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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영 Apr 21. 2019

세상의 끝에서

2016.05.03 기록

오르후스 다음 여행지는 Skagen. 덴마크 발음으로는 스케인이라고 하니 나도 스케인이라고 하겠다. 스케인은 세상의 끝이라고 불린다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바다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라서 그런 듯하다. 북해와 발틱해의 염분이 달라 서로 맞물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을 보러 스케인까지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스케인은 덴마크 깡촌 중의 깡촌이기 때문에 버스도 안 다닌다. 그래서 자전거를 대여해서 다녀야 하는데 드넓은 자연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생각을 하니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래서 스케인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빌렸고 곧바로 바다를 보러 달렸다. 다음날 날씨가 안 좋다는 예보 때문에 마음도 급해졌다. 


(위에서 보면 두 파도가 만나는 모습을 더 확연히 볼 수 있었을 텐데 파도가 약해 많이 아쉽다)


(잔잔한 발틱해)

(약간 매서운 북해. 사진이 못 담아낸다.)


그래도 그 만나는 지점을 기준으로 두 바다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발틱해는 조용히 철썩 거리는 반면 북해는 거셌다. 모래사장도 어찌나 넓던지 확 트이는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바다를 다 보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일이 터졌다. 숙소 키를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가방 안에 분명히 넣어놨는데 키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호스텔 직원은 정해진 시간에만 데스크에 있어서 바로 문을 열 수도 없었다. 굉장히 난감했지만...  일단 Emergency에만 연락하라는 번호에 전화를 해서 방키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곧 사람이 와서 방을 열 수는 있었지만 나는 300kr (약 5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작은 돈이 아니니 많이 아깝고 안타까웠지만 이 부분을 생각하면 계속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앞으로 물건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액땜으로 여기자고... 그래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니 남은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기숙사로 돌아와 짐을 풀어보니 가방 안에 있던 가방의 작은 주머니에 키가 있었다. 결국 나는 300kr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바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굉장히 잘한 일이었다. 만약 계속 속으로 키를 잃어버린 사실에 상심해 있었다면 얼마나 후회했을지...  이미 지나간 일은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답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다음날은 사실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 때문에 크게 기대를 안 했었다. 자전거를 더 이상 못 탄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카페에 가서 커피와 데니쉬 페스츄리나 먹으며 나름의 즐거움을 느껴보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의 날씨는 비는커녕 오히려 햇살이 방을 비 출정도로 맑았다. 사실 여행 이틀 연속 날씨가 좋았던 것도 감지덕지였다. 덴마크에서는 이런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삼일 연속 날씨가 좋다니.. 나는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감사함을 느끼며 남은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자전거의 나라에 온 지 세 달 만에 처음 탄 자전거)


(모래에 파묻힌 집. 빙산의 일각인 흰색 끄트머리)


사실 스케인도 바다들 빼고는 딱히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니다. 시골이다 보니 사람도 매우 적다. (안 그래도 밀도 적은 덴마크인데) 그러나 숨겨진 자연경관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찾는 맛이 있었다. 


(탁 트인 맛)



위 사진의 바다는 잊을 수가 없다. 파도며 모래며 모든 것이 완벽했다. 모래가 하도 부드러워서 과감히 맨발로 다녔다. 노부부가 산책하는 모습, 개가 파도에 들어가 흠뻑 젖어 나오는 모습 다 영화 같았다. 




스케인의 모든 집은 다 똑같이 생겼었다. 노란색 벽과 주황색 지붕. 사실 이 디자인은 덴마크에서 볼 수 있는 집이었는데 스케인은 모든 집이 다 이렇다. 심지어 교회도!


이쯤 돼서 느낀 것은 덴마크는 각 도시들이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 시골의 경우, 사람들의 패션이 촌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코펜하겐 사람들만큼이나 세련됐다. 스페인의 경우,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천지차이였다. 이 두 도시는  원래 다른 나라여서 그렇다 치고.. 프랑스도 파리와 니스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그런데 덴마크는 어딜 가나 기본적인 분위기는 비슷하다. 심지어 스웨덴 말뫼 하고도 뭔가 비슷하다. 북유럽 분위기라 해야 하나? 왜 그런가 하고 혼자서 생각을 해봤는데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나라였다. 한 때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그리고 독일 북부까지 모두 덴마크령이었다고 하니... 즉,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가 통일된 스페인과 정반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고...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모든 도시에서 각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오 여기도 좋네... 하는 생각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모든 도시가 좋았다 하더라도 '여운'이 많이 남는 도시는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신기하게도 내게 여운이 남는 도시들 모두 사람이 적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니스, 말뫼, 그리고 덴마크 도시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은 관광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마음 편히 분위기만을 즐기고 왔을 때 여운이 많이 남는 듯싶다. 특히 오르후스, 스케인, 말뫼 모두 사람들이 흔히 찾는 도시는 아니라서 괜히 나만의 여행지가 된 것 같아 더욱 애착이 간다. 동시에.. 이런 도시들이 나중에 한국 갔을 때 가장 그리울 것 같다. 북유럽으로 교환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는 여행이었다. 



'19년 감상평 :

진짜 여기는 내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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