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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타아고

4월 12일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쁘라리요스

by 하루달

생장에서 같이 출발한 인연들을 지금 볼 수 없다. 순례길은 자기만의 속도로 가기 때문에 스케줄이 다 다르다. 이제 하루하루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까리온에서 테라디요스까지 17km 이상 마을이 거의 없으니 물과 먹을 것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유일하게 중간에 푸드 트럭이 있다. 라테를 마시고 있는데 반가운 한국인을 만났다. 4월 1일에 도착해서 벌써 이곳이란다. 하루 40km를 걷는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또 한국인이 왔다. 아버님, 어머님이 택시를 못 탔다고 서로 이야기하길래 가족인 줄 알았다.

더 걷다가 카페가 나왔다. 아까 뒤늦게 온 한국인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합석을 했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지금 네 번째 산티아고에 왔는데 7년 전 처음 산티아고를 왔을 때 만난 한국인 부부를 또 알베르게에서 만났다고 한다. 우와,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있는가. 듣는 내가 다 신기한데 본인들은 얼마나 놀라고 또 놀랐을까. 그래서 바로 7년 전의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비교하며 보여준다. 그 한국인 부부는 캐나다에 살고 있고 열네 번째 산티아고에 왔다고 한다. 대단하다. 산티아고 홀릭이다. 왜 이렇게 자주 오냐고 물으니 자신은 산티아고에 와야 한국에서 버틸 힘이 생긴다고 한다. 나도 벌써 20일째 걷고 있다. 조금 이해가 간다. 나이, 국적, 직업과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한참을 같이 걷게 되었다. 걸으면서 스페인 역사를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좋은 꿀팁을 많이 알려주었다. 자신도 매일 일기를 쓰는데 가끔은 외국인에게 지금의 느낌을 적어달라고 한단다. 그리고 아직까지 해석 불가능이라고 하며 웃는다. 나도 한 번 외국인에게 시도해 봐야겠다. 이태원에서 바를 운영한다며 초대를 했다. 나는 꼭 산티아고 책을 내서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에 한국인들과 카톡을 하는데 모두 그분을 알고 있었다. 네 번째 산티아고에 온 사람으로 유명인사였다. 아마 우리보다 앞선 한국인들과 조만간 반가운 만남을 가질 것이다. 모두가 참 신기하고 소중한 인연이다.



침대 네 개만 있는 방에 네덜란드인이 있다.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건다. 그래도 영미권이 아닌 나라의 영어가 좀 편하긴 하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한국. 너는?


홀랜드. 이름이 뭐니?

지현. 너는?


니키. 네 이름의 뜻은 뭐야?

음. 한자인데 지는 지초지, 꽃이름이야. 현은 솥귀현. 음..... 냄비에는 핸들이 있잖아. 그 핸들이란 뜻이야


그럼 꽃을 나른다는 의미야?

음... 아니( 나의 부모님은 두 한자를 연결해서 이름을 짓지 않으셨다) 각각의 뜻이야. 네 이름의 의미는 뭐야?


니키는 승리라는 의미야

멋지다. 너는 어떤 일을 하니?


나는 가든에서 일해.

우와, 너는 가든이 있니?


아니. 가든이 있으면 엄청 부자야. 나는 가든 회사에서 컴퓨터로 일을 처리하는 일을 해( 대강 이런 뜻 같다). 너는?

나는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다가 그만두고 글을 쓰고 있어. (검색을 한다) 이 책들이야. 이것은 글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는 책이고 이것은 내 엄마에 대한 책이야


멋지다. 또 글을 쓸거니?

응. 산티아고에 대한 글도 쓰고 싶어. 너 혹시 노벨상 받은 한강 작가 아니? (검색한다)


몰라. 네가 좋아하는 작가니? 꼭 읽어볼게

아, 나 히딩크, 축구 감독 알아


아, (표정이 엄청 반갑지 않다. 네덜란드에서는 존재감이 없나?)

우리는 히딩크를 엄청 좋아해


너는 하루에 몇 킬로미터 걷니?

20~ 28킬로미터. 너는?


나는 발에 물집에 생겨서 10km만 걸어

그렇구나


오늘은 좀 춥다. 빨래가 안 마르겠다. 내가 네 빨래를 안에 가져올까?

고마워. 같이 가자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자꾸 말을 건다. 나는 빨래를 라디에이터에 널어두고 침대에 앉아 글을 썼다.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영어를 알아듣기 위해 엄청 집중해야 한다.


저녁 먹을 거니?

응. 같이 가자


한국인 네 명이 있다. 세 명은 식사를 안 할 거라고 하고 남자분만 식사를 한다고 해서 네덜란드인과 같이 셋이 테이블에 앉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유럽 온 적 있니?

처음이야

나는 영국, 프랑스, 로마, 바르셀로나, 이탈리아에 간 적 있어


너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간 적 있니? (파리 단어를 못 알아들어 한참 후에 이해했다)


거기서 니케 동상 봤니? (사진을 보여준다)


이게 내 이름이야

아. 니케, 나이키. 빅토리. 나는 너를 영원히 기억할게


아, 반 고흐 미술관이 네덜란드에 있지?

응. 내 집 근처야


우와. 부럽다. 그럼 관광객도 늘 많겠다

응. 한 해 2만 명(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온대


내가 네덜란드에 가면 너에게 꼭 연락할게

한국에 온 적 있니?

아니. 서울은 큰 도시지?


한국에 오면 나에게 꼭 연락해

그래


아, 나 하멜도 안다.

하멜이 누구야?


600년 전 표류해서 한국에 온 네덜란드인이야 (검색을 해서 보여준다)

나는 잘 몰라( 하멜 표류기는 우리만 공부하나 보다)


땡큐가 한국말로 뭐야?

감사합니다. 네덜란드로는 뭐야

텅크웰


너 몇 살이야?

65. 너는?

40. 너는? (나를 바라본다)

맞춰봐

40?

아니. 53이야 (감사하게도 두 명이 놀란다)

나의 아들, 딸은 대학생이야. 너는?

내 딸은 여섯 살이야. 지금 나를 엄청 보고 싶어 해.

나는 손자손녀가 4명이야

하하


산티아고에는 왜 왔니?

나는 아내가 원해서 보디가드하러 왔어

나는 일을 그만 두고 걷고 싶어 왔어

나는 산티아고라서 왔어


한국 사람들은 TV프로그램을 보고 오는 경우가 많아

파울로 코엘로 책을 보고 오는 사람도 있어

진짜?

하하


우리는 시간 부자야. 시간이 많아 참 좋다.

맞아


우리의 저녁식사는 따뜻했고 조금 못 알아들어도 재미있었다. 나는 방에 가서 딸에게 줄 선물이 있다며 한국에서 가져온 책갈피를 보여주고 고르라고 했다. (지인이 외국인에게 선물하라며 준 전통 무늬 책갈피이다) 그녀는 나비모양을 선택하며 고맙다고 한다. 그녀도 나를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 네덜란드에 대한 총지식을 가지고 나눈 스몰토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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