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4 기록
부활절 여행 다음 나라는 프랑스. 어쩌다 보니 프랑스에 두 번 가게 되었다. 사실 파리는 도시 자체에 가고 싶다기보다 파리의 에펠탑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을 정말 보고 싶어서 계획하게 되었다. 보면 유럽에 갔던 사람들 중 파리 안 가는 사람은 없어서 나에겐 숙제와도 같은 도시기도 했고. 그만큼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라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나름 설레는 마음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그러나 한편으론 벨기에 테러 때문에 두려움이 들기도 해서 스페인 여행이 끝날 때쯤엔 그냥 덴마크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파리 여행의 시작은 말 그대로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사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파리는 굉장히 낭만적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중에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요리 영화인 줄리앤 줄리아는 파리를 정겹게 표현했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언 에듀케이션이라는 영화에서 파리는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인, 영국인들에게 로망이 있는 도시 같음). 무엇보다 베르사유가 배경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데 이영화가 바로 파리 여행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평점은 낮은 영화다. 미적 요소만 추구한 느낌이 들고 스토리가 단조롭고 끊기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은데.... 그래도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있어 상당히 객관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영화를 보고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베르사유에 가장 가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파리 소감은 '낭만 파리'보다 소매치기 조심하라, 생각보다 실망스럽다, 베르사유는 크기만 하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나 역시 기대치가 낮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파리는 꼭 와야 할 도시라고 생각한다.
일단 도시 자체가 누구나 떠올리는 '유럽스러움'을 품고 있다.
(바토무슈에서 바라본 센강과 건물들)
(뤽상부르 정원. 고상한 느낌)
(스타벅스마저 전통적임. 노래도 클래식이 나온다)
센 강과 오래된 다리들, 오래된 건물들이 어우러져 풍기는 분위기는 내가 생각한 낭만적인 파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시테 섬에 간 순간 바로 왜 사람들이 파리에 오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분위기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런던과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됐는데... 서울 안에서 비유를 하자면 런던은 강남, 대학로 같고 파리는 인사동, 광화문 같다.(+마드리드는 명동인 듯) 이 비 유면 왜 런던 안 가는 사람은 있어도 파리 안 가는 사람은 없는지 느낄 수 있을듯하다.
일단 랜드마크가 그 어느 도시보다 많은 도시인만큼 첫날은 노트르담 성당, 몽마르트르 언덕,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을 보러 다녔다. 개선문 하고 에펠탑을 처음 딱 봤을 때 생각보다 웅장하고 거대해서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에펠탑을 처음 본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이제야 내가 유럽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파리가 프랑스의 수도가 아니라 유럽의 수도와 다름없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몽파르나스 타워에서 본 파리의 야경이다. 해가 지기 전부터 대기 타면서 어두워질 때까지 보고 있었는데 이 순간은 지금까지 유럽 생활 중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처음으로 위에서 바라본 유럽 야경이기도 했고 (런던 야경은 건물 아래서) 노래를 들으며 감상하다 보니 감성이 급 풍부해져서 생각도 많아졌던 것 같다.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언제 이런 여유를 다시 누려볼까... 하며 다시 한번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꼈고 남은 교환학생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최대한 즐기고.
계속해서 좀만 더 파리 예찬을 하자면 베르사유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베르사유 궁전이 내가 처음으로 내부를 구경한 유럽의 궁전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화려하기로 소문난만큼 정말 돈을 쏟아부은듯한 궁전이었다. 왜 결국 혁명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은. 방 하나하나를 그리스 신화 속 신들로 표현을 했는데 참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신들 한 명 한 명 활용하여 의미 부여하기 좋았을 듯. 무엇보다 루이 14세의 방이 동쪽을 향하게 하여 태양을 바로 볼 수 있게 한 점과 그의 금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는 방을 보며 당시 왕의 권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정원이 특히 유명한데 정말 왜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잘 조성되어 있다. 규모도 크고.... 여하튼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을 보며 '과유불급'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한 건가 싶을 정도로 화려했고 거대했다.
사실 내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기대한 부분은 정원도 루이 14세의 궁전도 아니었다. 가장 기대한 곳은 쁘띠 트리아농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전이다.
잠시 마리 앙투아네트 얘기를 해보자면 이 여자는 역사상 가장 불쌍한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보통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의 여성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수많은 오해에서 비롯되어 굳어진 편견이다. 물론 여왕이니 당시 생계가 어려운 서민들에 비해 풍족한 생활을 누렸겠지만 다른 귀족에 비해서는 나름(?) 소박한 편이었다고 한다. 특유의 자기랑 친한 사람만 챙기는 성격 때문에 몇몇 귀족들이 별로 안 좋아했다 하는데, 목걸이 사건도 이런 배경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닐지.
쁘띠 트리아농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는데 이곳에서 만큼은 목가적인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까먹고 쁘띠 트리아농 옆 여왕의 촌락에 가지 못했다. 정말 천추의 한이다. 나중에 꽃이 필 때, 날 좋을 때 다시 오라는 계시 같다.
이것은 루브르 박물관 기념품점에서 봤던 마리 앙투아네트 관련 기념품들인데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다들 싫어했던 왕비였지만 지금은 프랑스 관광객들을 모으는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베르사유는 다른 관광지와 달리 무지가 아닌 '유'지의 상태에서 관람한 여행지여서 내게는 매우 의미 있고 알찬 여행지였다.
그러나 파리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소매치기의 나라, 사기의 나라로 불리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을 많이 하고 다녔었다. 그래서 다행히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당할뻔한 적은 없지만 마음 상태가 편안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날씨가 정말 안 좋았다. 사진들에서도 알 수 있듯 흐린 날이 대부분이었고 맑다가도 먹구름이 몰려와서는 한차례 비를 쏟아내곤 했다. 마지막 날이 최악이었는데 아침에 나갈 때는 맑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서 비바람이 캄보로 불어대더니 다시 맑아져서 오 이제야! 할 쯤에 우박이 쏟아졌다. 덕분에 내 우산도 사망했고 짐을 줄일 수 있었다.
(비 오고 개인 뒤의 파리. 곧 또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왔다. 구름과의 사투)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도 그 여행지가 남기는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파리는 사람들이 그 점수를 다 깎았다. 내가 가본 도시들 중 가장 불친절했다. 나는 폰에서 구글 지도 위치도 잘 못 잡고 이용하는 게 귀찮아서 사람들한테 그냥 물어보는 편인데 파리 사람들에게 처음 거절당했다. 그리고 여러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갈 때 덴마크 학생비자를 보여주면 공짜로 입장이 가능한데 덴마크는 비자를 여권에 붙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메일로 보여준다. 그래서 항상 그것을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매표소의 직원들은 퉁명스럽고 귀찮듯이 반응하곤 했다.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그래도 이런 사람들의 행동이 다 이해가 갔다. 관광객이 유럽에서 가장 많기도 해서 당하기도 많이 당했을 것이고 큰 사건을 겪어 낯선 아시안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하도! 많고 테러로 인해 안전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요하다 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어갈 때 엄청난 줄을 기다리면서 짐 검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어딜 가나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던 것 같다. 스페인 여행 후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래서인지 더 빨리 지치고 힘들었던 여정이었다. 그래도 날씨가 안 좋아도, 사람들이 불친절해도, 대기시간이 길어도 이 정도로 좋을 수 있는 것은 파리만 가능하다고 본다. 다른 도시가 이랬더라면 절대 좋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 1명이 있었다면 파리에는 가우디가 10명 있다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마무리는 가장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려있는 '10명의 가우디들 중 1명'인 모네의 작품으로!
'19년 감상평 :
파리는 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