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봄 소풍 왔다

by 홍지현

왔다. 고 생각했다

왔다 다음에 쉼표를 찍지 않으면

숨넘어갈 것 같았다

(그것 - 오은)




소풍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가 오는 일”이라고 사전에 쓰여 있다. 노닐 소'逍'에, 바람 풍'風'이 말하듯 바람을 쐬며 노는 일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의 풍경을 떠올리면 아침에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동네에서 먼 어떤 곳으로 가서 친구들과 맛있는 김밥을 먹고 오후에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장면이다. 소풍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여행보다는 가볍고 동네 산책보다는 무겁다. 소풍을 피크닉 단어로 바꾸면 어린 시절에 단체로 갔던 수동적인 이미지가 사적이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시인 천상병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의 시 <귀천>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마도 '소풍'이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소풍이라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승화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행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소풍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은 우선 큰 캐리어를 끌고 하루보다는 긴 나날을 동네보다 훨씬 더 먼 곳으로 가서 시간과 돈을 쓰는 일이다. 동네보다 먼 그곳은 여기보다 멋있어야 하고 새로운 곳이어야 한다는 그만큼의 기대가 있다. 따라서 여행은 늘 분주한 일정과 행복해 보이는 인증사진이 따르게 되어 있다. 검색을 탁월하게 잘해야 누구나 갔다 온 여행 후기에 동참할 수 있다. 만약 누구나 다 아는 명소에 가지 못했거나, 맛집에 가지 못했다면 여행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이제 여행도 어떤 패턴과 유행이 지배한다. 나는 이런 여행에 지쳤고,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풍은 마음이 한결 가볍다. 유명한 여행지에 가지 않아도 되고, 맛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바람을 쐬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면 된다. 걷다가 만나는 모든 곳이 유명지이고 맛집인 것이다. 비록 산티아고 소풍은 비행기까지 타고 동네보다 아주 멀리 갔어도, 시간과 돈을 많이 들였어도 왠지 출발부터 여유롭다. 캐리어 대신 가지고 간 배낭 안의 짐은 단순하고 가볍다. 순례길 위에서는 여느 여행지처럼 검색할 것이 많지 않다. 알베르게 숙소 예약만 잘하면 된다. 카페나 레스토랑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 순례길은 나에게는 느슨한 소풍에 가깝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 14시간을 타고 드골 공항에 도착하고, 야간 버스 10시간을 타고 바욘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로망이었던 SNCF 야간 기차를 타지 못한 점이 아쉽다.) 틈틈이 스트레칭했지만 몸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걷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힘들다고 투덜거린, 어리석은 착각의 시간이었다. 바욘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다시 기차를 탔다. 1시간 후 드디어 이름만 수없이 들었던 생장 피에드 포르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순례자를 증명하는 크레덴셜을 발급받고 순례자 조개를 샀다. 순례자 크레덴셜이 있어야 알베르게 숙소에 들어갈 수 있다. (크레덴셜이 필요 없다는 미국 할머니에게 나는 크레덴셜의 쓸모를 말했는데 그녀는 “당신 나이면 나도 알베르게에 가겠소, 나는 호텔에 묵는다오”라는 말을 들었다.)


비로소 나의 낭만적인 피크닉이 시작되었다. 이제 나에게 일반적인 시간의 압박은 없다. 내 속도에 맞추는 나만의 시계가 생겼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나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이 상황이 막연히 두렵지 않다. 마치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 속의 그녀처럼 외국어로 나의 말문이 트이기를 바라면서, 친절한 알래스카 제니퍼의 외국어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 이해한 척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외국어인 한국말로 "아, 정말 행복하다"라는 모국어를 연신 중얼거린다. 창문을 통해 외부 풍경을 빌려오듯 나의 눈에 프랑스 3월의 나무 색채, 구름의 그림자, 바람의 흔적, 꽃의 향연이라는 모든 봄의 풍경을 차경한다. 내 시간은 현실에서 벗어나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로 들어와 멈추었다. 잠시 멈추는 시간에는 설렘과 행복한 자유가 흐른다. 나는 미래 어디쯤 갑자기 이곳에 도착한 것 같다. 내가 태어나고 좋아하는 봄에 새로운 봄을 만났다.




생장 피에드 포르트는 프랑스이다. 아직 스페인이 아니다. 이곳 프랑스에서 순례를 시작하기 때문에 ‘프랑스길’이라 부르는 것이다. 스페인 팜플로나 중심의 나바라 왕국의 산초 왕이 무슬림 군대와 싸워 승리한 것을 기념해 1212년 건설한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노트르담은 ‘성모 마리아’ 뜻을 가진 프랑스어이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의 환송을 받으며 순례자는 든든한 순례를 시작할 수 있다. 피레네산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이 매년 30만 명이 찾는 곳이 되었다. 순례자 사무실에는 친절하게 순례길을 안내하는 봉사자들이 있다. 종이 안내서에는 마을마다 있는 알베르게, 가격, 전화번호, 지도 등의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제는 종이 지도를 보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다. BUEN CAMINO 앱과 CAMINO NINJA 앱으로 정보를 찾는 것이 더 편하다. 근처 까르푸 마켓에서 간단히 저녁거리를 사서 먹고 산책했다. 1시간이면 충분히 돌 만큼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갓 구운 빵을 파는 작은 가게는 새벽 일찍부터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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