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는 나의 롤모델
어느 날 갑자기 모인 사람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날이 온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순례길에는 은퇴하고 온 중년 부부를 제외하고 혼자 온 여성들 중 나는 가장 연장자이다. 나는 삼십 대와 오십 대 한국인 여성들을 만났다. 나와 세 살 차이가 나는 몇몇도 어디 가서는 연장자가 될 확률이 높은 나이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어느 날 갑자기, 빠르게 나이는 든다.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하는, 나이가 거추장스러운 시절도 있었고 나이가 드는지도 모른 채 지나간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오십이라는 나이는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가까이에 있는 빙산에 부딪친 기분이다. 아주 차갑고 커다란 것이라 무척 놀랐고 피할 수 없다는 슬픔이 찾아왔다. 빙산은 그대로인 나를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순례길에서 외국인들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현재의 나로 바라본다. 한국인들은 친해지면 나이를 공개한다. 바로 선입견이 들어온다. 갑자기 잘하던 앱도 잘 못하는 것 같고, 갑자기 빨리 걷던 걸음도 천천히 걷고, 안전을 소중히 여기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바뀌는 것 같다. 타자가 바라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나는 충돌한다. 우울해진 나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 걷는 것을 선택한다. 당연히 그들은 잘못이 없고 나의 이런 감정을 알지 못한다. 나만의 자격지심이다. 나는 유독 지금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마흔의 나를 만날 때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신체의 변화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에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오십은 신체의 변화가 온다. 완경을 하고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쉽게 말하지만 나는 당혹스럽다. 이유 없이 아픈 곳이 늘어나는 나는 나이를 거꾸로 흐르게 하는 방법을 찾고 젊어지는 음식과 운동에 집착한다.
핀란드에서 온 잉어 할머니는 나보다 더 잘 걷는다. 그녀는 노란색 축구 유니폼 같은 티셔츠를 항상 입고 있다. 나는 축구선수냐고 농담을 건넸다. 그녀는 사내 스포츠팀에서 운동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회사 옷을 입고 온 것이다. 땀을 배출하기 좋은 기능성 옷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여름에는 수영을, 겨울에는 스키를 즐긴다고 한다. 반바지 밖으로 나온 다리 근육이 탄탄하다. 나는 론세스바예스 커뮤니티 식사에서 만난 그녀에게 충격을 받았다. 길을 걷다 보면 그녀와 자주 마주친다. 그녀는 나를 앞서가며 씩씩한 미소를 보낸다. 오늘은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바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를 보면 그녀가 항상 중심에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잉어는 영어도 잘한다. 나는 그녀에게 영어를 참 잘한다며 비법을 물었다. 핀란드에서는 영어를 듣기 수업 위주로 한다고 말한다. 역시 핀란드 교육이다.
그러다가 한국에 있는 보통의 할머니들을 생각한다. 외국어 배우기를 겁내고 해외여행을 꿈도 꾸지 않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엄마가 칠십 세에, 산티아고에 간다고 했다면 걱정스러워 말렸을 것 같다. 그러나 순례길에서 만난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고 노화와 삶에 대해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각자의 생명으로 자연의 궤도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다. 나도 오십이라는 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바라본 노화는 사회가 만든 무시무시한 판결이었다. 고령화 시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자주 발의하는 논제에는 벌써 고령은 문제가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무능하고 아픈 고령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메시지는 참 노골적이다. 그런 사회의 시선은 고령을 더 고립시키고 고령을 나쁜 이미지로 만든다. 나이 듦에 대한 철학이 없다. 고령은 열심히 일한 만큼 지혜가 많아 도움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세대이다. 그들은 이제 자유를 누릴 나이가 되었다. 마음껏 공부해도 되고 마음껏 봉사해도 되고 마음껏 여행을 해도 된다. 왜 그들을 어떤 틀에 가두는가. 나는 <즐거운 어른> 에세이를 쓴 유쾌한 이옥선 할머니 작가가 미래의 롤모델이다. 그리고 순례길에서 미래의 롤모델을 또 만나게 되었다. 잉어를 통해 할머니도 건강하게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당당하게 삶을 즐기고 권태로운 한계를 이겨내는 그녀들이 멋있다. (엄마도 당당한 삶을 살았다. 운전도 하고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멋있다고 자주 말할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타인의 걱정에 의한 나를 진짜 나로 착각하지 않고 싶다. 나는 지금 열매가 열리는 가을에 들어선 것이다. 두려움이 아닌 수확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필요하다.
한자어가 멋들어지게 쓰여 있는 도자기가 있다. 알베르게 호스트가 이것은 일본어냐고 묻는다. 번역기에서 ”사무라이 만세“라는 뜻이라고 알려준다며 일본어냐고 묻는다. 나는 뜻이 사무라이일 뿐이고 이것은 한자, 중국어라고 설명했다. 일본 문화 내용 때문에 형식이 한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그는 나의 말을 의심한다. 마침, 한국인과 대만인이 있어 그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려주고 그들과 함께 진실을 제대로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호스트는 나의 열정에 좀 놀란 듯하다. 진실은 어이없게도 순식간에 오해로 바뀐다. 우리가 자꾸 겉모습, 나이라는 숫자에 속는 모습과 닮았다. 나는 바로 잡고 싶었다.
에스떼야에서 4km 걸으면 커다란 와인 공장이 있다. 이라체 양조장의 벽에 있는 와인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이라체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에게 와인과 빵을 나눠 주었던 전통을 이어 와인을 제공하고 있다. 벽에 담겨있는 와인이 떨어지면 마실 수 없다며 순례자들은 일찍 출발한다.
대장간에서 만든 액세서리와 장식품을 파는 곳도 있다. 가우디 할아버지,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솜씨가 좋은 그를 보니 가우디가 생각났다.
15~16세기 동안 카스티야 왕국과 나바라 왕국의 경계선에 있는 로스 아르꼬스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정사각형 요새로 성곽이 있는 성곽 도시였다. 산타 마리아 광장, 성 마리아 교구 교회가 볼만하다.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고딕, 바로크 여러 양식이 혼합된 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