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물집을 터뜨리자

by 홍지현

처음으로 나의 신체 중 가장 아래에 있는 발을 아끼고 있다. 만약 걷지 못한다면 순례길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신체이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신체라는 말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발은 그동안 잘 돌보지 않았던, 방치하는 못생긴 신체였다. 게다가 인류는 발에 가혹한 적도 있었다. 발이 작아야 미인이라며 발을 꽁꽁 싸매서 걷지 못하게 만든 적도 있었고, 높은 힐이 여자들의 몸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었고, 어이없는 무의식 신데렐라 콤플렉스도 구두에서 시작한다. (나도 이십 대에 하이힐을 많이 신어 골반이 틀어진 것 같다.) 부랴부랴 이제야 나의 발을 아껴주고 있다. 순례길에 오기 전 그동안 미루었던 내성 발톱 치료도 했다. 지금은 밤마다 얼굴 로션은 안 발라도 발에 풋크림을 꼼꼼히 바르며 마사지한다. 아침에 다시 바셀린을 바르고 발가락 하나하나에 밴드를 붙인다. (경험해 보니 밴드를 붙이지 않는 것이 발의 통풍에 좋다.)

그런데도 그동안 많이 걸어서 오른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요 작은 녀석은 나의 걸음을 어마무시한 힘으로 방해한다. 결국 절뚝절뚝 걷게 만든다.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괜찮은지 묻는다. (물집을 보여주지 않아도 모두 안다.) 큰 병이 난 것도 아닌데 물집은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척 중요한 질병이 되었다. 머릿속에는 물집 생각만 가득하다. 터뜨려라, 터뜨리지 말라 사람의 충고도 다양하다. 물집은 마치 마음 깊이 숨어 있는 콤플렉스 같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나의 눈에만 보여서 나의 행동을 제한하게 만드는 것이 닮았다. 작지만 영향력은 크고 오래간다. 콤플렉스는 오픈해야 해결이 된다고 한다. "나는 이게 콤플렉스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콤플렉스는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게 된다.


나는 물집을 터뜨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알코올 솜으로 바늘을 닦고 물집을 터뜨렸다. 물이 계속 나오게 알코올 솜으로 물집을 눌렀다.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자, 콤피드 밴드를 붙였다. 물집으로 인해 사람에게 처음으로 나의 발을 보여주었다. 못생긴 발이 아닌 아주 자랑스러운 발이다. 나는 용서의 언덕에서 나의 콤플렉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중 큰 발도 콤플렉스였다. 키가 크기 때문에 발도 클 수밖에 없는 데도 5mm라도 줄이기 위해 작은 신발에 발을 그야말로 꾸겨 넣은 적도 있었고 더운 여름에도 양말을 신으며 발을 숨겼고 내성 발톱 문제가 생겨도 치료를 미뤘다. 나는 나의 발에 남의 기준으로 창피하게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록산 게이는 <헝거> 책에서 261kg 거구의 자신의 몸을 사랑하게 된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성폭행이라는 고통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복잡하게, 무겁게 할 수 있는지, 여성이 비만으로 산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고통인지 보여준다. 두 가지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자신을, 그리고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가족의 사랑이 큰 힘이 되었다. 외모가 경쟁력을 넘어 권력이 되는 세상이다. 날씬함은 부를 상징한다. 반대로 비만은 무능력, 가난, 게으름을 상징한다. 여자들이 얼마나 외모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발까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노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노화를 막으려고 노력한다. 건강이라는 프레임에 속아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잔인한 욕망에 허기져 있다. 코랄리 파르자의 영화 <서브스턴스>는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정체성은 외모가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엘리자베스와 록산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우리는 갇힌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노메이크업, 노브라도 힘든 세상이다. 내 몸이 온전히 내 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든 감옥에서 나는 존재하듯 존재하지 않았다. 걷는다는 것은 자유를 준다. 신체의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다. 불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다. 나는 나의 커다란 발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몸도 바라본다. 그리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몸이 아닌 나를 위한 소중한 몸임을 깨닫는다. 나의 몸에게도 용서를 빌었다. 나는 용서의 언덕에서 한참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눈물과 발을 말려주었다.




풍력 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하는 페르돈 고개를 오르면 오르막 끝 790m에는 용서의 언덕 조형물이 있다. 철로 만든 중세 순례자들의 상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듯 붉게 빛나고 있다. 나바라의 조각가인 빈센테 갈베테가 홀로 아니면 같이 걷고, 당나귀를 끌거나 타고, 같은 목적을 위해 순례길을 걷는 다양한 순례자의 모습을 표현했다. "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바람이 지나가는 곳"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바람이 많이 불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며 풍경을 눈에 담고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이 많다.


센 아르가 강의 중앙에 다리가 있다. 12세기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1세는 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도시를 만들고 다리를 세웠다. 산초 3세의 부인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리를 만들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푸엔떼 라 레이나, ‘왕비의 다리’라고 불렀다. 일곱 개의 아치교의 동심원이 무척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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