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올라, 산티아고

4월 11일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by 하루달

순례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 바탕화면이나 개인 sns 프로필에 사용하는 광활한 대지의 길이다. 초록과 황토가 어우러진 넓고 넓은 광야에 세로의 길이 쭉 나있고 순례자가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길 말이다. 봄에는 유채꽃과 연두와 초록빛의 밀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아마 가을에는 포도밭과 누런 낙엽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시야를 막는 장애물 없이 끝없는 들판이 이어진다. 아침에 이 길을 3시간쯤 걷는데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흐른다. 그야말로 초록멍이다.


두 번째는 산길이다. 피레네 산처럼 높은 산도 있고 낮은 산도 있다. 낮은 산도 산이기 때문에 들판에 비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조금 힘들다. 돌산도 있고 소나무 산도 있었다.(신기하게도 돌이 악어이빨처럼 길게 생겼다) 순례길 초기에 산이 좀 많다.



세 번째는 마을길이다. (지금 빈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하루에 마을을 두 번 많게는 다섯 번도 통과한다. 마을에는 카페와 알베르게가 항상 있다. 조금 걷고 싶은 사람도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순례길이다. 마을이 나타나면 무척 반갑다. 목을 축이고 배도 채우고 반가운 사람들도 만난다. 잠깐의 수다 시간이다. 또 성당이나 유명 명소를 잠깐이나마 구경할 수 있다. 종소리도 잘 듣는다.



네 번째는 고속도로이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이 항상 산길, 들판길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지나야 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 배운 것처럼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다가오는 차가 나를 보고 피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는 아스팔트라 낭만이 없다. 찰박 찰박 BGM이 없다. 좁은 철길을 지날 때나 높은 육교를 건널 때는 어지럽기도 하다.



다섯 번째는 수변길이다. 지금껏 한 번 걸었다. 작은 강을 끼고 순례길이 나있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강이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벤치가 있어 한참을 앉아 휴식을 취했다



여섯 번째는 굴길이다. 터널이라 하긴 작은 굴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섭지 말라는 의미로 그래피티를 그려놓은 것 같다. 짧은 굴도 있고 제법 긴 굴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길 안에도 디테일이 있다. 좁은 길은 한 길밖에 없지만 조금 넓은 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있다 반들반들한 길이 많은 이들이 밟은 길이다. 닳고 닳아 부드럽고 미끄럽다. 조금이라도 발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길만 밟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기에 돌이 닿아졌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길을 걸었을까. 처음 이 길을 걸은 사람을 생각한다. 한 사람이 쏘아 올린 그 길을 또 다른 사람이 걸었고 소문을 듣고 또 많은 이들이 동참했고 같은 길을 여러 번 걷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퇴사하고 온 사람들이 많다. 끝을 맛본 사람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이 길을 걷고 있다. 이별을 한 사람도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다양한 길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은 하나다. 나만의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우린 공통된 길 안에서 연대하며 걷고 있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단단한 온기가 있는 길을 걷고 있어 무척 행복하다. 나는 지금 순례길의 매력에 빠져 있다. (순례길은 스페인 사람들도 걷는다.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학생들이 체함학습을 가는 길이기도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