 걸 후회했다. 앞으로 4시간 후에는 카페가 없다. 누가 한국사람들이 가장 부지런하다고 했나. 외국인들 장난 아니다. 제니퍼 부부는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가다가 멈춰 사진을 찍었다. 아, 여기도 예쁘네, 이 꽃은 뭐야, 개나리랑 비슷하다, 향기도 좋다. 양들은 행복하겠다. 찍을 풍경이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면 늦게 출발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이 나를 앞서 간다. 알베르게 55번에는 딸이 좋아할 만한 잘생긴 외국인이 많았다. 등산 모자가 아닌 카우보이 모자에 멜빵바지를 입은 멋쟁이도 있었다. 그도 앞서 가다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그는 고속도로 다른 길로 잘못 간 듯하다. 남걱정할 때가 아니다. 갑자기 저 멀리 가정집에서 나에게 부엔 카미노 소리를 지른다. 개도 같이 짖는다. 나도 친절하게 부엔 카미노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계속 손을 흔든다. 아, 내가 길을 잘못 가나보다. 바로 유턴해서 바른 길로 갔다. 그는 자기 집에서 다른 길로 가는 순례자에게 매번 이러는 모양이다. 진짜 친절하다. 비가 온다. 아우터 모자를 쓰고 배낭에 커버를 씌웠다. 어떤 사람은 판초 우의를 입었다. 그런데 잘못 입어서 배낭이 다 젖고 있다. 나는 실례한다며 판초 똑닫이를 잘 맞춰주었다. 호주 언니들은 체력이 장난 아니다. 성큼성큼 잘도 걷는다. 커다란 순한 개가 지나간다. 근데 독일 아저씨가 서 있다. 나에게 캄다운을 외친다. 아주 무서운 사냥개가 떡 하니 서 있다. 그는 나를 위해 기다려준 것 같다. 개를 잘 지나치자 잘했다고 칭찬한다. 참 사람들이 친절하다. 어, 순례자 표시가 잘못된 곳이 있다. 구글맵이랑 정반대 방향이다. 독일 아저씨는 구글을 믿고 나는 까미노 화살표를 믿었다.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 나는 또 바로 유턴해서 바른 길로 갔다. 갑자기 숲도 아니고 마을도 아니고 고속도로를 걷게 되었다. 앞서는 사람도, 따라오는 사람도 없다. 이런 순간이 가장 무섭다. 이 길이 맞는다는 보장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도 가장 힘든 것 같다. 화살표, 길잡이는 정말 중요하다. 같이 가는 사람만 있다면 좋을 텐데. 어제처럼 나 혼자 또 남았다. 강해지기 위한 필수 코스인가. 블로그에서 본 그 사람처럼 이러다가 깜깜해진 시간에 도착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난다.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제니퍼를 드디어 만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그런데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서로 힘내자고 응원하다 보니 아까 앞선 호주 언니, 다른 순례자들을 모두 만났다. 다들 웃음을 잃었다. 4km 남았는데 왜 이리 알베르게가 안 보일까. 개와 순례하는 사람도 있다 개는 여섯 살 하니이다. 오늘 개를 참 많이 만난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 도착이다. 시간은 3시이다. 난생처음 7시간을 걸었다. 한 번만 카페에서 쉬었을 뿐이다. 두 번째 만난 카페도 들릴 걸 후회했다. 그나마 어제 까르푸에서 산 바나나와 치즈, 선혜씨가 준 초콜렛으로 견뎠다. 봉사자들이 권하는 따뜻한 물과 비스켓을 네 조각 먹고 방을 배정 받은 후 샤워하고 세탁, 건조 서비스를 맡기고 누웠다.

근데 아까 인종차별을 받은 것 같다. 사무실에서 예약 번호로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QR로 찍은 서류가 오지 않았다며 다시 입력하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처리했다. 입력하면 전송이 되지 않아 에러가 뜬다고 말해도 다시 하란다. 야, 너 왜 나한테 화를 내? 말을 해 말아 엄청 망설이다가 다 입력했다 봐라 라고말했다. 그녀는 이제야 여권 번호를 입력한다. 진작에 입력하지, 아무래도 인종차별 같다. 여기 스태프들은 모두 너무나 친절하다.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물과 과자를 주며 괜찮냐고 물어보고 엘리베이터도 잡아준다. 이 여자만 나쁜 사람이다. 아, 무례하다고 말을 했어야 했다. 주여, 용기를 주소서

오기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경험한 사람들의 에세이를 여러 권 읽었다. 프랑스길, 북쪽길, 이슬람길 세 길을 순례한 여행 작가의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어를 잘하는지 외국인 친구를 금방 사귄 부분이 인상 깊으면서도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남편은 내 스타일대로 하지, 별 걱정 다 한다고 웃는다. INFP는 이렇다. 별 걸 다 신경 쓰고 걱정한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는 5성 호텔급이다. 정부가 지원해 멋지게 지었다. 건물이 여러 개인데 성당도 있다. 6시에 스페인 미사를 보고 7시에 호텔이라고 쓰여있는 곳에서 커뮤니티 식사를 했다. 나에게 친절한 제니퍼가 보이지 않는다. 이따 보자고 했는데 다른 건물에 있나 보다. 독일인 4명, 스웨덴 1명, 호주인 2명, 네덜란드 1명, 한국인 2명이 큰 테이블에 같이 앉았다. 또 반가운 한국인을 만났다. 우리 둘만 얘기하면 다들 한국말을 모르니까 예의가 아니다. 다행히 영어권이 아닌 외국인의 영어는 좀 들린다. 스웨덴 할머니가 주도를 한다. 아까 성당에서 봤다며 대화의 물꼬를 자연스레 텄다. 영어를 참 잘한다고 하니 학교에서 듣기 교육을 많이 한다고 한다. 역시 그 유명한 스웨덴 교육이다. 독일 중년 여성도 친절하게 물어본다. 나는 별 얘깃거리가 없어 묻는 말만 대답하게 된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커뮤니티 식사이다. 토마토 스파게티도 피시 요리도 디저트 빵도 그저 그렇다. 와인만 맛있었다. 젊은 MZ 외국인은 잘 말을 걸지 않는다. 전 세계 공통점인가 보다. 아줌마들만 오지랖이 넓다. 어쨌든 영어가 능숙해야 할 것 같다. 또 영어공부의 의욕이 불탄다. 그래도 여러 가지를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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