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가면을 벗다

by 홍지현

우리 가면 문화에는 탈춤이 있다. 양반탈, 각시탈, 말뚝이 탈을 쓰고 양반을 풍자하는 공연을 안동에서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관중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각시탈을 벗은 배우는 놀랍게도 남자였다. 그 충격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가면은 모든 것을 숨긴다. 아니다, 가면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가면 뒤에서 남자 배우는 마음껏 여자 역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우리는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썼다.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도 얼굴의 반을 가리는 것이 타자를 만날 때 꾸미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나를 드러내지 않는 자유를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SNS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살고 있지만 왠지 모두를 드러내는 행위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아이디와 필명, 캐릭터를 만들며 나를 조금 숨긴다. 또는 가짜 겉모습으로 나를 감추기도 한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왜 이리 이중적이고 부담스러운 것이 되었을까. 일부 자아가 타자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눈에 보이는 외모, 복장, 가지고 있는 것들, 사회적 위치 등으로 자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모를 가꾸고 명품을 사고 싶어 하고 심지어 사는 동네에도 이미지가 형성된다. 타자에 의한 나의 정체성이 중요할수록 더욱 잘 보이려는 자아의 노력은 과잉되기도 한다. 과잉은 분명 나의 모습이 아니기에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반면 내면의 자아는 예민하게 위축될 것이다.


사람 pers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persona에서 유래한다. 페르소나는 그리스와 로마의 연극배우들이 무대에서 쓰는 가면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곧 가면이다. 즉 사람은 무대가 아닌 삶에서 역할 가면을 쓴다. 나는 집에서 아내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하고, 딸이 되기도 하고, 며느리가 되기도 한다. 집에서 각각 다른 가면을 쓴다. 역할은 안정과 불안정을 오간다. 편한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집 밖에서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선배가 되기도 하고, 후배가 되기도 하고, 작가가 되기도 한다. 좋은 말을 들을수록 나를 더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가면과 나는 같은 것일까. 다르다면 내 안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제껏 쓰던 보편적 가면을 벗었다. 이 행위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타자가 나의 역할이 아닌 이름만 물어봤기 때문이다. 이름은 잊고 있었던 소중한 나의 정체성이다. 우리의 대화는 어떻게 순례길을 오게 되었는지, 지금의 감정이 어떤지, 앞으로 순례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 현재에만 집중했다. 모두 과거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 역할이 지금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할 가면을 듣는 순간 일반화된 편견이 생겨 이름보다는 역할 가면에 집중하는 대화를 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렇게 내 가면을 잊은 채 내 이름과 배낭을 멘 모습으로 지낸다. 길을 걸으며 나는 내 안의 가면을 제대로 보게 될까.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하는 감정과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의 얼굴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까. 나도 가면을 쓴 남자 배우처럼 자유로워질까.


<게릴라 걸스>라는 여성 예술가 단체는 고릴라 가면을 쓰고 활동한다. 가면이 그들의 내면과 목소리를 잘 드러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중 여성 작가의 작품은 삼 퍼센트 미만이지만 누드 작품의 팔십삼 퍼센트는 여성임을 알린 단체이다. 왜 그들이 고릴라 가면을 썼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그들이 말한 여성 작가의 장점이라는 풍자적인 문구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여든이 넘어야 전문적인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음. 애인이 젊은 여자와 노닐 때 일에 집중할 시간이 생김." 비판적인 글이지만 슬픈 마음이 든다. 그들은 여성에게 육아와 가사 노동, 그 밖의 굴레에서 완전히 해방되기가 어렵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나도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집안일에서 조금 벗어나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나이대가 비슷한 한국인 여성 두 명은 싱글이었다. 사회적 지위를 얻는 동안 그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고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것 같다. 은퇴하고 온 중년부부들을 제외하고 혼자 온 여성 순례자들이 많다. 그들도 잠시 사회적 활동을 멈춘 상황이 많았다. (우리들이 퇴사하고 이곳에 왔다고 하면 외국인은 무척 놀란다. 6주나 휴가를 쓸 수 있다는 그들의 말에 우리도 깜짝 놀란다.) 자연스럽게 우리 여성들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우리는 선크림만 바를 뿐 화장하지 않는다. 그 하나의 행동만으로도 자유를 느낀다고 서로 말한다. 이곳에서 나는 서서히 가면을 벗고 있는 것 같다. 어제의 론세스바예스 오르막길은 오늘의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인생과 비슷하다.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나는 지금 내리막을 걷는 인생에 들어섰다. 위태로운 내리막길 돌길 틈에서 나의 해방된 얼굴을 본 듯하다. 내가 모르는 얼굴은 사실 무수히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페인어로 스페인은 '에스파냐'이다. 과거 이스파니아는 카르타고가 로마에 의해 멸망하자 로마의 속국이 된다. 이스파니아인들은 저항하였고 로마가 그들을 정복하는 데 200년이 걸렸다. 스페인은 평시에는 부드럽고 유순하고 개방적인데 공격을 받는 위기의 상황에서 강하다. 그런데 정복 후 스페인은 로마의 피지배인이 아니라 주인이 되었다. 라틴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로마 문화,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중에는 유능한 로마 황제들을 배출한다. (트리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테오도시우스) 그리고 로마보다 기독교를 먼저 받아들인다. (테오도시우스가 국교로 채택한다.) 유럽 전체에 종교 개혁이 일어나도 스페인은 반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된다. 이토록 그들이 로마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열등감 때문이다. 뛰어난 문명의 로마인처럼 되고 싶었고 타자적 자기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타자에 의해 형성된 자신은 소외되고 자기에 대한 혼돈이 발생한다. 스페인은 로마의 가면을 벗는 데 시간이 걸렸고, 정체성을 상실하였으나 기독교만이 그들의 유일한 정체성이 되었다.


수비리 지역은 10세기와 11세기 초 나바라 왕국의 영토였다. 나바라 왕궁을 세운 바스크인들은 프랑스와 스페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독자적인 언어, 바스크어를 사용하였다. 바스크어로 다리의 마을이라는 뜻이 ‘수비리’다. 아르가 강을 가로지르는 라 라비아 다리는 12세기 고딕 양식의 다리 교각에 키테리아 성인의 유물을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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