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올라, 산티아고

4월 10일 프로미스따

by 하루달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말을 한다. 혼자 태어났다. 그럴 리가. 물론 혼자 힘으로 엄마 자궁에서 나왔지만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이모, 의사, 간호사의 관심과 사랑으로 태어나 발가락, 손가락, 눈, 코, 입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등 지극한 보살핌으로 인생을 시작했다. 인간은 결국 혼자 죽는다. 그럴 리가. 물론 언제 죽는지, 나이순도 아니라 아무도 모르지만 가족이 있는 집에서 또는 혼자라도 누군가가 발견한다. 그리고 삼일동안 아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슬픔을 나눈다. 그리고 계속 계속 기억하고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며 또 기억한다. 혼자가 아니다. 배우자가, 자식이 없어도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반드시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혼자 온 사람이 많다. 자발적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걷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같이 시간을 보낸다. 결코 혼자가 아니다. 물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잘 때,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음식을 건네고 괜찮냐고 건강도 챙긴다. 혼자 다니는 홍콩 아저씨가 있다. 사진을 늘 찍는다. 우리는 사진을 보여달라고까지 한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자주 순례길을 이탈한다. 그럼 득달같이 거기 아니라고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손을 흔든다. 정말 혼자가 아니다. 걸을 때는 아무도 긴 말을 건네지 않는다. 올라, 부엔 까미노로 인사만 한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7시간가량 생각을 한다.

나는 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내가 언제 혼자였나, 초등학생 때 소풍을 가기 전날 친한 친구와 싸웠다. 왜 싸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친구는 같이 다니는 친구들을 바로 포섭했다. 그 어린 나이에 정치적 능력을 가졌다. 소풍 가서 나만 혼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 우선 친한 친구와 싸워서 화가 났었고 다른 친구들의 배신에 서운했고 남들이 왜 혼자 먹냐고 물어볼까 서러웠고 부끄러웠다.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혼밥, 혼술, 혼자여행을 해봤냐고 물어보고 누구는 도전 사항까지 되어야 하는가. 요즘은 자발적 혼자를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부러워까지 한다. 그러나 어린 나는 용기가 없었고 그 부끄러움, 수치심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 어떻게 생활했는지 기억도 없다. 요즘 말하는 왕따를 겪어본 것이다. 요즘은 왕따에 관련된 책들은 결론이 혼자라고 용감하게 지내라는 메시지가 많다.

나는 지금 자발적 혼자를 선택했다. 수많은 정보과 책임감, 해야 할 일로부터 멀어져 있다. 걷는 행위는 내가 스스로 기꺼이 선택한 일이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한국에서는 카톡도 오고 답도 해야 하고 누구의 부탁도 들어줘야 하고 해야 할 일, 읽을 책이 쌓여있다. 그동안 책과 영화를 보고 느낀 감상만으로 글을 썼다. 지금은 걸으면서 몸으로 느끼는 모든 생각을 쓰는 중이다. 부담감이 없다.

알베르게에서 재미있는 글을 봤다. 한국인인데 무언가를 찾고 변화하기 위해 왔는데 이 주가 지난 지금 나는 변한 것도 없고 그대로라며 될 놈은 여기 오지 않아도 되고 되지 않을 놈은 여기 와도 되지 않는다는 글을 썼다. 맞다. 극적인 변화는 없다. 나도 가족과 통화하면 그대로이다. 잔소리하고 징징대고. 그런데 저 사람은 겸손을 배운 것이 아닐까. 변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없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나는 변했을까. 천천히 살고는 있다. 방해받지 않아 행복하다. 여전히 자발적 혼자를 즐기지는 못한다. 그 정도이다. 그런데 혼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I'm not alone, you're not alone



TV 프로그램 중 길거리에서 가수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관중들은 얼마나 큰 행운이냐 라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그 장소를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공연을 보는 것은 무척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순례길에서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막연히 가졌다. 어제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 한국인에게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공연이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오르간 연주와 성악, 플루트 연주가 이어졌다. 모두 성가대 음악인 것 같다. 어떤 곡은 잔잔하고 어떤 곡은 어깨가 흔들거리기도 했다. 저녁까지 먹고 모든 일정을 마친 후 휴식처럼 들은 음악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운 곳에서 부담 없이 언제나 즐기는 문화가 예술이다. 유명한 작가, 음악가가 아니어도 주민들에게 오픈이 되는 예술이 부럽다.




오늘도 새벽 6시 30분에 길을 떠났다. 18km만 걸으면 되는 일정이라 7시에 떠날까 하다가 저절로 눈이 떠져서 출발했다. 여전히 캄캄하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뜨려는 순간 빛이 낮은 오로라처럼 번진다. 땅 위에 서서히 스며드는 그 빛이 너무 좋다. 카메라에 담기는 빛이랑 다르기 때문에 나의 눈은 특별해진다. 그런데 오늘은 보름달이 눈앞에 있다. 순례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이다. 따라서 지금 하늘에 떠있는 것은 달이 틀림없다. (다행히 우리는 해를 등지고 걸어서 얼굴이 많이 타지 않는다) 낮달은 자주 봤지만 달은 처음이다. 붉은 달이 눈앞에 있다. 보라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달은 나를 인도한다. 고속도로를 살짝 지나야 하는 초입길이다. 다행히 차가 많지 않다. 나는 달빛에 넋이 나갔다. 오늘은 거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논술학원도, 출판사 이름도 하루달이라 지었다. 달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해는 항상 동그란 모습인 반면 달은 변화한다. 차기도 하고 기울기도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달, 모든 하루가 소중하다는 의미에서 하루달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순례길에서도 달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이루어졌다. 보름달은 마침 내가 순례를 한 보름과 같다. 나를 응원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달은 해와 다르게 금방 땅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만약 7시에 나왔다면 못 봤을 풍경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