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인내의 시간

by 홍지현

엄마는 내가 잘 참는다고 싫어했다.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아"라는 말은 내 귓가에 남은 마지막 유언이다. 엄마는 내가 언제나 참아서 손해를 본다며 속상해했다. 그러나 나는 잘 참아서 첫날 24.2km를 걸었다. 아직은 3월이기 때문에 피레네산맥을 넘는 길이 위험하다며 통제가 되어 우회 길인 발카를로스 길로 걷게 되었다. 피레네산맥보다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하고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1,000미터 고도를 걷기에는 무척 힘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돌고 또 돌았을 때는 이러다가 밤이 되어 산에 갇히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를 때는 다리와 골반이 찢어질 듯 아프고 숨이 턱끝까지 찼다. 6kg 배낭의 무게는 100kg으로 느껴졌다. 누가 업어줄 수도 없는 상황에 믿을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조금씩 걸었고, 쉬었다가 힘을 내어 다시 산을 올랐고, 마침내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해 봉사자들이 건네는 따뜻한 차와 비스킷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외국인들에게 “we did it"라 외치며 함께 자축했다.


또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는 규모가 무척 크다. 180명 정도 순례자를 수용하는 곳이다. 한국에서 예약을 미리 했으나 여권을 보여주고 QR로 신원을 다시 등록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등록한 기록이 자꾸 에러가 나자 나는 봉사자에게 수기로 하고 싶다고 했다. 봉사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다시 시도를 권했다. 나는 몇 번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같았고 결국 길게 줄을 선 다른 외국인 순례자 모두가 등록을 마친 후에야 봉사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기다리는 내내 인종 차별이라는 불쾌한 의심을 했다. 그때 나는 당신의 행동이 나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나의 신념과 의견을 삼키는 것이 인내는 아니지 않냐며 고민을 했다. 조금 느린 건 잘못한 행동이 아니다. 빨리 일을 끝내는 효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다. 다양한 인종이 만나는 순례길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얼굴을 붉히지 말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상대와 똑같은 불쾌한 태도로 분노로 맞서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상대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를 용서하는 마음이 나 스스로에게서 생겼다. 그는 아까와는 다른 태도와 함께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분노에 자신이 장악당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 것 같다. 인내는 분노를 다스린다. 분노의 반대말은 용서이다. 나는 여기에서만 인종차별을 느끼고 다른 곳에서는 아주 친절한 스페인 사람들만 만났다. 그래서 지금도 다시 스페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사람의 불친절로 모두를 일반화시키고 싶지 않다. 어쩌다 만나는 불쾌한 상황은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 같다. 나는 인내심을 가졌으나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이 묵는 알베르게 건물과 성당과 박물관과 레스토랑이 있는 복합건물이다. 성당에서 열리는 저녁 미사에 참여하고 레스토랑에서 커뮤니티 식사를 했다. 열두 명의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긴 대화를 나누다가 내향적인 나는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껴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찍 일어났다. 침대에 누웠지만 온몸이 아파서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먼 곳에 걸어서 오다니 여전히 믿기지 않아 잠을 잘 수 없었다. 길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들은 여전히 나의 눈에 담겨 있었다. 이 층침대에서 다른 순례자들의 숨소리를 들으니, 꿈속에서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귀여운 양과 당나귀를 떠올리며 잠을 청했다.




생장 55번 알베르게에서 나와 니브 강의 다리를 건너면 스페인 문이 나온다. 스페인 문에는 나폴레옹 길과 발카를로스 길로 갈라진다. 피레네산맥을 넘으면 스페인 국경에 들어간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하기 위해 넘은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 이 용어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어쨌든 거대한 피네네 산맥은 타민족의 침략을 막는 중요한 지리적 요소임은 틀림없다. 나폴레옹 길에는 롤랑의 기념비가 있다. 프랑스 샤를마뉴의 열두 기사 중 한 사람이었던 롤랑 장군이 이슬람 군대의 습격을 받아 싸우다 전사한 곳이다.


스페인에는 이슬람 역사가 숨어있다. 스페인을 다스렸던 로마제국이 멸망하자 스페인 땅에 서고트 십만이 세고비아 중심으로 정복한다. 그들이 로마법과 기독교를 그대로 인정하는 정책을 펼치자, 스페인은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서고트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스페인과 하나가 된다.


서고트의 한 왕족이 베르베르 북아프리카 이슬람 칠천 선발대를 보내 정복하고 시리아의 라흐만 왕자가 도망쳐 알 안달루스 왕국을 세운다. 그들도 기독교를 그대로 인정하는 정책을 펼친다. 코르도바에는 아사하라 대궁전이 지어지고 높은 수준의 학문, 건축과 예술이 성행하고 경제공동체로 하나가 된다. 그러나 알 만수르가 기독교 세력을 몰아내려는 전쟁을 일으키고 콤포스텔라를 공격하자 스페인의 정체성이 살아나 국토 회복의 씨앗이 된다. 결국 1269년 이슬람은 무너지고 그라나다에서만 명맥을 유지한다. 1492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르곤의 페르난도는 결혼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기독교 왕국으로서의 국토 회복 정책을 펼친다. 유대인과 무어인을 추방한다. 경제와 행정에 핵심이었던 그들이 사라지자, 스페인은 무력해진다. 수용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억압하는 기독교로 변질된 종교는 그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상실하게 했다.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은 서서히 몰락하는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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