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이처럼 다양한

by 홍지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기 전에 나는 여러 책을 읽었다. 나는 정보를 책에서 찾는 편이다. 그래도 불안해서 유튜브를 봤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좋다. 파리 지하철 타는 법, 스페인 ATM 사용법, 우버 잡는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튜브는 좀 자극적이다. 알베르게에서 지갑을 몽땅 도둑맞은 이야기, 베드버그로 병원에 실려 간 이야기, 알베르게를 예약하지 못해 노숙한 이야기까지 좀 극단적이다. 물론 모든 스토리텔링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야 시선을 끌 수 있다. 그런데 자극은 두려움을 유발한다. 조심을 넘어 공포심을 준다. 우리 세상은 불안의 냄새로 가득하다. 넓게는 환경, 전쟁, 팬데믹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질병, 노후, 실직, 우울, 외로움 등이 있다. 우리는 늘 사고가 일어날까 노심초사한다. 집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집 안도 안전하지 않다. 원래 탁상공론이 가장 황당무계한 법이다. 오롯이 현재를 즐길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런데 막상 여기에 와보니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산티아고 매직이 흐른다. 대체로 안전하고 친절한 분위기이다. 또한 조사한 모든 정보는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맛집을 알려줘도 가까이 있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매일 빨래를 해서 옷을 입으라는 충고도 날씨가 흐리면 할 수 없다. 봄에는 비가 많이 온다는 확률도 다 빗나갈 수 있다. 어떤 이는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고 하지만 서로 맘에 맞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 쉽지 않다.


이처럼 거대한 세상에서 그 개인이 겪은 이야기는 그저 그 사람의 것일 뿐이다. 같은 날씨, 같은 장소, 같은 느낌은 단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 나의 눈으로 본 세상, 보고 듣는 풍경, 만나는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같은 계절에,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람마다 다른 결의 공감대를 느낀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만 동일하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획일화된 기준의 행복만을 바라보고 산 건 아닐까. 마치 모든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 후에 정해진 무언가에 의해 흐른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은 타인의 말을 따라 하면서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꽉 조인 타인의 기준 매듭을 느슨하게 푸는 중이다.


내가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온 이유는 획일화되지 않은 문화의 허용 분위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건, 영적인 이유건, 문화적인 이유건 자신만의 이유로 길을 걷는다. “올라, 부엔 까미노“라고 서로의 길을 응원한다. 이처럼 다양한 세상에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다. 아름다운 자연을 좋아하지만, 그 길의 끝에 나타나는 마을이 더 사랑스럽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친절한 누군가를 만나면 더 반갑다. 나를 환대하고 평등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는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스의 오랜 전통에는 이방인에 대한 환대가 있었다. 스페인은 관광 산업으로 살아가는 나라인 만큼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태도가 배어있다. 나는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이곳에 이방인으로 온 외국인 간에 흐르는, 서로에 대한 환대가 좋다. 환대는 능동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자유로운 태도이다. 순례자라는 유대감도 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사회적 감정이다.


나는 빨래를 마치고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옆 테이블에서도 호주인이 글을 쓴다. 풀밭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요가한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이도 있다. 어떤 고양이는 자신의 발을 정성스레 핥는다. “이따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요?”라고 독일인이 묻는다. 이 장면은 정보 책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모습이다. 나는 이 장면을 무척 평화로운 행복으로 기억한다. 샤워를 한 후 햇살이 온몸에 스며드는 순간도, 지친 발을 말리며 다양하게 햇살을 즐기는 타인의 모습도 아름답다. 나는 이처럼 다양하게 사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충만한 예술적 순간이다. 만초니 예술가는 자신의 배설물을 통조림에 담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자본주의로 흐르는 예술을 비판하는 동시에 다시 되풀이, 복사할 수 없는 순간을 표현한 개념 예술을 알려줬다. 우리의 삶이 소중한 것은 그 순간은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유일성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개념 예술이 갑자기 이해되었다. 획일화되지 않은, 이처럼 다양하고 유일한 행복이 있다는 발견이 오늘의 행복이다.




시라우키, 로르카는 스페인 북부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 지역이다. 대규모 포도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가을에 오면 포도 향을 맡을 수 있겠구나 상상을 해본다.


별의 길이라는 에스테야는 작은 마을이지만 1090년 나바라 왕 산초가 순례길이 마을을 통과할 수 있도록 수정하여 세워서 역사적, 예술적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높은 계단 위에 있는 산 페드로 데 라 루아 교회, 산토 세풀크로 교회, 산 미겔 교회, 중세 분수가 있는 산 마르틴 광장,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나바라 왕궁이 유명하다.


이전 06화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